'동북아비즈니스 허브' 꿈꾼 초기 구상
"아파트숲… 공항 100점, 송도는 50점"
"남은 땅 어떻게 쓰느냐에 미래 달렸다"


송도 국제도시 전경. /경인일보DB
송도 국제도시 전경. /경인일보DB

 

공항과 항만, 송도국제도시로 이어지는 '트라이 포트' 전략은 인천이 동북아 중심도시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시아의 중심공항(air-port), 황해의 중심항만(sea-port), 국제금융·정보통신 등이 결합된 텔레포트(tele-port)라는 3축을 토대로 한 발전상을 인천은 꿈꿨다.

송도매립 30년이 지난 현재의 송도는 과거 꿈꾸던 모습과 얼마나 근접했을까. 송도는 여느 신도시처럼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베드타운은 애초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인천 세계화 전략의 핵심은 '텔레포트'로 요약되는 동북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였다.

하지만 지금 송도를 두고 '송도매립 초기 기획자'였던 박연수 전 소방방재청장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천공항이 100점이라고 하면, 송도는 50점밖에 줄 수가 없다. 아파트숲처럼 되어 버렸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인천시는 송도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정보화 신도시를 조성하려 했다. 이른바 '송도미디어밸리'였다. 1995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정보화추진분과위원회는 정보지식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사업주체로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미디어밸리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천 송도신도시를 최적지로 선정했다. 1997년 인천시와 추진위는 공동 추진을 위해 기본 합의서를 체결한다. 하지만 투자 유치와 자본 조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이 프로젝트는 2000년 중단됐다.

송도매립 초기단계부터 공직자로 참여한 윤석윤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차장 또한 지금의 송도 모습을 아쉬워한다. 그는 "베드타운이 아닌 동북아 중심도시,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를 꿈꿨다"면서 "공장과 아파트 만은 피하려 했다. 땅장사와는 달라야 했는데, 일반 신도시와 다른 게 하나도 없어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 송도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들이 내린 진단이다.

박 전 청장은 "남아있는 땅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면서 "인천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인천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전 차장은 "도시는 만들어가는 것이고, 송도신도시는 움직이는 프로젝트"라면서 "당시 인천이 꿈꿨던 도시가 지금도 한국에는 없다. 차분하게 그림을 그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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