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용 우석장학회장은 김포복지재단을 통해 거액을 쾌척하는 것과 별개로, 장학회 출범이래 한 번도 빠짐 없이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해왔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양승용 우석장학회장은 김포복지재단을 통해 거액을 쾌척하는 것과 별개로, 장학회 출범이래 한 번도 빠짐 없이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해왔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3만원 들고 상경해 자수성가 이뤄낸 사업가

남모르게 지역 소외이웃 돕다가 장학회 참여

 

직책 두지 않고 모임도 열지 않았던 장학회

출범 11년 만에 방침 변경해 초대회장 추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겠다는 소박한 취지로 하나둘 모였다. 수치적인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발하지 않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업에 의지가 있는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한 번 선발하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지원을 계속했다. 단, 점수가 오르진 못할지라도 지금의 성적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지난 2013년 시작된 김포 우석장학회는 일반적인 장학사업과 여러모로 달랐다. 회장이나 총무 등 직책을 두지 않고 정기모임도 열지 않았다. 회비도 자율이고 회원 애경사에 회비를 사용하지 않는 등의 방침 아래 본연의 장학사업에만 집중했다. 거창한 장학금 전달식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양승용(56·사진) 우석장학회장은 출범 11년 만인 올해 처음으로 추대된 초대 장학회장이다.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지난 1999년 김포 대곶면에 플라스틱물질 제조기업 원영포리머(주)를 설립했다. 공장에서 쏟아지는 불량생산 플라스틱폐기물을 새로운 산업원료로 재탄생시키는 기술로 사업을 일군 양 회장은 남모르게 지역 소외이웃을 돕다가 장학회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장학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양승용 회장은 연말마다 김포복지재단을 통해 거액을 쾌척하는 것과 별개로, 장학회 출범이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한 인물이다. 회원들이 기존 방침을 변경하고 그를 회장에 앉힌 이유는 더 많은 후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어려운 여건 속 학업 의지 있는 아이들 후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 전까지 지급

 

“언젠가 반드시 사회에 향기 퍼뜨릴 거라 확신”

“장학회에 직책을 따로 두지 않고 모임도 안 하다 보니 갈수록 결속력도 떨어지고 애정도 떨어지면서 좀처럼 회원이 늘지 않는 거예요. 장학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회비인데, 이대로는 지속력 있게 장학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 모든 회원이 공감해서 올해 직책도 신설하고 회비 최소금액도 정하게 됐죠.”

우석장학회는 현재 양승용 회장을 중심으로 27명의 회원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한 달 최소 금액은 5만원이지만, 각자 사정에 맞춰 더 많은 회비를 내고 있다. 지금껏 우석장학회의 도움을 받은 학생은 300여명, 지급된 장학금 총액은 2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17명의 학생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회장이 되기 전에 제가 회원들에게 한 얘기가 있어요. 말려면 말고, 할 거면 확실하게 해보자고요. 얼마 전 장학금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어느 어머님이 ‘장학금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시는 걸 보면서, 힘닿는 데까지 이어가 보자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일회성 지급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우석장학회만의 중요한 차별점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 직전까지 꾸준히 지급하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조건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누구라도 수혜대상에서 탈락할 수 있다.

우석장학회 회원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우석장학회 제공
우석장학회 회원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우석장학회 제공

“한 번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는 바람에 탈락한 적이 있는데 장문의 편지를 써서 찾아왔어요. ‘장애 때문에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형편상 장학금을 못 받으면 힘들어질 상황이라 다음번에 꼭 성적을 올리겠다’고 호소하는 거예요. 우리가 뭐 대단한 조직도 아니고, 열심히 하겠다는 진심을 보이는데 지원 못 할 이유가 없었죠. 그러한 ‘동기부여’가 우리 장학회의 취지이기도 했고요. 아이가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루 말 못할 보람을 느꼈습니다.”

양승용 회장은 모친이 꼬깃꼬깃 손에 쥐여 준 3만원을 들고 상경해 자수성가했다.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많았으나 주변 사람들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양 회장은 “밥 먹고 살만하면 불우이웃도 좀 돕고 살아야지 혼자만 잘살면 안 된다. 우리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도 언젠가 반드시 사회에 향기를 퍼뜨릴 거라 확신한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