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가치 알아보는 것도 재주, 인정할 만한 ‘돌팔이’ 아닌가요

 

겸손 뒤에 묻어난 여유·연륜… 25년차, 탄탄한 중견기업 일군 자신감

인터넷 시장·먹거리 수요 확대 따른 ‘창고 사업의 성공’ 예측한 선구안

걸림돌을 디딤돌로 사훈… 청력장애 불구 교과서 전체 외운 일화 유명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은 “직원들은 곧 우리 지산그룹의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대외적 기부 활동에 앞서 다른 어떤 기업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의 훌륭한 사내 복지 제도를 구축해 실현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은 “직원들은 곧 우리 지산그룹의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대외적 기부 활동에 앞서 다른 어떤 기업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의 훌륭한 사내 복지 제도를 구축해 실현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나는 돌팔이 기업가입니다.”

‘돌팔이’는 떠돌아다니며 기술이나 물건 따위를 팔며 사는 사람, 또는 제대로 된 자격이나 실력이 없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사전적 정의가 그렇고 일상 생활에서도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한주식(77) 지산그룹 회장은 자산규모 3조원대 물류·창고 분야의 중견기업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지만, 스스로를 돌팔이라고 소개하며 한껏 자신을 낮춘다. 그가 스스로를 돌팔이라 칭하는 배경에는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묻어나온 자신감과 여유가 자리잡고 있다.

■ 땅을 향한 열정…중견기업을 세우다

지산그룹은 1999년 창립했다. 용인·안성·이천 등 경기도뿐 아니라 충청도 일대에서 물류·창고 운영을 주력으로 하면서 동시에 각종 건설·건축·토목·부동산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주업종인 물류창고 규모만 87만여㎡에 이른다. 25년차, 어찌 보면 짧은 역사지만 연매출 5천억원에 순이익만 1천억원에 달하는 탄탄한 기업을 일궜다. 이 때문에 한 회장에게는 국내 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한 회장은 “산업이 다양화되고 경제가 발달할수록 물류는 필연적으로 활발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인터넷 시장이 확대되면서 매장 중심의 판매 방식보다는 물류창고 기반이 필수적이라고 예측했다”며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 안정된 경제를 통한 먹거리 수요의 폭증은 초현대식 냉동창고를 필요로 할 것이라 확신했고 그래서 대부분 최첨단 냉동창고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일찍이 미래를 내다본 혜안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한 회장의 사업가 기질은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경북 경주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시골청년이지만, 그는 대학 진학 이후 20대 초반에 이미 경제적 자립을 이뤘다. 대학생 시절 사업에 눈을 뜬 한 회장은 중학생 대상 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독서실까지 여러 개 운영하는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이 때부터 한 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갖고 독학하다시피 한 분야가 바로 땅, 토지였다. 한정된 땅에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땅의 가치가 무엇보다 커질 것으로 판단, 이 분야를 파고드는 데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한 회장은 “우리 회사 이름이 지산(地山), 즉 땅과 산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는 평지로서 쓸모가 있는 땅을, ‘산’은 땅으로서 이용 가치가 떨어지는 곳을 말한다”며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 듯 쓸모없는 땅을 가치있게 만들자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에 사업 목적과 방향을 담은 것”이라고 전했다.

PC통신이 발달하던 시기에는 온라인 상에 토지 컨설팅을 접목, 전문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며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지금의 국토교통부인 당시 건설부에서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고, 오랜 기간 내공을 다지며 땅의 가치와 효용성, 장래성 등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견을 갖추게 됐다. 관련 학위나 자격증 없이도 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부동산 전문가에 오른 그를 향해 일각에서는 돌팔이라 부르며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한 회장은 이마저도 자기 확신 아래 칭찬으로 흡수하며 결과로 스스로를 입증해 왔다. 지금도 스스럼없이 자신을 돌팔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한 회장은 “비록 학위도 자격증도 없지만, 버려진 땅을 가치있게 바꾸고 그 위에 창고를 세워 운영하며 사업을 확장해 지금에 이르렀다”며 “이 정도면 인정해 줄 만한 돌팔이 아니겠느냐”고 웃어보였다.

자사 물류 창고 건축 현장에서 한주식 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자사 물류 창고 건축 현장에서 한주식 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돈을 벌 줄 아는 기업인은 많지만, 제대로 쓸 줄 아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한 회장은 벌 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물로 유명하다. 기업의 본질적 목표인 이윤 추구에 매진하는 동시에 이를 사회에 돌려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항시 고민하고, 이를 오랜 기간 기부와 후원 등의 행동으로 옮긴 덕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인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한 회장은 경기도 가족아너소사이어티, 대한적십자사의 레드크로스피플 모두 경기도 1호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지난해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경기사랑의열매)에는 10억원 기부를 약정했고 회사의 이름을 딴 ‘지산 디딤돌 기금’도 조성하고 있다. 이처럼 지산그룹이 나눔과 봉사 목적으로 쓰는 재원만 연간 20억원에 달한다.

한 회장은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는 뚜렷한 계획이나 목적 없이 그냥 생활의 일부처럼 기부를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나 기부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며 “한국형 기부자 맞춤기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내가 전국 15번째이자 경기도에선 1호라고 들었다. 어떤 일이든 첫발을 딛는 사람이 있으면 이어 두 번째 세 번째도 나올 테니, 혼자만의 기부보다는 이를 사회 전반에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한 회장은 장애인과 노인 복지 분야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어렸을 적 장티푸스를 앓아 청각을 잃게 된 것을 계기로 장애인의 고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직접 강연도 자주 하고, 자선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며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이겨내 온 노년층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작년부터 게이트볼대회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다. 매년 행사를 더 키울 생각”이라고 했다. 게이트볼대회의 경우 일절 참가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참가자들에게 식사와 기념품까지 제공하며 ‘통큰 후원’을 실천하고 있다. 2년만에 경기·충청권에서 750여명이 참여하는 큰 대회로 성장했다.

한주식 회장이 식사 중인 직원들의 음식에 “석류가 몸에 좋다”며 석류드레싱을 뿌려주고 있다.
한주식 회장이 식사 중인 직원들의 음식에 “석류가 몸에 좋다”며 석류드레싱을 뿌려주고 있다.

■ 직원은 곧 가족…내 식구는 내가 챙긴다

한 회장은 “내가 경주 사람이라 어린 시절부터 경주 최부자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경주 최부자는 ‘사방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실현했다”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기 이전에 경주 최부자는 자신과 늘 함께 생활하는 소작인과 노비에게 후한 대우를 했다. 그게 오랜 기간 부를 유지한 원천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한 회장의 철학은 남다른 직원복지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외부에 선심을 쓴다 해도 내부 직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상누각’이나 다름 없다는 게 그의 신조다.

직원 사랑이 넘치는 한 회장은 수시로 자비를 들여 고기나 과일, 영양제 등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무엇보다 그는 직원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지산그룹에 다니기 위해선 임원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금연이 필수다. 입사와 동시에 금연을 약속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퇴사 조치까지 뒤따를 정도다. 단체운동도 빠지지 않는다. 매주 직원들이 광교호수공원을 걸어야 한다. 대신 직원들은 한 바퀴 당 1만원의 수당을 지급받는다. 이 밖에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할 경우 1천원, 탁구나 요가 등에 참여할 경우 2만원 등 운동수당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는 게 지산그룹만의 특징이다.

‘일 못하는 건 용서해도 운동을 안 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는 한 회장의 강경한 메시지에 처음엔 일부 고개를 갸웃거린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건강을 소중히 챙기라는 한 회장의 진심을 이해한 뒤부터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한 회장은 “우리 직원 중에 한 명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만 오르내리면서 3년 간 소위 ‘계단보너스’만 모아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며 “점심시간에는 직원들에게 비타민C와 오메가3도 의무적으로 먹게 하는데, 사실 건강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직원들이 건강해야 회사도 건강해진다”고 소신을 전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지산그룹의 사훈은 ‘걸림돌을 디딤돌로’다. 청력 장애로 학창시절 수업을 듣는 게 어려워진 그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 회장은 “고난과 역경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는 긍정적인 생각, 역발상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며 “걸림돌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한주식 회장은?

▲1947년 경북 경주 출생

▲1999년 지산그룹 창립

▲2019년 대한민국 건설상 부동산개발부문 대상

▲2019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2020년 혁신 리더 대상 사회공헌 신뢰경영인 부문 대상

▲2022년 국무총리 표창

▲2023년 기획재정부장관 표창

▲현 지산그룹 회장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