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는 딸 자랑스러워한 아버지, 부녀 역할로 함께 무대”
유명 원로 연극인 전무송의 딸로 출생
어릴때부터 무대 접해… “나도 해야지”

이편에서 보면 저편이 최선인 것 같고, 저편으로 내닫고 보면 본래의 자리가 최선인 것이 우리들 삶의 비극적 의미인 것 같습니다. (연극 ‘통화중’ 대사)
이달 3일 인천 중구 신포아트홀에서 연극배우 전현아(53)가 홀로 무대에 올랐다. 편지를 써내려가며 쉴 새 없이 대사를 쏟아냈다. 50석의 소극장은 관객들로 꽉 찼다. 먼 동유럽의 타지에서 홀로 고립된 40대 중반 ‘은우’로 분한 전현아는 홀로 무대 이곳저곳을 누비며 극을 이끌었다. 관객들은 기쁨의 춤을 추는 주인공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또 고독과 우울을 버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주인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70분간의 모노드라마(1인극)가 끝나자 관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달 막을 내린 전현아의 모노드라마 ‘통화중’의 초연은 인천에서만 진행됐다. 전현아가 선보인 모노드라마는 인천과 연결고리가 많다. 배우, 원작 수필 ‘붉은 유뮈’를 쓴 김훈동 작가,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한 박은희도 모두 고향이 인천이다.

이번 아임프롬인천의 주인공 전현아는 어릴 적 인천에 살다 초등학교 입학 전 떠났지만, 인천을 고향이라고 말한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매 방학마다 친가와 외가가 있는 인천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천에 거주한 물리적인 시간 그 이상으로 마음의 거리는 인천으로 향해 있었다.
전현아는 연기를 향해 꾸준히 지름길 없이 전진하는 배우다. 그의 이름에 뒤따르는 연극계 대선배인 아버지 전무송의 이름은 젊은 시절 그에게는 떠나고 싶은 그늘이기도 했지만 그가 묵묵히 쌓아올린 30년 연기 인생은 그를 폭넓은 배우로 성장시켰다. 어느덧 중견이 된 그에게 아버지는 따라야 할 연기 인생의 지표이자, 그가 끊임없이 연기를 갈고 닦을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됐다.
이달 5일 서울 마포구 자신의 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전현아에게 인천에서 올린 연극 ‘통화중’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서양에서는 마흔 살이 지나지 않은 배우들은 모노드라마를 잘 못하게 한다고 해요. 연륜이 없다고. 저도 혼자 무대를 책임져야 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들이 있다보니 쉽게 나서지 못했었죠. 마흔한 살 때 모노드라마(‘쉬반의 신발’)에 처음 도전했어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박은희 선생님으로부터 극 제의를 받고 망설임 없이 꼭 하겠다고 했답니다.”
전현아와 박은희 연출가는 인천 부평구에 있는 연습실과 서울을 오가며 45일 간 극을 준비했다. 박은희 연출가(전 인천시립극단예술감독)는 “전현아 하면 떠오르는 모노드라마 레퍼토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며 “대표적인 인천 출신 배우인 아버지를 따라 전현아가 인천 연극, 문화의 명맥을 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10여년 만에 1인극에 다시 도전한 그는 공연 장소로 인천을 택할 만큼 인천 출신 아버지에 이어 인천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아버지 어머니께 인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고, 방학마다 시간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눈 감고도 찾아다닐 수 있는 친근한 동네”라며 “주로 주안동에서의 기억이 많다. 벌거숭이 산이었던 문학산, 논밭이었던 관교동에서 사촌동생들과 뛰어놀던 기억이 있다. 또 70년대 송도유원지에서의 추억도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국악고 진학후 결국 꿈 좇아 연영과 입학
연극 전념하며 극작가로 기량도 쌓아
전현아는 어릴 적부터 연극 배우가 아닌 다른 직업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아버지를 잘못만났다’ 이런 얘기를 해요. 정말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연습실, 무대를 접했고, 자연스럽게 ‘나도 저걸(연극을) 해야지’ 했습니다. 드라마센터, 국립극단을 가면 소품실, 분장실을 구경하고 그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냄새로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때 그 분장실, 극장하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답니다.”
자연스럽게 연극배우를 꿈꿨던 전현아지만 그는 중학교 때 성악을 배웠다. 젊은 시절 고생한 기억에 부모님은 딸이 연극 하는 것을 반대했다. 연극을 포기하지 못했던 전현아는 ‘연기를 하고 싶다면 우리 음악을 좀 공부해야되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 국립국악고에 진학했다. 당시 영화 ‘황진이’를 촬영 중이었던 전무송은 음악감독으로부터 딸을 국악고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국악고에서 가야금을 전공했지만 전현아는 연극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재수 끝에 꿈에 그리던 연극영화과(동국대)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생활 동안 연극에 전념했다. 매학년 매학기 만들어지는 작품에 모두 참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학교에서만 줄곧 시간을 보냈다.

전현아는 20대 시절 극작가로서 기량도 쌓았다. 대학 재학 시절 ‘극작법’ 수업 때 쓴 ‘하회의 한’이란 작품을 졸업 이후에도 수년간 고쳐 써 1999년 동서 희곡문학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연극 데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아르코 대극장 연습실에 놀러간 전현아는 서울예술단 작품 ‘님을 찾는 하늘 소리’(1993)에서 가야금을 탈 배우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김효경(1945~2015) 연출가로부터 듣게 됐다. 4년 동안 배운 가야금과 성악공부가 빛을 발할 때였다. 오디션에 참여한 그는 배역을 따냈다.
그 이듬해 대학을 졸업한 전현아는 SBS 공채 4기로 탤런트 생활을 시작했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 ‘장희빈’(2002~2003), ‘토지’(2004~2005), ‘왕과 나’(2007~2008) 등에 출연했다. ‘베니스의 상인’ ‘코카서스의 백묵원’ ‘가스등’ ‘유령’ 등 공연에 참여하며 연극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2002년 아역배우 출신 연출가 김진만과 결혼했고, 2008년에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매년 한 작품 이상의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남편·남동생·올케까지 ‘연극인 가족’
직접 쓴 대본으로 ‘보물’ 함께 공연하기도
“배운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부친 영향”
‘더 파더’ 동반 전무송 “정도 걷는 배우”
가천대서 후배 양성 “같이 훈련하는 셈”

전현아는 ‘연극인 가족’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남편뿐만 아니라 남동생 전진우와 올케 김미림까지 모두 배우다. 2012년엔 아버지의 연기 생활 50주년을 기념해 올린 연극 ‘보물’의 대본을 썼다. 이 작품은 왕년에 이름을 날린 연극배우가 연습실에서 보물을 찾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연출은 남편 김진만이 맡았다. 아버지와 함께 남동생 전진우도 함께 출연했다. 이에 앞서 2006년에 초연한 연극 ‘상당한 가족’도 각색·출연했고, 올해도 공연에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며 팀워크를 빛내고 있다.
“가족이 모두 연극인이면 장점이 많아요. 얼마 전 삼척에서 온가족이 ‘상당한 가족’을 공연했어요. 서로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잘 알다 보니 작은 실수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기도 해요. 동생(전진우)이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출연했는데 첫 방송하는 날 우연히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있었어요. 첫 대사가 나오자마자 가족들이 모두 ‘대사 톤이 어떻고, 대사 투가 어떻고, 저거는 왜 저렇게 했느냐’며 난리도 아니었습니다.(웃음)”
전현아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아버지 전무송의 이름을 굳이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연기하시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랑스러워했어요. 항상 대본을 붙들고 계셨던 아버지 영향으로 연기를 전공한 후에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붙들고 있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느날 강태기(1950~2013) 선생님이 분장실로 오셔서 저를 막 꾸짖으셨어요. ‘너 이제 그만 아버지한테 배워라. 어쩜 그렇게 말투나 움직임, 턴 도는 폼이 아버지랑 똑같냐’고. 그런데 저는 배운 적이 없어요. 보고 자란 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거죠.”
대선배이자 아버지가 바라보는 연극배우 전현아는 어떤 사람일까. 배우 전무송은 전현아를 “정도를 걷는 배우이자 믿음직스러운 딸”이라고 했다.
“처음 현아가 연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스타가 되려거든 하지마라’고 했어요. ‘연극’이라는 것은 인생 철학과도 같은 예술이기도 하고. 최근 1인극에 도전한 딸의 리허설을 보니 배우로서 굉장한 발전을 했더라고요.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고, 또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만남이 있고, 고민을 하며 해결도 했을 거고, 그래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었고, 또는 해결이 안돼 괴로워했을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연륜인데 흩어 보내지 않고 몸에 잘 간직했구나 싶었지.”
전현아는 아버지와 부녀 역할로 열연해 화제가 된 연극 ‘더 파더’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음달까지 이어간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역할을 전무송이, 그를 보살피는 딸 역할을 전현아가 맡았다.
전현아는 연극배우 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극단 ‘그루’에서 연기 지도를, 가천대에서 강사로 나서며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연극배우, 극작가, 연기 선생님, 대학교수 등을 오가는 전현아가 가장 자신답게 느낄 때는 언제일까.
“연기를 할 때 가장 나답다고 느껴요. 또 무대에 설 때뿐만 아니라 가르칠 때에도 참 즐거워요. 관객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연기를 보여줄 때 더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훈련한다고 생각합니다. ”
전현아의 목표는 결국 ‘배우로서 자신’으로 돌아온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저 배우가 나오면 편안해’, ‘저 역할은 저 사람인 것 같아’, ‘전현아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라는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작품이든 그 역할이 내게 꼭 맞도록 소화해내서 관객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