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사례 망가진 민주주의 등
한국 현 시점 뼈아픈 충고·분석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 352쪽. 1만6800원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했는가?”(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그렇다’. 두 정치학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하다. 지난 2021년 미국 대선 이후 벌어진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가, 그리고 지난 3일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에 자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선포가 그랬다.
씁쓸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새삼 어느 책의 책장이 부단히 넘어가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소환되는, 2018년 국내에 출간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다. 해당 책은 5일 주요 온라인 서점 사회과학분야 실시간 판매 순위 10위권 안팎에 진입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해당 부문 50위권 내에 속하지 않았었다.
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은 두 나라에서 펼쳐진 촌극이라면 촌극. 구간(舊刊)이 반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 속에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가 담겼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그럴듯하게’ 기만당하는지, 여러 국가의 사례를 근거로 망가진 체제 내부 요인을 짚으며 논증한다. 손쉽게 외부의 적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가의 선동은 이들의 분석 앞에서 허무맹랑해진다.
흠 잡을 데 없이 이상적인 헌법을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포퓰리스트는 물론이거니와 독재자가 탄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규범(democracy norm)의 중요성과 극단주의자를 가려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 … 정치 엘리트 집단, 특히 정당이 사회적 거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당은 민주주의의 문지기인 셈이다.”
정치가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된 상황 자체는 극단적이지만, 이런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은 은근하다. 두 저자는 대표적인 4가지 징후를 짚어낸다. 각각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다. 저자들은 이 기준 중 하나라도 충족하는 국가 지도자와 정치가가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일러둔다.
불과 며칠 전 뜬금없는 계엄령을 통보받았던 한국 독자들이 눈여겨 볼만한 챕터는 4장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다. 페루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사례를 토대로 전하는 저자들의 경고는 뒷목을 서늘하게 한다. “사실 청사진 없이도 민주주의는 붕괴할 수 있다. …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다시 말해 민주주의 규범을 허무는 선동적 지도자와 위기를 느낀 기성 정치 세력 사이에 고조되는 갈등의 결과로 민주주의는 붕괴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