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동등한 공식활자, 보급정책은 걸음마
국내 점맹률 90%, 중도 장애인 높은 문턱
문화·장애인, 업무 주체 달라 활성화 더뎌
출판사에 디지털파일 요청권, 기관 1곳 뿐
시각장애인의 문자 '점자'는 2017년 점자법이 제정되며 한글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가진 우리나라의 공식 활자로 인정받았다. 이를 토대로 정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점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 배우기도 써먹기도 어려운 점자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지 못하는 점맹률은 90.4%에 달한다. 점자를 가르치는 기관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학령기 시각장애인은 특수학교에서 점자를 익힐 수 있지만, 중도 성인 시각장애인은 장애인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에서 점자를 배워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각장애인이 어렵게 점자를 배운다 해도 이를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법에서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지 않아서다. 컵라면, 음료수, 주방용품과 같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각종 생활필수품의 포장재에 점자를 넣은 '착한' 제품은 극소수다.
공공시설조차도 화장실, 층별 안내도 등에 점자가 엉터리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 총선과 대선에서는 점자가 반영된 선거공보물을 받을 수 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해열제, 진통제 등 일부 의약품 포장재에 제품명을 점자로 표기해야 한다고 정한 법이 시행된 것도 올해 7월이다.
■ 점자 정책, 수립 따로 시행 따로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점자 정책의 뼈대인 '점자발전기본계획'을 2019년부터 5년마다 수립하고 있다. 올해 발표된 제2차 점자발전기본계획에는 성인 시각장애인도 점자를 배울 수 있도록 전국 17개 시·도마다 점자교육원을 두도록 했다. 점자 도서 등을 제작하는 지역 점자도서관이나 장애인복지관에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를 토대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자체 문화정책 관련 부서가 점자 활성화 정책을 수립하는데, 정작 업무는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장애인 복지 관련 부서가 수행하고 있다.
인천시도 점자기본계획은 '문화정책과'가 수립하지만 점자 도서를 만들고 점자 교육을 진행하는 송암점자도서관은 '장애인복지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책 수립과 업무 수행을 하는 주체가 나뉘어 있어 점자 활성화에 제약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출판업계 협조 없인 점자책 제작 어려워
점자 도서를 늘리려면 무엇보다 출판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인천엔 송암점자도서관과 인천혜광학교가 시각장애인들의 요청을 받아 책을 점역(점자로 번역)하고 있는데, 출판사로부터 디지털 파일을 제공받지 못해 이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을 스캔한 뒤 오류를 찾거나 일일이 컴퓨터에 텍스트를 옮겨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디지털 파일을 제공받은 뒤 점역 프로그램을 이용해 곧바로 점자 책을 만든다. '도서관법'에 따라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디지털 파일을 출판사에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점자 도서를 만드는 전국의 학교 등 기관들은 이를 요청할 권한이 없다.
국립장애인도서관 관계자는 "출판사로부터 디지털 파일을 받는 것은 저작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현재로선 국립장애인도서관만 가능한 상황"이라며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점자 도서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