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박물관' 인접한 동네
보물·道문화유산 등 보호 규제
사업성 확보 못해… 재개발 무산
"마지막 기회…" 공공개발 신청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만큼 그늘도 컸다. 규제에 묶인 문화재 주변은 모든 것이 멈춘 채 낙후됐고 주민들의 고통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국가유산청이 새롭게 출범, '보존' 중심의 정책에서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주민들에겐 희소식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문화유산 주변지역의 실태를 살펴보고 문제 해결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한다. → 편집자주
오래된 빌라와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선 마을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주민 대부분 70대가 넘는 노인들이었고, 마을 내엔 편의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반지하를 낀 3층 빌라들 사이로 차가 지나기 힘들 정도로 비좁은 길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인도와 차도 구분도 없는 길에서 노인들 옆으로 택배 트럭이 위태롭게 지난다.
1979년에 입주했다는 S연립주택은 45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낡을 대로 낡았다. 벽면은 갈라지고 벽체가 떨어져 나가 곳곳에 철근이 보였다. 한 주민은 "콘크리트가 삭아서 이제 버티지 못해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건물이 기울고 있다. 살기가 힘들다"라고 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런 모습은 조금만 마을을 벗어나면 완전히 달라진다. 마을 남쪽 개천 너머에는 2년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마을 서쪽도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에워싸고 있다. 유독 이 마을만 하루하루 낙후되고 있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안양박물관과 맞닿은 이 마을은 수십년간 문화재보호법에 발이 묶여온 곳이다.
마을 바로 옆 안양박물관 입구에 보물 제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서 있다. 인근에는 경기도 지정 문화유산인 '중초사지 삼층석탑'과 '안양사지', '석수동 마애종'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의 3분의 2가량은 건축물의 높이가 최고 8m 또는 14m(평지붕 기준)를 넘을 수 없는 규제를 받고 있다.
낙후된 마을을 벗어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2013년에는 민간사업자와 함께 마을 3만5천여 ㎡ 재개발 사업을 추진해 정비예정구역 지정까지 받았지만, 사업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년 만에 무산됐다. 좁은 면적에 빌라 등이 밀집한 데다 건물을 높일 수 없다 보니 사업성이 터무니 없이 낮았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지난 9월30일 안양도시공사에 '공공재개발사업'을 신청했다. 주민들 힘으로 안되니 공공이 나서서 재개발을 해 달라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번을 '마지막 기회'라며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사업대상에 선정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안양도시공사 관계자는 "내년 2월까지 공공개발 신청을 받은 후 심사를 해 사업대상을 선정한다. 심사에서는 아무래도 사업성을 중요하게 살필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 3면에 계속 ([경인 WIDE] '문화재 규제'로 낙후된 지역, 국가차원 지원해야)
/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