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각장애인의 일상엔 점자가 있다
미국 보스턴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의 교육철학
헬렌 켈러와 스승 설리번 다닌 곳
수강동에 대리석, 배려 대신 자립
작은 소리 인식, 사물 촉감도 배워
기본적 생활·타인과 소통법 교육
전문가 5~6명이 1명 맞춤 전담도
시력 없이 정보 습득 '점자' 핵심
미국 보스턴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 시청각 장애인 최초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헬렌 켈러(Helen Keller)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Anne Sullivan)이 다닌 곳으로 유명한 이 학교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으로 꼽힌다.
지난달 8일 고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하우빌딩'(Howe building)에 들어서자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라면 넘어지거나 부딪쳐도 크게 다치지 않도록 바닥과 모서리를 쿠션으로 보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여긴 여느 건물과 다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 관리부 직원 마누엘 가르시아(Manuel Garcia)는 "바깥 세상에는 쿠션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 학교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독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키워주는 걸 교육 목표로 삼는다. 학생들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대리석과 나무 바닥의 차이를 배우고, 딱딱한 벽을 어루만지며 벽돌의 촉감을 익힌다. 작은 소리까지 잘 들리는 아치형 천장, 창가를 향해 살짝 기울어져 있는 바닥의 경사면 등도 학생들이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이 직원은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라고 했다. 16만㎡ 교정에는 일부러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마다 바람에 흔들려 내는 소리의 차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학교 내 작은 연못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공간이다. 학생들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연못 주변의 풀이 얼마나 젖어 있는지 손으로 만져보며 최대한 연못에 가까이 다가가는 연습도 한다.
퍼킨스 시각장애인학교의 '확장된 핵심 교육과정'(ECC·Expanded Core Curriculum)도 학생의 자립을 돕기 위해 개발됐다. 밥을 먹고 옷을 입는 등 기본적 생활을 위한 훈련, 타인의 표정이나 시선을 못 보더라도 원만하게 소통하는 방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개인 맞춤형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 5~6명으로 구성된 팀이 학생 1명을 담당하고, 이 아이의 성장에 따라 팀의 구성이 달라진다.
예컨대 일상생활 훈련, 보행 보조 등 각 분야 교사들로 꾸려진 팀이 1명의 학생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학생이 홀로 일상생활과 보행이 가능해지면, 이를 가르친 담당 교사들은 팀에서 빠진다. 대신 교과목을 가르치거나 진로 탐색을 돕는 교사들이 팀에 합류한다.
'점자' 교육도 ECC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학생들이 시력 없이도 정보를 습득하고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유치원 단계부터 점자를 가르친다. 학생들은 1951년 퍼킨슨 재단의 디자이너 데이비드 아브라함(David Abraham)이 만든 '퍼킨슨 점자 타자기'를 이용해 공부하고 있다.
레이첼 브라운(Rachel Brown) 교사는 "오래전부터 시각장애인의 삶에 점자가 중요하다고 믿고, 학생들을 위한 점자 교육을 해왔다"면서 "학생들은 타인의 도움 없이 글을 읽고 쓰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보스턴/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