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3 소비행태 분석 결과
궐리단길·청리단길·평리단길
소규모·개성 강조 ‘공간 상품화’
방역 조치 시기에 오름세 기록
구월로데오·부평역 매출은 침체
코로나19 유행 기간 부평·주안·구월로데오 등 인천 대표 상권들은 직격탄을 맞았지만, 반대로 매출이 늘어난 상권도 있다.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 등 소규모 점포가 밀집한 이른바 인천의 ‘리단길’은 코로나19 충격에서 비교적 타격을 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하대학교 소상공인경제생태계연구센터(소상공인센터)는 인천지역 소상공인 상가 정보 데이터와 삼성카드 결제액을 바탕으로 인천지역 궐리단길(구월도매시장 일대), 평리단길(부평문화의거리~부평시장 일대), 청리단길(부평구청역~굴포천역 일대) 2019~2023년 소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 지역 매출액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조치가 진행되던 시기에 오름세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리단길’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경리단길’에서 유래한 상권의 한 종류다. 일반적 상권과 달리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먹거리로 구성된 소규모 점포가 밀집해 있어 2010년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생겨났다. 인천 역시 구월 로데오거리와 부평 문화의거리 등 핵심 상권 인근의 작은 골목길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리단길이 형성됐다. ‘구월’의 줄임말 ‘궐’, 부평의 ‘평’, 부평구청의 ‘청’을 리단길과 결합한 방식으로 용어가 탄생했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기반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늘었다.
리단길 매출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충격에도 꺾이지 않았다. 2019년 6월 한 달간 평리단길 결제액은 1억4천958만원이었는데, 2021년 6월에는 28.5% 늘어난 1억9천225만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청리단길 결제액 역시 5천690만원에서 9천724만원으로 70% 넘게 증가했다. 평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현직(42)씨는 “코로나19 시기에는 (집합인원·영업시간 제한 등) 방역 조치로 사람들이 저녁에 술집을 가지 못하니 카페를 찾는 이가 많았다. 그 덕에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반면 리단길과 인접한 인천 핵심 상권 매출은 이 기간 감소했다. 구월로데오거리 결제액은 2019년 6월 15억6천만원에서 2021년 6월 14억5천만원으로 줄었고, 부평역 상권도 13억원에서 10억5천만원으로 하락했다. 구월로데오거리는 2년 사이 화장품·의류·귀금속 등 소매업 점포 휴·폐업이 늘었고, 부평역 상권은 각종 자격증과 어학 교육을 하는 학원이 대거 문을 닫으면서 수강생들을 주 고객층으로 하는 외식업종의 침체가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인하대 소상공인센터 이준영 연구원은 “리단길로 불리는 곳에서는 상품뿐 아니라 공간도 소비하게끔 만드는 ‘공간의 상품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며 “인천의 리단길이 일반 상권과 차별화된 상권으로 자리하면서 코로나19라는 외부 충격을 견뎌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팬데믹 이후 찬바람 부는 ‘리단길’
매출 줄고 임대료 늘어 폐업 선택
금리 인상·소비심리 위축 등 영향
공실은 늘어도 임대료 꾸준히 올라
이름값 기대감 반영… 침체 악순환
그러나 엔데믹 이후 인천의 리단길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해제가 시작된 2022년 상반기부터 일상 활동이 시작되자 인천의 주요 상권으로 소비 수요가 분산됐고,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까지 겹쳐 소비 심리가 위축된 탓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는 인천 핵심 상권은 물론 차별화된 상품·공간으로 인기를 끌었던 리단길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부평구 갈산동 청리단길에서 7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염민영(34)씨는 급감한 매출에 걱정이 크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저녁까지 손님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지만, 올해는 많아야 2~3개 팀이 가게를 찾는다고 한다. 7년 전 가게를 열 당시 월 140만원이었던 임대료는 매년 5%씩 올라 200만원에 근접했다.
염씨는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 임대료가 꾸준히 올랐다”며 “매출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절반 밑으로 줄었는데, 임대료는 계속 상승하니 수익이 나기 어렵다. 직원을 두면 무조건 적자인 상황”이라고 했다.
매출이 줄었음에도 임대료가 오르는 현상은 인천의 리단길에서 공통으로 벌어지고 있다. 통상 매출이 감소하면 점포가 문을 닫고 공실이 늘면서 임대료도 그에 맞춰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천지역 리단길 소상공인들은 하나같이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궐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유영진(32)씨는 “궐리단길의 현재 권리금은 3년 전 망원동 카페거리 수준으로 올랐다”며 “비슷한 임대료면 다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로 가지 인천에서 장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리단길에서 1년째 빈티지숍(구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이인선(39)씨는 “가게를 연 뒤로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한 이웃 가게가 꽤 많다”며 “계약 기간을 지키지 못해 권리금마저 포기하고 나가는 상인들도 있는데, 상권 임대료는 100만원 후반대까지 오른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을 닫는 점포가 늘고 있는데도 임대료가 하락하지 않는 이유는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임대인 입장에서 월세를 내리면 본인의 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며 “한동안 공실이 생겨 월세를 받지 못하더라도, 임대인 입장에서는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임대료가 과도하게 올라 공실이 발생하면 유동인구가 더욱 줄고 상권이 침체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적절한 임대료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리단길의 차별성을 홍보하면서 소비 수요를 유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정 상권의 매력도는 더 나은 매력을 지닌 상권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떨어진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리단길 상권에 매력적인 가게가 많다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