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잊지 않고 인천을 찾는 친구들
저어새는 매년 봄과 여름이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름 철새’입니다. 개체수가 많지 않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205-1호)’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저어새라는 이름은 부리를 좌우로 ‘저어’가며 먹이잡이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숟가락 모양의 검고 납작한 부리를 가지고 있어서 영어 이름은 ‘Black-faced spoonbill’이고요. 매년 아기 저어새의 80%가 인천 등 서해안에서 태어납니다.
인천에서 저어새가 보이기 시작한 건 무려 2009년부터입니다. 당시 남동유수지에서 저어새가 번식한 사실이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이후 매년 봄이면 저어새들은 남동유수지와 갯벌 등에서 알을 낳고, 겨울에는 추위를 나기 위해 더 따뜻한 홍콩, 대만, 일본 등으로 떠납니다. 그렇게 무사히 겨울을 보내고 나면 잊지 않고 다시 인천을 찾아옵니다. 갯벌이 넓게 형성돼 있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이 먹이잡이에 최적이기 때문이죠.
사라지는 저어새 번식지와 월동지
안타깝게도 저어새들의 번식지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당장 인천에서는 남동유수지 저어새들의 주요 먹이잡이 공간인 송도갯벌이 개발 등을 이유로 상당 부분 매립돼 버렸습니다. 영종도 갯벌도 인천국제공항 확장 등으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강화도 갯벌은 생활하수 등 육지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로 먹이잡이에 나쁜 환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남동유수지를 찾아오는 너구리, 각종 생활쓰레기도 저어새의 인천살이를 점차 힘들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월동지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만 타이난(台南)시는 전 세계 저어새들의 절반 이상이 찾는 월동지입니다. 하지만 최근 대만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주력하면서 저어새 서식지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시 하카타만은 인천을 떠난 저어새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월동지인데, 이곳도 신도시 개발 등의 이유로 갯벌 상당 부분이 사라져 버렸죠. 홍콩 위안랑(元朗)구 마이포 습지는 저어새 등 매년 400종이 넘는 철새가 찾는 대표 월동지지만, 최근 이상기후로 습지가 마르고 나무가 급속히 자라는 등 서식지 보호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저어새 멸종위기 등급 하향은 시기상조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IUCN은 기존 ‘위기(EN)’ 등급인 저어새의 멸종위기 등급을 ‘준위협(NT)’으로 두 단계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1995년 400여 마리에 불과했던 저어새가 2022년에는 6천마리가 넘게 관찰되는 등 개체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IUCN은 멸종위기 동물을 멸종위험도 순서대로 절멸(EX), 야생절멸(EW), 위급(CR), 위기(EN), 취약(VU), 준위협(NT), 최소관심(LC), 정보부족(DD), 미평가(NE) 등 9개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 중입니다.
곧바로 관련 단체들은 행동에 나섰습니다. 인천갯벌세계자연유산등재추진협력단을 포함해 전 세계 18개 단체가 “저어새의 멸종위기 등급을 신중하게 조정해 달라”는 의견서를 IUCN에 보냈다고 합니다. 저어새 개체 수 증가는 한국·대만·홍콩·일본 등 저어새 번식지·월동지 국가들, NGO, 조류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저어새 수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입니다. 그 결과 저어새의 멸종위기 등급 조정은 보류됐습니다.
저어새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
한국, 대만, 홍콩, 일본 등 각국 저어새 보호 활동가들은 2000년대 초반 홍콩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국가별 색과 알파벳을 새긴 가락지를 저어새 다리에 부착하는 방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저어새에 표식을 남기면 이동경로 등 관찰과 기록이 쉬워질 테고, 이를 통해 저어새 이동경로에 위험 요인은 없는지, 많이 찾는 월동지는 어디인지 등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 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가락지는 지금도 각국 활동가들이 서식지 보호와 위험 요소 제거 등을 위해 협력하는 매개체입니다.
동시에 우리나라 활동가들은 시민과 함께 남동유수지 쓰레기를 치우거나 둥지 재료를 가져다 놓는 등 저어새 지키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어새생태학습관은 3월에는 저어새 환영잔치를, 아기 저어새가 태어나는 5월엔 생일잔치를, 저어새가 월동지로 떠나는 11월엔 환송잔치를 여는 등 인천과 저어새와 공존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18일에도 올해 저어새 생일잔치가 열렸는데, 탐조와 그림 그리기, 열쇠고리 만들기, 백일장 등 시민과 학생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이처럼 아직 저어새는 생존을 위해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저어새를 아끼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아무런 이견 없이 저어새의 멸종위기 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