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의 담보로 묶여있는 피해자들
"셀프 낙찰이외 수단 없기에…"
"이미 대출 많아 낙찰 버거워…"
세대별 담보땐 전체 동의 필요
세입자 사정 달라 개시 어려워
기본적인 건물 유지·관리조차 제대로 안 되는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피해주택에서 여전히 피해자들은 기약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계약만료 기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언제 열릴지 모르는 경매만 기다리며 '전세 감옥'에 갇혀 있는 듯했다.
28일 화성시 봉담읍의 한 빌라에 사는 정모(36)씨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다"는 심정을 밝혔다. 지난해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사건 경찰 조사가 이뤄질 때만 해도 분노에 차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간다는 것이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같은 빌라 다른 입주민의 소식에 정씨의 무기력감은 더해져 갔다.
정씨는 "원래 계약대로라면 전세 만료 시점은 지난달"이라며 "피해 주택에 2억2천만원이 묶여있는 상황에서 향후 집이 경매에 나오면 '셀프 낙찰'을 받는 것 외엔 별다른 대안이나 수단이 없다"고 했다. 내 집 마련의 부푼 꿈은 날벼락 같은 전세사기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피해 주택에 있는 세대원 전부가 경매에 동의한 경우라면 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다. 가해자 일가족이 저지른 전세사기 수법 중 하나인 '쪼개기 담보 대출'때문에 피해 주택을 탈출하려는 피해자들의 발목이 묶이는 상황도 있었다. 세대별로 묶여 담보가 잡혀있는 가해자 일가의 건물들은 경매마저 개별 세대가 아닌 묶인 세대 전체의 단위로 한 번에 진행되도록 법률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행법상 담보로 함께 묶인 세대 중 1세대라도 경매에 반대하면 진행되지 않아 개시조차 순탄치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수원시 권선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장모(30)씨는 이 때문에 매일 속이 타들어 간다. 하루빨리 경매가 개시돼 셀프 낙찰을 받으려 경매 대금을 모으고 있지만, 모든 세대원의 동의가 구해지지 않아서다. 지난 8월 이미 계약 기간이 만료된 장씨는 언제 열릴지 모르는 경매 탓에 목돈을 항상 손에 쥐고 있는 상황이라 적금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반면 같은 건물에 사는 이모(34)씨의 상황은 또 다르다. 내년 3월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이씨는 반대로 경매가 개시될까봐 맘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셀프 낙찰을 받기엔 이미 많은 대출금이 쌓여있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당장 옮겨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되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선 피해자들을 위한 주거지원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다음 달 본격적인 시행령을 앞두고도 아직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해 줄 방안은 없다.
1년이 넘은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보증금 전액 회수는 기대조차 안 한다"며 "다만 피해를 입은 그날로부터 상황이라도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