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앞바다 농섬에 고장을 일으킨 미공군 전폭기가 예정에 없던 포탄 6발을 일시에 투하, 인근 가옥 160여채에 금이 가고 주민 7명이 부상을 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8일 오전 8시30분께 비행중인 미 공군소속 A-10전폭기 3대중 한대가 엔진고장을 일으키면서 탑재 중이던 500파운드짜리 포탄 6발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앞바다 농섬(일명 쿠니 사격장)에 일제히 투하했다.
이날 6발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진동과 폭발음으로 우정면 매향1~5리 등 5개 부락 162채 가옥의 벽과 지붕 등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부서졌으며 이에놀라 대피하던 오일선씨(여·76·매향1리)와 최계월씨(여·55·매향1리) 등 7명이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해 우정면 조암리 소재 성모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고는 3대로 편성된 미 공군 A-10전폭기 1개편대가 각각 포탄 6발씩(500파운드 짜리)을 싣고 군산 앞바다에 있는 모 사격장으로 비행하던 중 3번기가 갑자기 엔진고장을 일으키자 포탄을 쿠니사격장에 투하하라는 미공군 작전처의 긴급조치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1951년 농섬에 포격장 조성
굉음·난청·가축 유산 등 수십년 피해
1956년 불발탄에 어린이 사망 기록도
2000년엔 오폭 사고로 주민들 부상
2002년 '국가 배상' 판결 대법 확정
2005년 8월 폐쇄… 道 건축자산 등록
일부 보존… 평화생태공원 탈바꿈
2000년 5월 11일 경인일보에는 화성 매향리 오폭 사건이 실렸다. 쿠니사격장에 투하됐어야 할 포탄이 전투기 기재고장으로 인해 마을 주변에 떨어진 것이다. 오랜 기간 포탄 투하 공포를 겪어온 매향리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매향리 쿠니사격장은 1951년 미군이 매향리 해상의 농섬을 포격장으로 만들고 사격 연습을 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1955년 2월 미군 공식 사격장으로 지정됐다. 1968년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농섬을 포함해 2천277만㎡를 해상 사격장으로, 육지사격장 면적은 125만㎡로 정했다. 이에 따라 총면적 2천400만㎡에 달하는 거대한 사격장이 조성됐다.
사격장 폐쇄 청원이 시작된 건 1988년의 일이다. 인근 주민의 정부 청원으로 폐쇄가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오폭 사건이 일어난 2000년 농섬을 제외한 사격장 폐쇄가 발표됐다. 2005년 사격장이 모두 폐쇄될 때까지 이곳엔 미군 제7공군 51전투비행단 소속 쿠니 에인져스 부대가 주둔했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마을주민들은 사격장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전투기의 오폭은 물론이고 불발탄 등으로 11명이 인명피해를 입었고 이외에 주택파괴, 굉음으로 발생한 난청, 가축의 유산이 잇따랐다. 1956년 불발탄이 폭발하며 어린이 4명이 숨졌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는 쿠니사격장이 아닌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공원 내부에 사격통제소 건물이 남아 있다. S-5 숙소/식당, S-9 연회장, 카페, 체력단련실, S-20 장교막사, S-2 경비실, T-10 헬륨저장소 등 건물도 여전하다. 이들 건물은 대부분 시멘트 벽돌을 쌓고 골강판을 이은 지붕형태를 하고 있다. 일부는 내부에 부엌가구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사격장 흔적은 지워졌고 생태공원으로 변화했으며 주변에 화성드림파크(유소년 야구장)와 주차장도 새로이 만들어졌다.
쿠니사격장 근처에 매향교회도 있다. 매향교회는 3가지 건립 연도가 전해진다. 건물 정면 머릿돌에는 1988년 4월 18일을 건립일로 명기했다. 남아 있는 문헌인 역사문화환경 전수조사에는 건립 연도가 1968년으로 돼 있으며 또 다른 전승으로는 건립 연도가 1952년이라 한다.
쿠니사격장 포격 훈련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첨탑이 없어, 첨탑 없는 교회로 더 유명하다. 매향교회는 시멘트 벽돌을 쌓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른 형태의 건물이다. 외부에 붉은 칠을 했지만 대부분 벗겨졌다. 내부는 평상시 폐쇄된 상태라 관찰할 수 없었다.
2016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 '경기만 에코뮤지엄사업'으로 매향리 스튜디오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구조체로서 전체적인 골격은 유지되고 있는데 매향리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추정된다. 첨탑이 없으니 교회 십자가는 지붕 합각 일부에 덧댄 형태로 붙여져 있다.
쿠니사격장이 공원으로, 매향교회는 공공예술 장소로 변화한 사실은 이처럼 건조하게 서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매향리 주민들이 1988년 처음으로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2000년 오폭으로 피해가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는 요원한 것이었다. 2001년 4월 11일 매향리 주민에게 폭격 훈련의 피해를 보상하라는 첫 판결이 이뤄진다.
서울지법 민사37단독 장준현 판사는 매향리 미 공군폭격 주민피해대책위원장 전만규씨 등 매향리 주민 14명이 인근 쿠니사격장의 미군 전투기 사격 훈련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주민들에게 1억3천2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장 판사는 "주민들이 그동안 공업지역에 해당하는 소음수준에 노출돼 신체적, 정신적 피해와 생활에 방해를 받아온 만큼 미군 훈련의 위법성이 인정된다. 주민들이 소음피해 대책 수립을 국가와 미군측에 요청하기 시작한지 20년 이상동안 피해 감소책을 취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피고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1998년 제기된 소송이 결론을 내는데 2000년 오폭 사건으로 점화된 반미 여론이 한 몫을 했다. 당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미군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국가가 보상을 하도록 규정했을 뿐 구체적인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원상회복 요구 등을 미군에 묻지 못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1월 2심, 2004년 3월 대법원에서도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다. 국방부는 2004년 4월 쿠니사격장 폐쇄를 미군 측과 합의했고 2005년 8월 폐쇄에 이른다.
포격 방해 이유 첨탑 없는 '매향교회'
전시공간 매향리스튜디오로 재단장
녹슨 포탄 수천발 전시 '전쟁의 그늘'
쿠니사격장은 2016년 경기도 제1호 우수 건축자산으로 등록됐다. 쿠니사격장이 한국전쟁 당시 생활상과 1950년대 군사기지 건축 방법, 건축재료 및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향교회를 재단장해 만든 매향리 스튜디오에는 지난 2017년 '1951-2005 겨울_이기일 전'이 첫 전시로 열렸다. 작가는 천장이 무너지고 페인트가 벗겨진 매향교회 안에 매향리의 바람과 물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베어버려진 향나무를 주워 물방울을 입히고 황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고드름을 만들어 전시했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미군은 연간 250일 하루 12시간을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포탄 사격을 실시했다. 포탄의 무게는 12㎏(25파운드)이었다. 지금도 매향리 앞에는 녹슨 포탄 수천 개가 산처럼 쌓여 있다.
쿠니사격장·매향교회가 매향리 평화생태공원과 매향리 스튜디오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전쟁이 남긴 그늘이다. 그늘에서 벗어난 이곳이 소음 대신 고요, 포성 대신 야구하는 아이들의 기합소리로 물들길 바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