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신고로 가능했던 동물원 영업, 

법에서 정한 안전관리계획 '허가' 받도록 강화


동물원·수족관 내 방치·학대 지속

최소한의 복지 마련했지만 '5년 유예기간' 맹점


기준 마련 못하면 전국 126곳 중 

절반 이상 폐원 가능성… 야생동물 '처분' 문제 직면


백색목록제·혈통관리·전문성 갖춘

수의사 양성 통해 '생태교육의 장' 역할 수행해야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생성형 AI 미드저니 이미지 재가공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생성형 AI 미드저니 이미지 재가공

동물원·수족관법이 지난해 12월 개정 시행됐다. 지자체 신고로 가능했던 동물원 영업이 법에서 정한 종별 서식환경·인력·안전관리계획을 갖춰 '허가' 받아야 하도록 강화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개별 동물의 생태적 특성에 맞는 최소한의 사육 면적을 확보하고, 움직임이 제한된 곳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줄 행동풍부화 시설도 마련해야 한다. 동물복지 관련 규제가 사실상 전무한 배경에서 동물원·수족관 내 동물방치·학대 문제가 지속되자 최소한의 동물복지 수준을 마련하도록 한 취지다.

다만 이 법에는 큰 맹점이 있다. 5년의 유예기간을 준 것이다. 기존 운영 중인 동물원에 한해 2028년 12월 13일까지 강화된 시설 기준을 갖추도록 했다. 동물복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환경부 위촉 전문검사관들은 이 기간 동안 동물원을 방문해 개별 동물원이 법 기준을 맞췄는지 확인해 승인한다.

기준을 충족하면 다행이지만 전망은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전국에 있는 동물원 126곳(현재) 중에서 민간 체험동물원을 중심으로 절반 이상의 동물원이 폐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폐업 동물원에서 거처를 찾지 못한 야생동물의 '처분' 문제가 뒤따를 것이다.

경인일보는 청주동물원 변재원·홍성현 수의사,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송혜경 대표, 유미진(전 서울대공원 동물관리팀장) 서울호서전문직업학교 교수를 만나 동물원·수족관법의 의미와 한계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법안의 동물복지 기준이 적정하다고 보면서도, 동물원이 단순히 전시시설이 아닌 구조센터·종 보전기관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한다.


# 유미진 서울호서전문직업학교 교수

동물원 허가·관리 주체가 지자체
검사관 수당도 예산 써야하는 한계
자금 사정·의지에 따라 운영 좌우


유미진 서울호서전문직업학교 교수
유미진 서울호서전문직업학교 교수

■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의 한계


전문가들은 일정 규모의 서식환경을 갖추도록 하고, 검사관이 점검하도록 하는 걸 골자로 하는 개정안의 내용은 적정한 수준의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해석의 여지가 남은 법 조항과 검사관 제도 활성화는 앞으로 조정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를테면 '자연채광'에 대한 해석이다. 송혜경 대표는 "포유류나 조류는 자외선(UV)이 부족하면 뼈 부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 개정된 시행령에 '자연채광'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면서도 "이를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도 자연채광'이라고 해석해 버리면, 기존에 운영하는 실내 체험형 동물원들이 야외방사장 마련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허가받을 가능성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검사관의 실효성 여부도 문제로 남는다. 환경부가 위촉한 전문검사관으로 활동하는 유미진 교수는 "동물원 정기 점검은 5년에 1번뿐이고, 수시 점검은 민원이 들어오는 등 문제가 생기면 지자체가 검사관에게 요청해 검사를 나가는 구조"라며 "동물원의 허가·관리 주체가 지자체여서 검사관의 수당 등도 지자체 예산을 써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지자체의 예산 규모나 의지에 따라 동물원 관리·감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쏟아져 나올 야생동물은 어디로?


허가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동물원에서 나올 야생동물의 관리 문제도 남는다. 허가받는 것을 포기한 동물원과 수족관이 최대한의 수익을 뽑아내기 위해 유예기간 직전까지 시설을 운영하다가, 기간 만료를 코앞에 두고 폐업하는 동물원이 몰리게 될 위험이 크다.

이에 환경부가 올해 초 400여마리 규모의 야생동물 보호시설의 문을 열고, 2025년 완공을 목표로 1곳 더 건립에 나섰지만 폐업 우려가 큰 동물원의 동물 규모에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변재원 수의사는 "공영동물원에서 동물을 받고, 국립생태원에서도 동물을 돌보기 위해 보호시설을 짓고 있지만 불가피하게 공간이 부족한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천시 플레이아쿠아리움 실내 동물원
부천시 플레이아쿠아리움 실내 동물원에서 반달가슴곰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다. 2024.7.2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몸값'을 매겨 낮은 가치로 평가된 동물들이 버려질 염려도 크다. 유미진 교수는 "현재 있는 동물원 중에서 절반 정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동물은 합사도 쉽지 않아 시설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부분 돈이 되는 동물을 판매하려고 하겠지만 유예기간을 앞두고 공급이 몰리면 유기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렇다보니 개인의 야생동물 수입 규제가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외래 야생동물 중에서 파충류나 라쿤·미어캣·사막여우 등 작은 크기의 포유류의 경우 개인이 '애완용'으로 수입한 뒤, 체험동물원 등에 판매해 유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개인소유가 허용되는 동물 종을 정해 관리하는 ‘백색목록 제도’의 도입을 반기면서도 결국에는 국내에 들여온 야생동물의 거래까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혜경 대표는 "큰 규모의 동물원에 모여있는 국제적멸종위기종(CITES)은 타인에게 양수·양도할 때 환경청에 보고해야 하지만, 개인이 애완용으로 들여오는 야생동물의 경우엔 지금까지 거래 내역을 알 방법이 없었다"며 “내년에 도입될 백색목록제도는 관련법상 영업장 단위로만 관리되게끔 규정돼 있다. 거래 과정까지 기록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혜경 대표는 "큰 규모의 동물원에 모여있는 국제적멸종위기종(CITES)은 타인에게 양수·양도할 때 환경청에 보고해야 하지만, 개인이 애완용으로 들여오는 경우엔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개인이 들여오는 외래 야생동물을 지정해 관리하는 백색목록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변재원 청주동물원 수의사

허가제 충족 못한 시설서 나올 동물
공영동물원·국립생태원서 보호해도
불가피 공간 부족 문제 현실화될 것

변재원 청주동물원 수의사.
변재원 청주동물원 수의사.

■ 전문성 쌓기 어려운 동물원 수의사들


동물원이 종 보전의 역할을 해내려면 수의사 등 관리자들의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을 사육하고 진료를 보는 수의사들은 의지와 관계없이 담당 업무를 받는 탓에 전문 영역을 키울 수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공영동물원 수의사의 경우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기 때문에 동물원이 아닌 시·구청 등으로 발령받으면, 일반 가축동물의 방역·검역검사 등의 업무가 우선 주어진다고 한다.

홍성현 수의사는 "동물원이 단순 전시시설일 땐 순환 발령이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동물원 야생동물의 동물관리업무가 고도로 발전해 반려동물·축산동물의 진료·사육업무와는 아예 다른 영역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시점의 동물원은 야생동물 연구·보전·동물보호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할 역량이 있는 외부업체도 마땅치 않다"며 "동물원 내 야생동물을 담당하는 분야를 구분해 채용하는 등 전문성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영동물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유미진 교수는 "민영동물원의 경우 관련법상 동물원 내에 동물병원을 지을 수 없어 외부에 있는 동물병원이 위탁 형태로 야생동물 진료를 도맡고 있다"면서 "동물원에서 일하고 싶은 수의사들이 선택지를 넓혀 공영동물원뿐이 아닌 민영동물원에서도 소속감을 갖고 공부하며 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송혜경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시행령에 담긴 '자연채광' 제공 내용
'창문서 들어오는 빛 포함' 해석하면
야외방사장 노력 기울이지 않을수도


송혜경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송혜경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 구조·종 보전 역할로서의 동물원


전문가들은 동물원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야생성을 잃은 야생동물을 구조 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사라지는 야생동물의 종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종 보전이라는 동물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혈통기록'을 토대로 체계적인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미진 교수는 '생태교육의 장'으로서 동물원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물원이라면 관람객들에게 아픈 동물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을 가르쳐 야생동물 보호와 생태교육을 위한 거점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야생동물이 야생성을 잃거나 다쳐 야생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 동물원에서 책임지고 돌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관리가 미흡한 낙타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관리가 미흡한 낙타. 2024.7.2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쉼터(구조센터)'로의 전환을 꾀하는 동물원의 경우 전시시설과 구조센터라는 두 가지 역할 사이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변재원 수의사는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지만 관람객이 찾는 동물원이라는 특성상 동물을 협소한 공간에 둬야 한다"면서 "동물의 응급처치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동물을 관람객이 없는 곳으로 굳이 옮기지 않고, 보이는 곳에서 치료를 진행하는 식으로 동물을 우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공간 제약에 따른 어려움은 있다"고 말했다.

'혈통기록' 등 동물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송혜경 대표는 "야생동물을 서식지가 아닌 곳에서 키우는 이유는 멸종을 막기 위한 '보험'을 드는 것"이라며 "실제 아라비아반도에 사는 아라비아오릭스는 야생에서 사라졌다가 국제적인 보호정책의 성과로 야생에 재도입돼 현재 개체수가 회복된 사례"라고 했다.

그는 이어 "유전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동물끼리 교배를 해야 유전적 다양성이 올라가 종 보전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환경부가 동물들의 혈통을 기록해 '가계도'를 만들어놓고, 종 보전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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