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째 결혼식 올리지 못한 부부들
백암재단 인천복지관서 32년 째 지원
5월 31일 오후 6시30분께 인천 미추홀구 CN천년웨딩홀. 이미 오랫동안 동반자로 살아온 5쌍의 신랑·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합동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결혼식이 시작될 때부터 마지막 부부가 행진을 마칠 때까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백암재단 인천종합사회복지관은 1993년부터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들의 늦은 결혼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서로 사랑한 만큼 앞으로 더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26년 만에 결혼식…앞으로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신랑 정남균(64)씨와 신부 윤선미(53)씨는 혼인신고를 한지 26년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는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꿈꾸던 결혼식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윤선미씨는 “그동안 함께 살면서 좋은 날도 있었고 슬픈 날도 있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며 “앞으로도 서로의 손을 놓지않고 평생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윤선미씨가 무척 아름다워 보였는지 남편 정남균씨는 신부 대기실을 떠나지 않고 아내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부부서약서를 이날 하객들 앞에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항상 존중하고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사랑하겠다”며 “지금껏 그러했듯 서로의 동반자로 평생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할머니, 너무 예뻐!”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하객들
결혼식 시작 전, 신부 대기실은 웃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어서인지 멀리서 멈칫거리던 손자는 “할머니 안 예뻐?”라는 구혜란(58)씨의 물음에 그제서야 방긋 웃으며 할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신부 구혜란씨는 신랑 문명철(68)씨와 함께 산 지 19년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습니다. 구 씨는 “주변 가족, 친구들이 나보다도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더 반가워하고 기뻐했다”며 “오랜만에 일가 친척들과 오랜 친구들을 만나 무척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누구보다도 결혼을 축하하는 가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김옥춘(52)씨는 “신랑, 신부 모두 멋지고 예쁘게 차려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늦더라도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먼 가족이지만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습니다.
■늦은 결혼, 쑥스럽지만 행복해요
18년 전 신랑 정태화(70)씨는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신부 장문영(55)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첫눈에 반해 한국으로 함께 돌아왔다고 해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는 아내의 성화에 늦은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는 정태화씨는 말과는 달리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사실은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웨딩드레스를 입혀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네요.
신랑 전서환(73)씨는 한껏 긴장한 신부 조희숙(66)씨를 보며 “나는 이미 막내 딸이 결혼할 때 딸의 손을 잡고 행진한 경험이 있어 떨리지 않는다”고 웃어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 덕분인지 이 부부는 씩씩하게 5쌍 부부 중 가장 먼저 행진길에 올랐습니다. 전서환씨는 “결혼식을 치를 돈이 없어 지금까지 결혼식을 미뤄왔다”며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지금이라도 결혼식을 올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새 출발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들을 위해 결혼식을 지원하는 이 사업은 어느새 제32회를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244쌍의 부부가 인천종합사회복지관의 지원으로 늦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번 합동결혼식을 진행하는 데 iH인천도시공사와 CN천년웨딩홀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후원자들이 청첩장·결혼식 영상·꽃다발 등을 제작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여러 자원봉사자들도 5쌍 부부의 새 출발을 도왔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신부의 드레스 끝단을 잡아주는 등 보조를 맡았습니다. 또 15년동안 웨딩촬영을 전문으로 했다는 봉사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진 촬영을 맡았습니다. 축가는 인하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 ‘오케바리’가 맡았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 또 이들의 결혼식을 돕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김동률의 노래 ‘감사’를 연주했습니다.
인천종합사회복지관 이승연 관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오랫동안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도울 수 있어 무척 기쁘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가정이 결혼식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