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우선순위 글쓰기… 신인의 자세로 즐기고파”
상담가로 활동하며 30년 만에 꿈 이뤄
절망 속에서 희망 찾는 주제의식 담아
당분간 단편소설의 매력 빠져볼 계획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를 갓 졸업하고 발표한 첫 작품이 한국여성문학상을 받을 때만 해도 이리 멀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학창시절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를 접한 기억으로 ‘무너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었을 뿐인데 덜컥 상을 주니 금방이라도 작가의 길이 열릴 것 같았다.
경번(48·본명 신은하) 작가는 최근 생애 첫 소설집 ‘화담’을 펴냈다. 지난 2020년 ‘문학과의식’ 신인상 등단 이후 이따금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긴 했으나 온전한 책 하나를 세상에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생계 전선에서도 놓지 않았던 꿈을 약 30년 만에 이룬 것이다.
단편소설 7개를 모아놓은 ‘화담’은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경번 작가는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회색톤’이라 표현했는데, 계단 밑의 카페라든지 어두운 골목과 밤길 등의 장면이 심심찮게 묘사된다.
그는 “어두운 배경에도 내 소설에는 꽃이 많이 등장한다. 진창 속에서 피어나는 꽃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작품에서는 힘들고 지친 인물의 내면을 젖은 속옷이라는 소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속옷을 쨍쨍한 햇볕에 널어 말리는 장면을 통해 혼자 세상 밖으로 나오는 희망을 던지고자 했다.
경번 작가는 “작품에 상처받은 인물들이 좀 나오는데 상처를 받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상처에서 회복하는 과정을 그렸다”며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건 당장 치유는 될지 몰라도 금방 끝이 난다. 결국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달랠 수 있어야 진정한 치유가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경번 작가는 그동안 심리상담가로 활동했다. 독서·영화·사진 등을 활용한 상담으로 강단에서도 서고, 군부대와 도서관 등에서 집단상담을 이끈 경험도 풍부하다.
그는 “상담 일을 하면서도 소설은 계속 읽고 있었고 언젠가 글을 쓰겠다는 꿈을 마음 깊이 품고 있었다”며 “코로나 때 일이 끊기면서 다시 글을 써보자는 용기가 생겼고 2020년 신인상 등단을 계기로 꾸준히 단편소설을 발표하게 됐다”고 했다.
경번 작가는 당분간 단편소설의 매력을 즐겨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제는 좀 더 밝은 느낌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지난달 서울과 광주에서 북콘서트를 연 그는 “주변에서 장편도 써 보라고 응원해주시는데 신인의 자세로 차근차근 다 해보고 싶다. 먼 길을 돌아와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글 쓰는 일이 됐다는 게 행복하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