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이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런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확산하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야 할 일은 세계문학 담론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글로벌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제2의 창작’으로 불리는 문학 번역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한국문학번역원이 ‘K-문학’ 활성화를 위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는 번역대학원대학교의 설립을 본격 추진하는가 하면, 증액될 예정인 예산을 토대로 다양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지난 11일 서울시 중구 광화문 인근에서 진행된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전수용 원장은 “최근 몇 년간 한국문학이 K-문학이라는 독자적 브랜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인정했듯 한류의 차기 강세 분야는 문학이라고들 이야기한다”며 “세계 무대에서 한국문학의 수요를 확장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외에서는 한국문학을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상황이다. 한강을 필두로 국내 유수 작가들이 해외 문학상 입후보에 오르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 한국문학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전할 전문번역 인력의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실제 지난해 유수 문학·번역상 수상 이후 한국 작가들의 입후보작은 전세계에서 널리 읽혔다.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메디치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프랑스어 번역본이 1만6천부, 전미도서상에 오른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영어 번역본이 1만2천부 팔렸다.
이외에도 부커상 국제 부문에 오른 천명관의 ‘고래’와 국제 더블린 문학상에 올랐던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영어 번역본도 각각 6천부가 나갔다.
한국문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7개 언어권 120명가량의 수강생이 활동 중인데, 이를 더 확장해 석·박사에 준하는 정식 학위를 부여하고, 전임교원을 확충해 전문 인력으로 키우겠다는 심산이다.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가 있지만, 비학위 과정이기에 정식 학위를 받을 수 없다. 이에 문학진흥법을 개정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대학원대학을 한국문학번역원에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해당 대학원의 설립을 위해서는 85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수용 원장은 “(해당 대학원은)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대한 소양을 닦아 현지어로 유려하게 한국문학을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통번역 대학원의 학생을 빼앗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있지만 (업무) 영역은 현저하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비 14% 삭감됐던 한국문학번역원의 2024년도 사업비가 내년에는 회복된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문학 번역과 해외출판 지원에 투입되는 지원금은 올해 23억원에서 내년 31억원으로 증가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내년도 총예산 역시 141억원으로 올해 대비 6.3%가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이정근 한국문학번역원 경영기획본부장은 “해외출판사의 번역 출판 지원사업이 연 30% 가까이 폭증하고 있어 확대 지원하려 한다”며 “낮았던 번역 단가도 높이는 등 번역가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전문 인력 양성과 증액된 예산을 바탕으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새로운 축으로 도약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작품을 단순 번역하고 출판하는 것을 넘어, 한국문학의 새로운 수요를 발굴해 지평을 확장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주요 사업으로는 해외 담론 형성을 위한 리뷰대회 개최 및 기획 출간, 글로벌 문학 네트워크 강화 등이다.
한편, 지난 2001년 출범한 한국문학번역원은 현재까지 44개 언어권에서 2천171건의 한국문학 번역·출간을 지원해왔다. 특히 올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그의 작품 76종을 28개 언어로 번역했으며, 세계 주요 문학 행사·도서전시회 파견 등에 7천만원가량을 지원하며 뒷받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