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Deep fake·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SNS ‘텔레그램’에서 학교와 지역. 직업별로 대화방이 있고, 이곳에서 지인의 사진 등을 딥페이크로 합성한 성착취물이 제작·유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초·중·고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국에서 2천492건의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인천에서도 신고된 63건 중 16건은 피해 사례로 확인됐습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피해 사례는 계속 생겨날 것으로 보입니다.
■ 음란물 말고 성착취물로, 범죄는 범죄로 부릅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 ‘리셋’(ReSET)은 피해자들의 사진·영상 등을 ‘음란물’이 아닌 ‘성착취물’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탕하고 난잡한 내용을 담은 영상, 사진 등을 일컫는 ‘음란물’이라는 표현은 성범죄의 심각성을 가리고, 자칫 피해자가 ‘음란한 행위를 한 사람’으로 여겨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N번방 사건’ 이후 2020년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에도 음란물이라는 표현이 성착취물로 바뀌었습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와 성학대가 가볍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피해자의 얼굴에 딥페이크로 합성된 육체 사진·영상들도 AI로 생성된 것이 아닌, 다른 여성의 신체일 수 있기에 이를 음란물로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사진·영상도 ‘몰래카메라’가 아닌 불법촬영물로 부르는 등 범죄는 범죄로 표현해야 합니다.
■ 딥페이크 성범죄, 막을 수 없었나?
정부는 최근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경찰청이 연계해 관련 영상물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텔레그램과 직접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핫라인을 확보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조직적인 디지털 성범죄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5년 가입자가 100만명이 넘는 온라인 사이트 ‘소라넷’에 워터파크 여성 샤워실에서 불법촬영한 영상이 유포됐습니다. 이후 이 사이트에 불법촬영물이 다수 확인되고, 회원들이 성폭행을 모의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 이듬해 사이트가 폐쇄됐습니다.
이어 2019년에는 성착취물이 게시되는 웹하드 업체와 이를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업체가 담합해 성착취물 삭제를 대가로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돈을 받은 ‘웹하드 카르텔’이, 이듬해에는 ‘N번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성계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전국 여성단체 84개가 모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가 내놓은 긴급 대책들은 사실 기존 대책을 반복하는 것이거나, 으레 했어야 할 내용들”이라며 “그동안 대규모의 디지털 성범죄가 이어지는 동안 왜 우리 사회는 이 사태를 막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여성혐오 등 잘못된 문화 뿌리 뽑아야
텔레그램 대화방은 학교, 지역, 직업 등을 단위로 생겨났으며, 대화방에 참여한 가해자들은 서로 아는 여성을 ‘능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을 모욕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문화’가 남성 집단에서 공유되고 정착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려는 여성 혐오가 남성 집단에 뿌리 깊은 문화로 자리 잡았다”며 “그동안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가 여성 혐오로 인한 범죄인 것을 직시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행동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여성계는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선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과 함께 우리 사회를 성평등한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성평등 컨트롤 타워로서 여성가족부의 역할 강화,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온라인 공간의 혐오 표현에 대한 대책 마련과 차별금지법 제정 등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