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흘러 '인공호' 품은 자연


댐 건설로 상하류 오간 여울성 어종 살기 어려워지고
1970년대엔 어업자원 도입 이유 배스·블루길 등 방류
중하류 유속 느린 물에서 살던 토종 물고기 생존 위협

여전히 다양한 어종 있는 건 조화 이루려는 생태계 힘
"개발" vs "보전" 난제… 인간도 균형있게 풀어나가야



 

인간의 개입으로 조성된 '인공호수' 팔당호는 팔당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에서 강으로, 줄기를 따라 흐르던 물이 가두어지면서 기존에 살던 생물이 사라지고, 살지 않던 새로운 생물이 서식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그것을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파괴됐다'고 비관하지만, 그렇게 이미 50년이 흘렀다. 가둬졌을지라도, 그 환경에 걸맞은 생태계가 자리를 잡았고 나름의 질서로 변화에 적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비록 인위적인 개발이지만 지난 50년, 자연은 인공호조차 품어냈다.

쉬리.
쉬리.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 수중생태계 변화는

팔당댐이 건설되고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건 수중생태계다. 댐은 물고기에게 일종의 '벽'이 됐다. 본래 상하류 물길을 오가던 여울성 어종은 이곳에서 살기가 어려워졌다.

수몰되기 전 팔당에 살던 여울성 어종은 현재도 새로운 물이 유입되는 팔당호 상류 지점에서만 살펴볼 수 있다. 팔당호로 유입되는 조정천과 호수가 만나는 지점이 그 예다. 이곳은 대부분 수심이 1m 이내다. 유속이 빠른 편이어서 하천 바닥에는 성인 머리 크기 정도 되는 호박돌이나 주먹돌이 깔려있다. 수중에 녹아있는 산소(용존 산소)가 풍부하다는 특성도 있다.

납자루.
납자루.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상류에서 종종 보이는 어종은 쉬리, 참갈겨니, 돌마자, 참종개 등이다. 이들은 대체로 크기가 작은 편으로 큰 돌 사이에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상류를 벗어나 중·하류, 본격적인 팔당호에 들어서면 댐 건설 이후 바뀐 수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주로 유속이 느린 물에서 사는 정수성 어종이 서식한다. 그중에서도 잉어와 붕어가 많아졌다. 변명섭 한강물환경연구소 환경연구관은 '경제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각시붕어
각시붕어.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특히 정수성 어종 중에서도 붕어, 잉어가 많은 건 한국에서 대표적인 경제성 어종이기 때문이죠. 그런 어종은 방류를 많이 합니다. 어민들의 주요 수익원이니까요.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서 전부 다 물 밖으로 꺼내면 자원이 부족해지니까 정부가 나서서 인공 방류를 하는 거죠."

광주 남종면 분원리에는 '붕어찜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팔당호에서 갓 잡아올린 붕어로 요리했는데,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며 한때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광주시를 대표하는 지역행사인 '분원 붕어찜축제'도 2012년까지 매년 5월마다 열렸다.

잉어, 붕어, 강준치 등 토종 정수성 어종이 새롭게 팔당호에 터를 잡던 와중에 팔당호 수생태계는 또 한번 변화를 겪었다. 1970년대 정부가 내수면 어업자원을 도입한다는 이유로 외래 정수어종을 인공 방류하면서다. 이 역시 못먹고 못살던 시절의 경제적 이유였다. 당시 인공 방류된 외래 정수어종으로는 배스와 블루길이 있었다. 변 연구관은 이때 상황을 설명했다.

큰입배스
큰입배스

"큰입배스는 1975년에 팔당호 상류 조정천에 방류한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조그만 새끼 500여마리를 도입해서 청평내수면 연구소에 2년 정도 순치과정을 거쳐 방류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국내에 배스가 방류된 건 팔당호가 처음이었어요."

초기 생존율이 높고 포식 능력이 뛰어난 이들 외래어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토종 물고기의 생장과 번식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붕어가 알을 10만개, 잉어가 30만개 정도 낳거든요. 토종어종 역시 번식력이 밀리는 게 아닙니다. 근데 물고기는 보통 뭔가를 씹거나 잘라먹는 기능이 없는데, 큰입배스는 입에 들어가는 건 다 먹어요. 그러니 토종어종이 당해낼 재간이 없죠. 또 (큰입배스는) 알을 낳고 초기에 부화해 스스로 먹이활동을 할때까지 어미가 지켜주는데, 붕어나 잉어는 그렇지 않거든요…납자루, 각시붕어 등은 살아있는 조개의 패각(단단한 껍데기 두장으로 이뤄진 조개류) 안에 알을 낳습니다. 껍데기 안에 있어서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건데, 부화하려할 때 껍데기에서 탈출합니다. 그때가 마침 배스 부화시기와 겹쳐요. 그래서 나오자마자 배스에 잡아먹히는 거예요."

외래어종으로 인해 토종 어종이 크게 줄자 팔당호 인근 주민들의 불만도 끊이질 않았다. 팔당호에서 만난 어부들은 "블루길은 토종 물고기가 산란하면 알을 전부 핥아먹는다"며 "배스는 농어를 통째로 잡아먹는데 입이 하도 커서 사람 주먹이 다 들어갈 정도"라고 말했다.

블루길
블루길.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결국 환경부는 배스와 블루길을 생태계교란외래생물종으로 지정해 이식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한강유역환경청은 2016년 팔당호에서 생태계교란 어류 퇴치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큰 망을 넓게 쳐 블루길, 배스를 건져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광주에서 팔당호 어부로 일하는 안호명씨는 "예전에 팔당호에서 어부들이 어업 활동을 할 때는 외래어종도 잡아내면 정부가 수매해 갔는데, 지금은 어부들조차 거의 사라져서(외래어종 개체 수) 관리가 어렵다보니 정부가 직접 나서 관리를 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과 하천이 끊기지 않고 연결돼 있는 국내 수계 특성을 고려하면 특정 어종의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줄여나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외래어종을 도입하던 시기에 팔당호 수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선제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 새로운 생태계의 보고 팔당호의 현재


팔당댐은 평소에도 수문을 수시로 열고 닫으며 수위 변동 폭을 최소화한다. 이로 인해 담수의 체류시간이 달라지는데, 특히 집중호우 시기엔 하루에도 몇번씩 팔당호 전체 물이 완전히 교체되는 특성도 가진다. 수도권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계속해서 공급하는 '취수원'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관리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성으로 국내에 대표적인 하천형 인공호로 불리며 다른 인공호보다 다양하고 개방적인 생태계를 띠고 있다.

또 물높이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점은 수변의 식생이 골고루 발달할 수 있는 안정적 조건이 되기도 한다. 팔당호에는 최근 부엽식물인 마름을 제거하자 붕어마름, 대가래, 민나자스말의 자생 면적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 식물은 유속이 느린 곳에서 살아가는 종이다.

마름.
마름.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그중에서 어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식물은 '마름'이다. 마름은 뿌리가 땅속에 박혀있고 잎사귀는 수면 위로 늘어뜨린 식물이다. 마름이 주로 서식하는 곳에선 바닥에 가라앉아 썩는데, 죽은 마름이 쌓여 수심이 얕아진다. 그래서 팔당호의 오랜 문제로 꼽혀온 퇴적물 악취의 원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팔당호에는 습지(물이 정체된 수역)도 넓게 분포해 있다. 이곳에는 주로 수생식물군락이 형성됐다. 팔당호 수면적(36.5㎢)의 11%가 수생식물서식면적(3.29㎢)에 해당한다. 이는 물 아래에 서식하는 침수식물 자생 면적을 제외한 수치다.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습지까지 고려한다면 그 면적은 더 넓을 것으로 추정한다. 습지에는 연꽃이 군락을 이루는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중에서도 양수리습지는 봄철 어류의 산란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 사는 수련, 애기부들, 갈대 등의 다양한 정수식물이 용존산소 농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변 연구관은 "팔당호 전체가 블루길, 배스 등 외래어종 때문에 토종 어류가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다양한 어종이 존재할 수 있는 건 팔당호 전체에 널리 퍼진 습지와 같은 자연공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양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 자연환경의 '개발 vs 보전' 5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난제

수도권 경제개발을 위해 인공으로 만든 댐, 그리고 호수라는 태생적 한계로 팔당의 생태계는 늘 부정적 시선에 시달린 게 사실이다. 수십년째 팔당의 수생태계를 연구해온 변 연구관은 이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서식지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동식물은 서식지가 그곳에 사는 생물을 결정합니다. 흐르는 물을 가둬 호수로 바뀌는 변화를 겪었고 50년이 흘렀습니다. 그에 따른 생태계도 변화한 모습으로 충분히 적응했다고 볼 수 있어요."

현재 팔당호 어종 생태계가 교란됐다고 비난받는 건 우리가 먹고사는 일, 즉 '경제적 이유'가 큰 것이지, 여울성에서 정수성으로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오히려 수생식물 생태계는 오랜시간 적응하며 안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여전히 팔당의 생태계를 두고 '먹고사는 일'과 '보전' 두 가치가 부딪힌다. 50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숙제를 떠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환경단체는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인 팔당호를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오랜 세월 환경규제에 묶여 왔던 주민들은 개발이 필요하다고 반발한다.

오랜 난제에 대해 강태구 한강물환경연구소 소장은 생태계가 가진 능력과 인간의 노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계는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어느 한 개체가 많아지면 생태계가 스스로 바뀐 환경에 조화를 이루려고 하거든요. 인간은 죽지만 자연은 계속해서 남아있을 거니까요. 팔당의 생태계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보전과 개발의 대립을 어떻게 균형있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죠. 이를 정책으로 풀어갈 수 있어야 하고요. 환경을 다룬다는 건 늘 그렇잖아요."

팔당호
팔당호 물 위로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이종우·공지영·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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