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프롬 인천] 부평이 만든 세계적 복서 홍수환
한국이 블랙핑크, 손흥민, 소설가 한강처럼 국제 무대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인 1974년 7월3일. 스물넷 청년 복서 홍수환(사진)은 한국에서 지구 반 바퀴쯤을 돌아야 다다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를 외치며 국민 영웅으로 거듭났다. 그 순간 만큼은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체력이 곧 국력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챔피언 홍수환이 복싱을 막 시작한 10대 후반부터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1974년까지 인천 부평에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서울내기 홍수환은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형제들과 함께 부평으로 흘러와 미군기지 '애스컴' 앞 기지촌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애스컴 내 카투사 전용 스낵바를 맡아 운영했다. 어머니는 막 복서 경력을 시작한 넷째 아들 홍수환이 미군 병사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홍수환은 애스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 미군 복싱 시합에 출전하기도 했다. '미제'(미국산) 복싱 장비도 후원받았다. 홍수환이 국제 무대에서 낯선 외국인 선수와 맞붙어도 꿀리지 않은 건 부평 미군부대에서의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한국 최초로 적지(敵地)에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강심장을 갖게 된 배경이다. 부평 신촌 사람들도 홍수환을 응원하고 도왔다.
한때의 좌절을 딛고 일어난 홍수환은 1977년 '4전 5기'의 신화를 쓰며 두 번째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은 일본 게임 '포켓몬스터'(한국판)에 그의 이름을 딴 캐릭터 '홍수몬'이 있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복서가 됐다. 홍수환은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낸 부평이 자신을 챔피언으로 성장시킨 동네라며 감사를 표했다.
"우리 어머니가 미군부대에서 식당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미군부대에서 훈련하지 않았다면 세계 챔피언은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참으로 '부'(富)하고 '평'(平)한 이름도 얼마나 좋습니까. 부평이란 동네가 사랑스럽습니다."
→ 관련기사 ([아임 프롬 인천·(38)] 부평이 키운 오뚝이 챔피언 복서 홍수환입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