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경제개발 추진 여파 안양 일대로
대기업들 군포 공장 조성… 지역 발전 견인
공장 이전 후 정체된 지역경제…인구도 감소
당정동 공업지역 시범 정비로 새 활로 모색
안양, 군포 등 경기도 중부권 산업 발전의 역사는 수도권 교통 인프라 발달과 맞물려있다. 1905년 경부선이 개설되며 사람과 물건이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1970년대 고속도로와 전철이 놓이자 도시가 팽창했다. 경제의 중심지인 수도 서울이 가깝다는 점 역시 성장의 속도를 앞당겼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경공업화에 이어 19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화가 본격 추진됐는데, 기업 입장에선 더 큰 부지와 많은 설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기존 서울 공장보다는 저렴하면서도 널찍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다수의 기업들이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도 교통이 비교적 편리한 안양시 일대로 눈을 돌린 이유다.
#부흥
영향은 인근 지역인 군포시에도 미쳤다. 유한양행, 농심, 금성전선(현 LS엠트론) 등 대기업들이 하나 둘 군포시에 공장을 세운 것도 이 무렵이다. 유한양행은 1970년 유한킴벌리를 설립한 후 공장을 군포에 뒀고, 이어 1979년엔 최신 시설을 갖춘 유한양행 공장도 군포에 세웠다. 농심 공장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안양공장(이름은 안양공장이지만 군포시에 있다)은 1976년 준공됐다. 한국케이블공업으로 출발한 금성전선 역시 1983년 인수한 군포공장이 사업 성장 기반이 됐다. 안양에서 뿌리를 내렸던 HL만도 역시 한때 군포시에 사옥과 공장을 뒀었다.
이들 공장이 소재한 당정리 일대에 다른 공장들도 다수 들어섰고, 해당 지역 일대는 대규모 공업단지로 거듭났다. 이를 기반으로 군포시의 공업화도 가속화됐다. 군포시사에 언급된 1975년 8월 말 기준 군포지역 공장 수는 57개로, 당시 군포가 속해있던 시흥군 내에선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공장이 많아지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했고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다. 1989년 군포가 시로 승격하고, 거리가 멀지 않은 안양 평촌과 군포 산본이 모두 1기 신도시로 개발된 것도 이런 점에 힘 입었다는 분석이다. 군포시는 이에 대해 ‘경제 개발이 활발히 전개되고 산업 시설이 입지가 유리한 군포지역으로 이전되면서 지역의 개발 속도가 급진전했다. 효율적인 지역 관리를 위해 정부는 군포읍을 군포시로 승격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때가 아마 지역의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어디든 많았고 활기가 넘쳤거든요.” 군포시에서 나고 자란 한 인사는 그 때의 지역 모습을 이렇게 회고한다.
#쇠락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 국가 균형 발전을 앞세운 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하며 수도권 공장들의 지방 이전을 촉진했다. 군포시 산업의 중심 역할을 했던 대기업 공장들이 모습을 감춘 것은 이 때부터다. 유한양행은 군포공장 설비를 2006년 준공한 충북 오창으로 이전했고, 금성전선(당시엔 LG전선)도 같은 해 전북 전주에 공장을 준공해 군포공장 설비를 옮겼다. 이들 기업들이 떠나가자 협력사들도 함께 이삿짐을 쌌다. 당시 지역 일대에선 기업 이전 반대 대책위원회까지 꾸려졌을 정도로 이전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지역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심각한 고용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이유 등에서였지만, 이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지역 안팎의 염려대로 안양·군포 일대의 대기업 공장 이전이 가속화되자 지역 경제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후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발전하면서 중심 추가 안양 일대에서 용인, 화성, 성남 등으로 옮겨가자 경기도 경제 지도도 크게 바뀌었다.
지역 경제가 얼어붙자 발전은 정체되고 인구도 점차 줄었다. 지난 2003년 27만1천여명이었던 군포시 인구는 한때 30만명을 바라봤지만 오히려 인구가 줄어 20년이 지난 지금은 25만7천여명 수준이다. 청년 인구는 20년 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반면 고령 인구는 크게 증가했다. 세월을 빗겨가지 못한 그 옛날 공장들은 고스란히 낡았고 주변 지역도 좁은 도로와 불편한 인프라를 개선하지 못한 채 함께 노후화됐다. 관건은 이들 공장들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이 여전히 군포지역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통계청이 실시한 경제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군포시의 사업체 수는 모두 2만6천142개인데 이 중 도·소매업체(5천811개) 다음으로 제조업체(3천875개)가 많다. 그러나 이들 제조업체의 종사자 수는 2만9천314명으로, 사업체 1곳당 평균 종사자 수가 8명이 안 되는 실정이다. 소규모 업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재생
군포시의 성장사(史)를 만든 공업지역은 현재 새 국면을 맞았다. 정부가 노후 공업지역 정비를 위해 지난 2019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지를 공모했는데 군포시 당정동 공업지역이 선정된 것이다. 옛 유한양행 군포공장 부지를 중심으로, 넓게는 약 16만449㎡가 대상이다. 정부는 2019년 당시 당정동 공업지역을 시범 사업 대상지로 선정했음을 밝히면서 이곳을 경기 중부권 광역산업벨트 혁신을 위한 R&D 혁신 허브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첨단 제조 기술과 디자인 융합 R&D 기업을 유치하고, 이와 함께 근로자들을 위한 주택이나 산·학 연계 시설, 비즈니스 호텔 등을 건립하는 내용 등도 개발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사업 계획은 지난해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도시 공업지역의 관리 및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해 현재는 실시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다. 해당 사업을 시행하는 LH는 국토교통부, 군포시와 협의해 내년 상반기 인·허가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군포시도 이에 발맞춰 지난해 말 전국 최초로 ‘2030 군포 공업지역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해당 계획의 중심에도 당정동 공업지역이 놓여 있다. 제조업에서 미래 첨단산업으로 지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게 군포시가 마련한 공업지역 기본계획의 목표인데, 당정동 공업지역을 R&D 중심의 혁신 클러스터로 탈바꿈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주변 지역의 재정비까지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군포시는 지난 2022년 과거 해당 부지에서 사업을 영위하던 유한양행과 바이오 연구소 조성 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찬란했던 어제를 품은 채 오늘날 빛이 바랜 공장들은 다시 지역의 도약을 이끌 내일을 꿈꾼다. 당정동 공업지역이 군포시에 다시금 부흥의 역사를 안겨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