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중증 안나누고… 지각해도, 미숙해도 가능한 일하게 한다”
고용·채용 연계·인지향상 프로·모임공간 제공
수시로 업무 바꿔주고 일자리 영역 넓히는 시도
초고령사회 일본 ‘환자 사회적 역할 부여’ 노력
“안녕하세요. 인쇄물을 관장님께도 전달해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 일본 후쿠오카시 마이즈루 공민관(시민문화회관). 타케타니 키요미(Taketani Kiyomi·76)는 ‘지역 공공기관이 치매 환자에게 친화적 건물 내·외부 구조를 적용해 좋은 디자인상을 받았다’는 내용의 홍보물 50부를 공민관 직원에게 전달했다.
타케타니가 공민관 직원에게 세 마디 건네고 홍보물을 넘겨주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공민관 계단을 오르기 전, 출입구 문을 밀기 전 두 차례 멈춰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옷매무새에 신경 쓰고 착용한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어딘가 조금 어설프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타케타니는 후쿠오카 치매프렌들리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중증 판정을 받은 치매 환자다. 센터는 지난해 9월 휴머니튜드(Humanitude·인간과 태도의 합성어)를 기반으로 한 후쿠오카시 치매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치매 환자 일자리 창출과 기업 채용 연계, 인지 능력 향상 프로그램 운영, 모임·세미나 공간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타케타니는 업무 중 자신의 역할을 잊을 때가 많다. 가끔은 근무 일정조차 잊는다. 이날 출근 시간을 한참 넘겨도 나오지 않은 타케타니에게 센터 직원이 연락해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잘린 줄 알았다. 지난번에 제대로 못해서…”라고 답했다. 그를 달래고 위로해서 다시 출근하게 하는 것도 센터 업무다.
치매 환자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타케타니는 목적지로 향하다가 공공게시판의 선거 공보물 앞에서는 “누구를 찍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고, 한 소학교(초등학교) 옆을 지나면서는 “익숙한 운동회 노래가 나오네”라며 잠시 멈춰섰다.
타케타니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치매 환자가 업무 처리에 어려움을 겪거나 지각을 한다. 그래도 센터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역 행사 사진 촬영’ ‘센터 방문객에게 인사하기’ ‘두꺼운 종이를 가위로 자르기’ 등 치매 환자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수시로 바뀐다. 센터는 치매 환자 돌봄에 적용된 휴머니튜드의 영역을 일자리로 한층 더 넓혀가는 시도를 한다.
노인 인구가 3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 일본은 ‘치매 환자와 공생’을 과제로 삼고 그 전제 조건인 ‘사회적 역할 부여’에 힘쓴다. 치매 환자와 공생하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센터의 도전은 다소 아득하고 막연해 보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간단하다. 센터가 치매 환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데 정해진 기준이나 업무 지침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단지 환자가 관심 있어 하는 일이면 된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센터 소속 치매 코디네이터 우에타 토모미(Ueta Tomomi·35)는 “우리가 치매 환자와 함께 일하는 방식은 명료하고 간단하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한다’ ‘싫어하는 건 안 한다’ ‘가능한 일을 하게 한다’ 딱 이 세 가지뿐”이라고 말했다.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