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까워진 치안 '자치경찰제도'… "1기땐 고칠 곳 알아봤다면 2기는 보완 집중"


동구 송림동 출생… "미군이 끓여준 죽 나눠 먹어" 한국전쟁 직후 인천모습 생생
경찰 이원화 시범·지방자치법에 자치경찰 조항 신설·독립된 법 제정 등 개선 다짐


지난달 31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자치경찰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진호 인천시 자치경찰위원장은 "자치경찰은 지방분권의 종착지"라며 "자치경찰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자치경찰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진호 인천시 자치경찰위원장은 "자치경찰은 지방분권의 종착지"라며 "자치경찰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에 NYPD(New York Police Department)가 있고, 로스앤젤레스에는 LAPD(Los Angeles Police Department)가 있다면 인천에는 인천 자치경찰이 있다.

2020년 12월 경찰법이 전면 개정됐고 경찰의 치안사무 중 지역 내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를 자치경찰 사무로 분리해 시·도에 이관하며 생긴 것이 자치경찰이다.

자치경찰 사무는 합의제 행정기관인 자치경찰위원회가 관장한다. 2021년 5월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인천시 제1기 자치경찰위원회가 출범했다. 3년의 1기 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되고 지난 5월에는 제2기 인천자치경찰위원회가 출범했다.

인천 자치경찰을 이끄는 한진호 인천자치경찰위원장이 최근 전국시도자치경찰위원장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전국시도자치경찰위원장협의회는 자치경찰제도 발전과 정책 개선을 위해 전국 18개 시·도자치경찰위원장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지난달 31일 한진호 인천시자치경찰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행정 권한을 나누는 지방자치, 교육 행정 권한을 나누는 교육자치, 그 다음에는 경찰권을 나누는 자치경찰이 있다. 지방분권은 이 시대의 큰 흐름이며 자치경찰은 지방 분권의 종착지"라며 "자치경찰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30여년 간 경찰에 몸담았다. 1976년 제24기 경찰간부후보생으로 경찰에 입직, 인천경찰청장, 경찰청 정보국장, 서울경찰청장, 국가정보원 제2차장,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 등으로 일했다.

인천자치경찰위원장 직을 맡게 된 데 대해 "혜택만 받고 살아왔는데, 마지막으로 고향 인천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인천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는데, 한 위원장은 자신이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인천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49년 인천 동구 송림동 242번지에서 태어났다. 전쟁 직후 인천의 풍경이 아직도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가 풀어놓는 자신의 성장기 옛 인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송림동 집 근처에 벼락을 맞은 시커먼 고목 나무가 있었어요. 6~7살 무렵에는 미국 군인이 중장비를 동원해 터를 닦고 송림동 성당을 지었는데, 미군 경비가 사라지면 친구들과 중장비를 놀이기구 삼아 장난치고 놀았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미군들이 큰 솥에 강냉이 가루에 우유를 섞어 죽을 끓여줬고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던 기억도 생각나네요."

한국 전쟁 직후 송림동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는 송림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어찌나 학생이 많았던지 한 학년에 11개 학급, 한 학급에 90명이나 학생이 있었다. 교실이 모자라 천막 교실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아버님이 배다리에서 작은 쌀가게를 운영해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그는 공부를 썩 잘했다. 인중·제고로 진학했다.

그는 제물포고 12회로 입학했지만 졸업은 13회와 함께했는데, 사연이 있다. 학창시절 아버님의 쌀 가게가 폭우에 모두 잠겼고, 큰 피해를 입었다. 빚을 지게 된 아버지는 도망치듯 떠나 동해로 오징어잡이배를 타게 됐다. 생계는 어머님이 책임져야 했는데, 월미도에서 생선을 받아다 부평 신촌 기지촌 앞에서 행상을 했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학교 시험도 제대로 보지 않고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고는 했다. 고교 2학년 때는 집을 나와 자신도 아버지를 따라 어선을 타려 하는 등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퍽 충격적이다.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를 기다리려 기차역에서 밤을 보내려 할 때였다. 추워서 벌벌 떠는 그에게 한 어르신이 함께 박스를 덮고 잠을 자자고 제안했는데, 그 어르신이 아침이 되니 숨진 것이었다. 쓸쓸한 죽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그 길로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로 복귀했다. 1년 유급 후 후배들과 졸업했다.

그는 "어린 시절 유급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다"면서도 "지금은 오히려 제물포고 2개 기수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인맥이 넓어졌다는 점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가 인천시자치경찰위원장 직을 맡게 된 것은 유정복 인천시장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고, 인천에서 경찰 생활을 경험한 자신에게 일을 맡겨준 것이 고마우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과 경찰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인사에게 일을 맡기지 않아 업무 파악을 위한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기 때는 18개 시도 자치경찰위원장 가운데 경찰 출신은 단 두 명이었는데 1기 활동이 성과가 좋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번 2기 들어서는 전국 10명이 경찰 출신이 맡으며 지난 1기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전국시도자치경찰위원장협의회 회장으로서 보다 실질적인 개선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는 "자치경찰의 여러가지 문제는 지난 1기를 거치며 많이 제시됐다. 이번 2기에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에 시간을 뺏기기 보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4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경찰 이원화 시범 실시, 자치경찰 사무에 대한 지방자치법 조항 신설, 독립된 자치경찰법 제정 등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와 지방이 다르고 인천도 구도심과 신도심이 차이가 있어 차이에 따른 경력을 달리 운영해야 한다"며 "자치경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자치경찰은 지방 분권의 종착지다. 지방분권을 완성하는 과정에 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한진호 인천시 자치경찰위원장은?

▲1949년 인천 송림동 출생
▲송림초·인천중·제물포고·고려대
▲1998년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2003년 인천지방경찰청장
▲2005년 경찰청 정보국장
▲2006년 서울지방경찰청장
▲2006년 국가정보원 제2차장
▲2009년 한중대 석좌교수
▲2016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