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 프롤로그]
반백년 전 한국전쟁 재발 방지 목적 건설
이제는 기억하는 이 찾아보기 드물어져
다양한 문화유산 보존하려는 의식 증가
급속한 도시개발 영향 나날이 소실위험
경인일보, 道·경기역사문화원과 협력
비지정 문화재 발굴·보존 등 꾸준히 노력
경기북부와 접한 강원도, 북한과 경계를 맞댄 이곳 논 위로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가로질러 끝없이 펼쳐진 벽의 정체는 지도엔 나타나지 않았다. 군사시설이기 때문이다.
촬영을 하거나 위치를 발설해선 안 되는 군사시설은 구글에 접속해 이 지역 항공사진을 보자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냈다. 대전차방호벽이었다. 벽은 시군 경계를 넘어 논과 밭 위로 주욱 뻗어 있었다. 누군가 지도 위에 연필로 그어 놓은듯, 주변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산과 강과 들판에 벽이 도열했다.
반백년 전에 지어진 대전차방호벽의 정체를 기억하는 주민은 많지 않다. 대전차방호벽은 용의 이빨을 닮아 '용치'라고 불린 콘크리트 구조물, 전쟁 시 폭파해 도로를 막는 용도인 낙석과 더불어 대전차방어선을 구축한다.
1970년대 만들어진 대전차방어선은 파주, 연천, 양주, 의정부, 고양, 포천, 동두천 등에 구축됐고 임진강까지 확장해 수도권방어선으로 기획됐다. 강원도 고성, 인제, 양구에서도 관찰되며 멀리는 서해안 강화까지 뻗어 있다. 강원도에서 경기도까지 수십킬로로 연결된 대전차방어벽의 모습은 가히 38도선, 휴전선과 더불어 제3의 휴전선이라고 할만하다.
한국전쟁의 경험으로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지만 50여년 이상 단 한 번도 쓰인 적은 없었다. 쓰임을 다하지 못한 대전차장애물은 2000년대 도시개발이 활발해지며 이해관계에 따라 하나 둘 철거되고 있다.
지난해 연중 게재된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바로 이 대전차방어선을 구축하는 대전차장애물 '용치'를 시작으로 근현대 시기에 만들어져 경기도에 소재한 여러 건조물의 현재를 확인했다.
용치를 보존해야 하는가, 없애야 하는가. 기사는 이 물음에서 시작했다. 도시의 흉물이며 냉전의 상징이지만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해 문화유산으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근현대 시기 비슷한 의미로 만들어진 여러 건조물까지 망라하게 된 것이다. 경기도는 근현대를 거치며 전쟁과 분단에 관련한 문화유산이 다수 남겨졌다.
우선 경의선과 경원선이 가장 큰 이유다. 수도의 상징성을 갖춘 서울은 보존 가치가 높은 우수한 건축물이 많이 밀집해 있고, 개항장인 인천은 다국적 요인으로 건축물이 많이 자리잡았고 특히 일제강점기 산업 유산이 부각된다.
이에 비해 경기도는 일제강점기 깔린 철도 기반시설, 미군의 지원을 통한 교육 및 종교시설이 고르게 나타난다는 게 특징이다. 파주, 동두천, 연천 등에 어느 정도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한강을 기점으로 한강 이북에 진지를 구축했기 때문에 경기도 근현대 문화유산이 북부에 집중된 것이다.
다만 경기도 근현대 문화유산을 전쟁과 분단이라는 키워드로 모두 정리하기엔 무리가 있다. 전쟁, 분단과 관련성이 높은 유산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유산도 분명 존재한다.
전쟁과 분단을 중심으로 경기도 비등록문화재를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전쟁과 분단에만 끼워맞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근현대시기 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등록문화재' 제도가 있다.
광역시도에선 시도등록문화재를 등록할 수 있는데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반드시 등록문화재로 만들 필요가 큰 유산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시간이 더 흐른 뒤 이들 유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선제적 관리가 필요한 유산을 위주로 현장을 확인했다.
시간은 많지 않다. 이미 정리되거나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미군 위락시설로 활용된 파주 럭키바는 2022년 어느 시점에 철거됐다.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였던 장파리의 당시를 증언해줄 문화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동시에 우린 장파리의 이야기 하나를 잃었다.
이는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개발과 변화 때문이다. 지난 5년 동안 평균 35만 채의 신규 아파트가 지어졌다. 아파트 주변으론 상가와 학교, 회사와 공공시설이 들어섰고 그만큼 주변이 개발됐다. 입주 물량의 3분의 1은 경기도였다. 그만큼 경기도의 개발이 급속하다는 얘기다.
지정문화재만으로도 한국사를 서술할 수 있고 과거를 기록할 수 있다. 국보, 보물, 국가지정문화재, 도지정문화재로 이어지는 위계는 역사문화자원의 그 자체로 가치를 규정한다. 이 가치 사슬 바닥에 비지정문화재가 있다. 사라지고 철거될 위기를 맞은 채로,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경기도 비지정문화재 현장을 지난해에 이어 확인한다.
이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호하기 위한 틀을 마련할 것이다. 비지정문화재에 그간 우리가 몰랐던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경인일보는 경기도·경기역사문화원과 함께 올 2분기 전쟁 흔적과 분단의 아픔, 3분기 수탈의 기록과 순국선열의 흔적이란 주제로 38표석·방공호·공양비 등을 훑고 4분기 경기도 역사문화의 뿌리를 찾아 경기도 등록문화재를 조명한다.
용치, 낙석, 대전차방호벽과 경기도 내 38선표석, 덕은동 쌍굴-고대산 폐터널, 동두천 안흥교회와 미군제7사단 31연대 기념관, 안양기독보육원-박달교, 의정부 캠프 클라우드 예배당, 수원 팔달 방공호, 가평 청평댐 초소·교각·공양비·머릿돌, 양주 일영역을 필두로 한 수탈의 기록은 경인일보가 올해 찾아올 우리의 기억이다.
우리가 만날 비지정문화재엔 각각의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그 이야기를 찾아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를 시작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