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누빈 국민차, 소리없이 강했던 어제

이렇게 사라질순 없다… 멈춰선 공장의 탄식

 

1962년 국내 최초 현대식 완성차 설비 가동

신진·새한 등 주인 바뀌며 대우차로 명성

GM 폐쇄 결정뒤 직원들 “새로운 시작 믿어”

자동차 조립공장, 엔진공장, 연구개발 시설 등을 갖춘 부평공장의 가장 거대하고 뜨거웠던 다이케스팅 시설들이 폐쇄 조치와 함께 작동을 중단하고 지금은 방치되고 있다.
자동차 조립공장, 엔진공장, 연구개발 시설 등을 갖춘 부평공장의 가장 거대하고 뜨거웠던 다이케스팅 시설들이 폐쇄 조치와 함께 작동을 중단하고 지금은 방치되고 있다.

인천 부평은 1962년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완성차 생산공장 설비가 가동을 시작한 자동차 역사의 시작점이다. 기존 수공업 제작의 자동차가 대량 생산 체제로 변화하였고 연이어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시너지가 되어 부평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저변화를 이뤄낸 중심지가 됐다.

신진자동차는 일본 자동차회사인 도요타가 출시한 크라운을 도입하여 신진 크라운이란 이름으로 생산했었다. 현재는 인천도시역사관 1층에 상설전시되어있다.
신진자동차는 일본 자동차회사인 도요타가 출시한 크라운을 도입하여 신진 크라운이란 이름으로 생산했었다. 현재는 인천도시역사관 1층에 상설전시되어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경쟁사의 등장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 주도권 쟁탈전이 시작됐지만 자동차산업의 중심지 부평 생산공장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뀐다. 새나라자동차에서 신진자동차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신진차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가 합작한 GM코리아, 잠시나마 새한자동차로, 그 다음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우자동차가 부평의 주인이 된다.

위부터 차례로 레간자, 라노스, 티코, 누비라.
위부터 차례로 레간자, 라노스, 티코, 누비라.

대우자동차는 R&D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라노스(Lanos), 누비라(Nubira), 레간자(Leganza), 티코(Tico) 등 독자적인 모델을 출시해 그동안 외국기업과의 합작으로 생산판매를 했던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독립을 선언했으며 모기업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영향으로 부평공장은 당시 한국 자동차업체 중 가장 많은 국가에 수출을 하게 된다.

한동안 꺼질 줄 몰랐던 부평공장의 불빛은 외환위기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우그룹이 산산조각나면서 다시 한 번 주인이 바뀌었다. 과거 잠시동안 합작을 했었던 제너럴모터스가 인수하면서 대우자동차의 화려한 간판은 GM 인수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부평공장에서 만들었던 매그너스의 엔진. 현재는 공장 인근의 자동차 특성화고등학교에 기증돼있다
부평공장에서 만들었던 매그너스의 엔진. 현재는 공장 인근의 자동차 특성화고등학교에 기증돼있다

지금 부평공장 불빛은 전성기 시절의 절반도 켜지지 않고 있다. 엔진 조립 설비는 손전등 없이 다닐 수 없게 되었고, 미션 조립부의 바닥에는 사용하다 남은 기어 부속들이 굴러다니며,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다이케스팅 설비는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폐쇄된 공장을 뒤로한 채 수많은 부평 사람들이 떠났다. 그만큼 기억은 약해지고 추억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대우자동차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동차 산업 유산이라며 자발적으로 전국을 다니며 흩어진 대우차의 흔적을 뒤쫓는 사람들이 있다.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 김형준(르망 사진 왼쪽) 대표와 김동영(르망 사진 오른쪽) 연구원이다. 고(故)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에 꽂혀있었던 김형준 대표는 군산공장이 문을 닫고 보관되던 콘셉트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방치되는 것을 보고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며 우여곡절 끝에 모은 콘셉트카와 기념비적인 생산차들을 현재 포천의 한 호텔로 옮기게 한 장본인 중 하나다. 또한 김 대표는 우연히 본 르망 중고 매물을 구입해 현재도 타고 있으며 김동영 연구원과 함께 부평공장-서울 옛 대우 본사 - 일본 도쿄까지 르망을 타고 가는 대장정을 준비하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동차 산업 유산이라며 자발적으로 전국을 다니며 흩어진 대우차의 흔적을 뒤쫓는 사람들이 있다.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 김형준(르망 사진 왼쪽) 대표와 김동영(르망 사진 오른쪽) 연구원이다. 고(故)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에 꽂혀있었던 김형준 대표는 군산공장이 문을 닫고 보관되던 콘셉트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방치되는 것을 보고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며 우여곡절 끝에 모은 콘셉트카와 기념비적인 생산차들을 현재 포천의 한 호텔로 옮기게 한 장본인 중 하나다. 또한 김 대표는 우연히 본 르망 중고 매물을 구입해 현재도 타고 있으며 김동영 연구원과 함께 부평공장-서울 옛 대우 본사 - 일본 도쿄까지 르망을 타고 가는 대장정을 준비하고 있다.

정년을 2년 앞둔 부평공장 사람은 먼지 쌓인 공장을 보면서 “폐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끝났구나 싶었다”고 말하며 “수많은 차를 만들면서 단종이 되는 건 아쉽긴 했지만 안타깝진 않았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공정으로 신차를 만들 수 있다는 새 출발의 기대감도 생기고 그랬다”며 불이 꺼지지 않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부평공장의 불빛이 다시 한 번 환하게 켜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대우자동차의 컨셉카
대우자동차의 컨셉카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