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발병까지 고려한 ‘후쿠오카 100 프로젝트’

 

고령화 시대… 사회적 공감대 형성

공공디자인·교육 등 지원정책 접목

이용 쉽게 지역 곳곳 ‘친절함’ 가미

오렌지 파트너스 구성 상품 개발도

토 카즈히로 후쿠오카 치매프렌들리 센터장(사진)이 지난달 센터 내에 전시된 린나이 가스레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가스레인지는 치매 환자가 상품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환자 특성을 반영해 만들었다. 2024.10.23 일본 후쿠오카/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토 카즈히로 후쿠오카 치매프렌들리 센터장(사진)이 지난달 센터 내에 전시된 린나이 가스레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가스레인지는 치매 환자가 상품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환자 특성을 반영해 만들었다. 2024.10.23 일본 후쿠오카/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치매 환자가 실패하게 만들지 않는다.’

일본 규슈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시는 치매 환자가 이전과 같은 일상을 유지하고 사회 구성원이 환자에 대한 이해도와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공공디자인, 일자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인간 중심의 돌봄 ‘휴머니튜드’(Humanitude·인간과 태도의 합성어)를 접목했다.

후쿠오카시는 2017년 이 같은 내용의 정책 ‘후쿠오카 100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든 이 프로젝트는 도시 곳곳에 안착하면서 시민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100세 시대’ 도래로 발생하는 노인 인구 중심의 사회구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회 구성원은 나이가 들게 되고, 잠재적으로는 치매 환자로 남은 일생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달 23일 인지증환자들을 위한 공간인 후쿠오카 프렌들리센터에 낮은 시선을 가진 치매 환자들을 위해 화장실 표지판을 아래에 위치한 모습이다. 2024.10.23 일본 후쿠오카/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지난달 23일 인지증환자들을 위한 공간인 후쿠오카 프렌들리센터에 낮은 시선을 가진 치매 환자들을 위해 화장실 표지판을 아래에 위치한 모습이다. 2024.10.23 일본 후쿠오카/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후쿠오카시는 치매 환자가 스트레스 없이 지역사회를 활보하도록 공공디자인에 ‘친절함’을 가미하기로 했다. 회의실 출입문에는 문을 두드리는 모습의 그림문자(픽토그램)를 부착해 허락 없이 문을 열면 안 된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화장실은 남성과 여성을 형상화한 안내 표지판 대신 사람이 변기 위에 앉아 있는 그림문자로 교체했다. 치매 환자는 기존 화장실 안내 표지판으로는 화장실의 목적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화장실 위치를 알아채고, 문을 열고, 변기를 확인하는 일련의 단계를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했다.

남녀가 구분해서 이용해야 할 시설 출입구는 각각 후쿠오카시 전통 유카타 허리띠에만 적용되는 녹색, 붉은색을 배경으로 사용했다. 환자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색을 이용해서 시설이 남녀로 구분돼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안내판은 약어나 전문 용어 사용을 줄이고 평소 사용하는 글로 표시했다. 환자는 몸을 앞으로 굽힌다는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그림문자, 안내판은 기존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바닥에서 약 1.2m 떨어진 높이)에 설치한다.

치매 환자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조직으로는 ‘오렌지 파트너스’를 구성했다. 오렌지 파트너스는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상품 개발을 지원한다. 기업이 치매 환자 지원 정책을 맡고 있는 후쿠오카 치매프렌들리센터에 사업계획서를 내면 그에 적합한 치매 환자를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업은 상품 개발자로 치매 환자를 채용하고 이들의 이용 경험과 의견을 수렴해 시제품을 만든다. 오렌지 파트너스에 참여하는 한 기업 상품 개발 담당자는 “치매 환자를 채용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며 “공공뿐 아니라 민간 업계에도 서둘러 잠재적 고객(치매 환자)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치매 환자들을 위한 공간인 후쿠오카 프렌들리센터 내 전시장 모습. 2024.10.23. 일본 후쿠오카/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지난달 23일 치매 환자들을 위한 공간인 후쿠오카 프렌들리센터 내 전시장 모습. 2024.10.23. 일본 후쿠오카/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오렌지 파트너스에는 도요타, 린나이와 같은 대기업을 포함해 의류, 가전, 원예, 사무·문구용품 등을 생산하는 기업 110여 개가 참여하고 있다. 도요타는 치매 환자가 병원, 집, 공공기관, 편의점 등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스마트 워치를, 린나이는 치매 환자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스레인지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가스레인지의 경우 치매 환자의 안전을 위해 불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불을 사용하되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됐다.

후쿠오카시는 초등·중등학교와 공민관(시민문화회관), 의료기관 등을 중심으로 치매 환자를 대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데 힘쓰고 있다. 치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공생하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다. 환자에게 어떻게 접근해 대화를 걸고 시선을 맞춰야 하는지 정보를 주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약 3만명의 시민이 휴머니튜드 강좌를 수료했다.

토 카즈히로(To Kazuhiro·50) 치매프렌들리 센터장은 “누구나 치매 환자가 되더라도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나’ 그대로 살아가게끔 하자는 게 후쿠오카시의 치매 정책”이라며 “치매 환자의 경험이 존중받고 이들의 시도가 실패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