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의 현재와 풀어야 할 과제는
# 개발 vs 보존, 50년 동안 이어온 '갈등'
산업 발달로 수질관리 더 강화하는 정부
미흡한 생활시설 속 고립감 느끼는 주민
팔당댐 건설은 가난하고 헐벗었던 시절, 가난을 벗어나고자 국가가 선택했던 개발사업이다. 그 개발로 오히려 팔당은 더이상의 개발을 할 수 없게 통제됐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팔당호 수면처럼 '가만히' 두어야 하는 존재가 됐다.
그렇게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작동하는 동안 주민들은 수면 아래 숨죽여 희생을 감내해야 했고, 더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50년이 흘렀다.
50년, 그 수많은 이야기를 취재하며 중심에는 늘 팔당상수원 규제가 있었다. 상수원 인근 지역 주민과 정부가 반세기동안 대척점에 서 날카롭게 부딪힐 때, 그 빈틈을 정치권이 파고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들 대부분엔 규제가 그 단서였다.
50년 이야기의 끝에 결국 '규제'를 짚어내야 하는 것도 그것이 팔당의 현재이기도 하고,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 지역 주민의 삶 피폐하게 만드는 '규제'
'고통 덜어주겠다' 공수표 던지는 정치권
물 이용하는 수도권 눈치보며 약속 번복
■ 규제에 또 규제… 특대고시 지정 배경은
"물줄기가 같은데 왜 건너편은 규제를 풀어주고 여기는 묶어 두냐는 거지. 여기는 식당, 이발소가 다 못들어오는데 저쪽 강 건너는 건물이 막 높게 올라가거든."
팔당호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 남양주 조안면 주민 임춘일씨는 지역 토박이다. 그는 조안면이 속한 팔당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1권역에 가해지는 개발 규제를 떠올리면 부아가 치밀어오른다고 한다.
임씨가 말한 1권역은 '팔당 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지정 및 특별종합대책'에 명시돼있다. 특별대책지역은 물의 자정 능력 등에 따라 권역을 나누는데, 자정 능력이 낮은 1권역은 2권역보다 오염물질 배출과 토지 이용 등에 있어 더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고 관리된다.
문제는 조안면과 같은 1권역에 해당하는 지역을 제외하곤 경기도, 나아가 수도권 지역 상당수가 개발되고 발전됐다. 강산이 5번 변하는 동안 말 그대로 다른 지역은 '상전벽해'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조안면과 같이 1권역 지역들은 일상에 필요로 하는 생활시설 하나 들어서는 게 쉽지 않다.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밤에도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와 불꺼진 도시가 공존한다. 마치 도심 속 아무도 찾지 않는 섬에 사는 것처럼, 이 지역 주민들은 고립감을 느낄 때가 많다. 나만 도태되고 있다는 자괴감도 함께 든다고도 했다.
이러한 규제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34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수돗물 파동이 잇달아 발생했다. 상수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고, 이는 곧 '수질 보존'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은 각종 규제로 이어졌다.
발단은 지난 1989년 8월에 발생한 1차 수돗물 파동이었다. 국토해양부가 전국 상수도 수질을 조사했는데 중금속과 세균 등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던 것이다.
이듬해인 지난 1990년 6월에도 2차 수돗물 파동이 발생했다. 감사원에서 국내 7개 정수장을 조사한 결과, 수돗물에서 최고 기준치의 5배에 달하는 발암물질이 나왔다. 당시 서울시 등은 발암 물질 검출량이 기준 이하라고 반박했으나 수돗물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로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과 서울시내 수돗물 세균 오염 시비 등 1990년대 중반까지 수질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는 상수원 수질 보호를 위해 오염물질을 배출할 가능성이 있는 시설 입지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 1989년 2월부터 팔당 대청댐 수질 관리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수돗물 안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법 제정에 불씨를 지폈다. 환경부 물환경정책과 관계자는 팔당상수원 규제가 생긴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식수원 수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그러다가 특별대책지역 지정을 다시 논의하게 된 건 1989년 수돗물 파동이 벌어졌을 때인데요. 팔당상수원 규제지역 주민들 반대가 있었지만 환경부가 나서서 추진했습니다. 당시 여론이 특별대책지역 지정을 지지하기도 했고요. 1990년 2월 특별대책지역 지정에 대한 안이 마련됐고 그해 7월 지정안이 통과됐습니다."
당시 지정된 특별대책지역은 일부 지역 변동이 있었을 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별대책지역뿐 아니라 수변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 팔당상수원 수질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정책이 함께 시행되면서 '중첩' 규제 방식이 됐다. 환경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 규제를 유지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발달로 인해 새로운 수질 오염 물질이 생겨납니다.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요. 수처리 기술이 발달했더라도 이런 사고의 위험성까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거든요. 식수원 수질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으니 가급적이면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입지 규제 등은 유지가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팔당 이슈'
이중삼중의 규제로 환경은 지켜가고 있지만, 오랜시간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런 틈을 파고들어 고요했던 팔당을 뒤흔들어왔던 건 정치권이다. 팔당상수원과 관련한 이슈가 선거철마다 등장했다. 그중 지방선거마다 등장한 단골 소재는 중첩 규제 타파였다. 정치인들은 팔당상수원 규제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공언했다.
정치권에서 팔당상수원 규제를 언급하고 선거철마다 활용한 것은 애초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의 남발이었다.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서 팔당상수원의 중요성을 인지하지만, 유권자의 환심을 얻어야 하는 그 순간엔 규제 타파를 외치며 지역에 혼란만 가한 셈이다.
상수원규제지역 주민들도 정치권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주민들은 정치권이 내세운 공약 이면에 깔려있는 복잡한 셈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강천심 특별대책지역 수질보전정책협의회 광주지역 대표는 이렇게 지적한다.
"정권과 사람이 바뀌면서 약속은 번복됐습니다. 이런 탓에 2024년 현재의 팔당상수원 규제 정책은 1970년대에 머물러있어요. 50년 전 법이 지금도 존치한다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거죠. 정치권에서 선뜻 나서지 않은 건 막상 팔당상수원 규제를 완화하려면 수도권 주민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팔당호 물을 사용하는 대가로 물이용부담금까지 내는데 규제를 완화한다면 시민들이 들끓을 수 있잖아요.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은 불안요소를 우려하는 겁니다."
수질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들도 수처리 기술의 발전 등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김창균 인하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규제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규제의 방식이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법 제정 당시 정부에서 서둘러서 정책을 고안해냈다고 알려졌고 그 시점이 너무 오래됐으니까요. 주민들의 희생에 대해 마냥 눈감을 수는 없죠."
이병국 한국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팔당상수원 규제를 완화하면 그로 인한 혜택이 토착민에게 돌아가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정 수준의 면적 규제는 필요합니다. 다만 수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들은 일부 개발이 허용돼야합니다. 기술이 좋아져서 중금속, 발암물질 등 특정 유해 물질이 아닌 일반 오염물질은 수처리장에서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이 외부인에게 가지 않도록 하는 제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온난화 영향 떠오르는 문제 '기후위기'
폭염 지속됐던 올여름 녹조 뒤덮인 수면
민물가마우지 텃새화, 물고기 씨 말라가
■ '기후위기'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팔당
50살을 맞은 팔당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생태계는 변화하는 환경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또 다른 적응을 시도한다. 그 적응의 과정에서 팔당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해야 하고 그것을 또 풀어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팔당호가 최근에 직면한 문제는 무엇일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기후위기를 꼽는다. 올해 여름 팔당호 수표면은 녹색 물결로 일렁였다. 폭염이 한달 넘게 이어진 탓이다. 한강수계 생태계를 연구하는 강태구 한강물환경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녹조는 그 자체가 유기물입니다. 녹조는 팔당호 바닥으로 가라앉고 분해되면서 물속 산소를 없애거든요. 그 과정에서 독소가 나오고 악취를 풍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녹조 역시 생물이어서 물속 영양분, 온도, 빛 등의 조건이 맞으면 빠르게 번식합니다."
텃새화된 민물가마우지도 팔당호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단면이다. 민물가마우지는 겨울철새인데, 온난화로 인해 국내 곳곳에서 터를 잡게 됐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하류에 있는 작은 섬 족자도. 이 섬도 여지없이 가마우지 떼의 먹잇감이 됐다. 2015년쯤부터였다고 한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듬성듬성 섬 표층이 보인다.
가마우지는 팔당호 어민들에게도 골칫거리다. 남양주 조안면의 어부 조구봉씨는 가마우지라는 단어를 듣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마우지 때문에 물고기 씨가 말랐어요. 한번에 몇천마리씩 몰려다니니까 족자도가 벌거숭이가 됐어요."
수질 전문가는 예측불가능한 기후위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기영 경기연구원 기후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수준에 맴돌았던 지난 2015년 가뭄을 사례로 들며 팔당호 저수용량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수도권 제한 급수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퍼지던 때가 있어요. 팔당호에서 방류하는 물 양이 급감하니까 하류쪽 잠실수중보 등에서 녹조가 확 피어났습니다. 선례처럼 기후라는 예측불가능한 요소로 인해 팔당호 운명이 좌우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이종우·공지영·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