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과 함께… 어둠을 밝히는 희망으로


먹고 사는 문제 해결 위해 세운 댐
인공의 힘에 180도 달라진 생태계
지금도 개발-보전 가치 놓고 충돌



 

"인류의 역사는 대자연에 도전하는 인간 의지의 승리의 기록이며, 팔당댐 건설은 인간 의지의 승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1974년 5월 24일 팔당수력발전소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말했다. 한강수계를 가로질러 거대한 물줄기를 막아선, 콘크리트 '성벽'을 바라보며 이것은 '인간의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초에 팔당댐의 운명은 정해졌다. 자연으로부터 승리를 거머쥔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돼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팔당댐을 비롯해 당시 박정희 정부는 1980년대 초까지 전국에 8개 댐 준공을 목표로 건설사업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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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오는 햇빛이 팔당호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를 비추고 있습니다. 팔당호는 지난 1974년 남한강과 북한강, 경안천에서 흐르는 물을 국가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인공적으로 막아 팔당댐을 조성하며 생겨났습니다. 팔당댐과 팔당호는 전기와 취수를 공급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수도권의 '젖줄'이지만, 개발로 인해 당시 원주민들이 강제 이주되고 생태계가 크게 변화하는 등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팔당호가 생태계 보전과 지속적인 개발 사이에 갈등을 겪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물줄기가 하나로 모인 곳에서 해답을 찾듯 우리도 희망을 하나로 모아 길을 열어나갑시다. 올해 창간 79주년을 맞은 경인일보가 그 여정에 지역민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이러한 댐 건설을 두고 언론에선 "80년대 초에 이룩할 중화학 공업 시대를 대비한 에너지 확보가 그 목적"이라는 정부의 의지를 전했다.

그만큼 목표가 분명했다. 일제치하와 한국전쟁, 반세기에 가깝게 찢기고 부서진 땅 위에 반드시 발전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의지였다. 모두가 헐벗던 시절,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이 쉽지 않았던 폐허의 땅에서 서울 한강을 배후로 댐을 건설하는 일은 그래서 인간의지의 승리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게 50년이 흘렀다. 1974년에 팔당댐이 준공되고 자연스럽게 팔당호가 조성됐다. 이후로 2024년 현재까지, '팔당'은 수도권의 젖줄로 줄곧 기능해왔다.

이렇게 부여된 숙명 탓에 팔당은 늘 외줄타기다.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하면서도 깨끗하게 환경을 보전해야 하는, 모순된 두가지 조건이 늘 따라붙었다. 애초에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물길을 막은 건 인간이다. 인공의 힘으로 자연을 개발했고 생태계는 180도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준공 50년을 맞은 팔당호. /경인일보DB
준공 50년을 맞은 팔당호. /경인일보DB

쉽게 말하면 흐르는 물이 가진 속성에서 살았던 쉬리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됐고, 고인 물에 사는 잉어가 살게 됐다. 팔당의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상 대대로 뿌리내린 마을이 한순간에 수몰됐다. 국가발전이라는 명제 앞에 팔당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하는 형태로 삶이 뒤바뀌었다.

어쩌면 수도권이란 범주 하에 광복 이후 지금까지 경기도와 인천의 숙명도 비슷하다. 인구도 산업도, 모두 포화된 서울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조건 개발이 돼야 했고 무분별한 개발의 부작용도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하는 운명.

그럼에도 팔당댐이 없었다면 수도권 산업기반과 인구는 수용불가능이었고 세계가 찬사하는 한강의 기적도 이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종도와 송도 앞바다를 매립하는, 자연을 거스르는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가 갖는 경제적 부흥 역시 이뤄내기 어려웠다.

먹고 살기 위해 개발해야 했고, 그로인한 자연·인간의 갈등이 50년동안 이어져왔다. 타고난 운명이 변하지 않듯, 쉰이 된 지금 팔당은 여전히 국가 미래성장을 위한 최전선에 서 있다. 또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비록 개발로 인해 주어진 생태환경일지라도 보전해야 하는 의무도 띤다.

창간 79주년 경인일보는 팔당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50년을 기록해왔다. 그 기록에 덧대어 준공 50년을 맞은 팔당의 현재를 취재하며, 여전히 '개발과 보전', 두 가치가 충돌하는 팔당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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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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