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남다른 깊이감 투영… 시간 가는 줄 몰라”
부도 아픔 딛고 자연스레 가업 이어
각종 대회 수상하며 道 대표 ‘우뚝’
“함께 오래도록 가마에 불 지피고파”

김포한옥마을에 도예가의 길을 함께 걷는 엄마와 아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충남 천안에서 출발한다.
엄마 김영숙(64) 작가는 지난 1976년 천안 ‘요업개발’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당시 요업개발은 유럽 쪽으로 활발히 수출하던 큰 기업이었다. 부부는 이곳에서 사랑을 키우고 기술력도 키웠다. 1981년 결혼한 부부는 이듬해 딸을, 또 2년 뒤에 아들 방지웅(40) 작가를 낳았다. 방 작가가 태어나던 1984년부터 부부는 부천에서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했다. 만들다만 제품을 저가에 들여와 임가공(미완성품 추가작업)을 거쳐 노점에서 팔았는데 갈수록 주문이 늘었다. 그렇게 생활식기·도자기인형 등으로 시작한 사업이 점점 기업 형태로 바뀌었고, 얼마 안가 정식 공장을 가동했다.
1988년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김 작가는 “식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은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IMF를 얼마 앞두고 어음 중 하나가 사기를 당하면서 부도가 났다. 이들 가족은 쓰러질 수가 없었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제품이 단단하다 보니 부도가 나도 주문이 끊이지 않았고, 3~4년간 정신없이 일해 빚을 청산했다.
공장이 힘들어지는 걸 목격한 방 작가 남매는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매일 저녁까지 일손을 거들었다. 방 작가는 “원래 50여명이 하던 일을 부모님 두 분이서 하다 보니 부모님이 자정 전에 집에 돌아온 적이 거의 없다”고 기억했다.
남매는 둘 다 자연스럽게 도예를 전공하게 됐다. 공장은 규모를 줄이는 대신 공방으로 전환해 가업을 이었다. 그 사이 김 작가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도예가가 됐다. 김 작가는 지난해 ‘제53회 대한민국 공예품대전’에서 ‘청화백자 각진손잡이 차도구 세트’로 문화재청장상을 탔다. 같은 해 열린 ‘제53회 경기도 공예품대전’에서도 대상을 탔다.
김 작가와 방 작가는 현재 한옥마을 내 공간을 함께 사용하며 가족이자 선후배, 때로는 정다운 벗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한옥마을에서 행사가 열리면 모자의 공방과 체험부스에는 늘 사람이 몰려든다.
김 작가는 “내가 작품에 투영하는 깊이감 같은 게 공장일 할 때부터 쌓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공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든 해줘야 하지 않느냐”며 “우리 공장이 잘 됐던 비결은 남들이 시도해보다 실패한 걸 해결해줬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방 작가는 “도자기가 우리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취미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작업 자체가 진짜로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묻혀 지낸다”며 “어머니와 함께 오래도록 가마에 불을 지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