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정치, 그 사이를 가로막던 경계는 ‘12·3 계엄’을 계기로 무너졌다. 이번 계엄 사태는 일상 속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경제는 움츠러들었고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도 멈춰섰다.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낮이고 밤이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
학점관리, 취업준비에, 스펙 쌓기에만 골몰한다던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수면에 얇게 얼린 얼음판처럼 가까스로, 아니 애써 일상에서 정치를 밀어내왔는데, 결국 깨졌다. 금이 간 것도 아니고 일순간에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대학가에는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대학의 전유물이었던 ‘대자보’가 다시 대학의 벽 곳곳에 붙여지고, 시국을 통탄하는 선언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시국이 수상하기에, 긴급히 그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말했다. 그간의 자신들을 옭아맸던 ‘탈정치’ ‘중립’의 가치가, 사실은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게 하는 족쇄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결국 스스로 족쇄를 풀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이 한겨울 국회 앞 바닥에 앉아 밤이 새도록, 목이 터져라 탄핵을 외치는 그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했다.
그래서 긴급하게, 지난 13일 경인일보 디지털기획팀은 수원 경인일보 본사에서 경기지역 대학생 3명을 만났다. 대학생 긴급 시국토론회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목소리를 낸 학생들은, 학우들과 뜻을 모아 시국선언문을 작성하고 배포한 아주대학교 이진씨와 호외 학보를 발행하고 있는 한신학보 편집장 최지우씨, 가천대신문 편집장 김주영씨다.
아래는 토론회 내용.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당시 심경도 궁금합니다.
이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오후11시까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가 수차례 울렸어요. 계엄령이 선포됐다는거였어요.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큰일이 일어나니까 무슨일인가 싶었습니다. 인지부조화처럼요. 상황 자체가 워낙 비현실적이었으니까요. 일 끝나고 집에 갈때까지 속보를 지켜봤는데, 오후11시30분쯤 헬기가 국회에 진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위험하겠다는 생각보다도 일단 가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택시를 잡았죠. 현장에서 길바닥에 앉아 구호도 외치고 연단에 올라가 마이크 잡고 목소리도 냈죠.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생각해 집으로 돌아갔는데, 오전8시쯤 도착했던 거 같습니다.
지우: 저는 계엄령 선포 당시에 동네 친구들이랑 밥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학보사 단톡방이 막 울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가봤어요. 그렇게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처음 접했죠. 실감이 안났어요. 비상계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현재 우리 사회와는 괴리가 크잖아요. 갈피를 못잡고 있다가 일단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회의사당으로 갔습니다. 계엄령 해제 결정이 난 뒤 오전7시쯤 집으로 돌아갔어요.
주영: 저는 사랑니를 뽑고 아파 일찍 잠들어서 계엄령 선포를 지켜보진 못했어요. 이튿날 소식을 접하게 된 경우인데, 겪어보지 않은 일이니까 ‘계엄령’이란 단어를 듣고도 크게 와닿는 게 없었어요. 위협적인 느낌보다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계엄령 선포 후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간 각자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나요.
이진: 학내 대자보를 작성해 붙였습니다. 계엄령 직후 시위를 많이 다니고 있는데, 저 혼자만의 움직임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대학생들이 대자보쓰고 학생총회를 열고, 조직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책임감을 느꼈고요. 일단 아무런 계획없이 SNS에 시국선언문 대자보를 쓸건데 같이 할 사람은 목소리를 내달라고 올렸어요. 그렇게 50여명이 모였죠. 그중 제가 아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될 겁니다. 시국선언문 작성할 때도 단톡에 초안을 올리고 다같이 수정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나름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어요.
지우: 한신학보에서 글로 (우리의)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학보 발행이 끝난 상황이라 온라인으로 호외보도와 속보를 냈고요. 기자들도 현장에 나가 계엄령 사태와 관련해 계속해서 취재를 하고 있어요. 포고령이 올라왔을 때 계엄령 선포와 달리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전 계엄령 선포 당시에 학보사 보도까지 검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어요.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학생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무엇이고 이번 사태 이후 우려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주영: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민주주의가 무너져내렸다는 점이죠. 청년은 사실 당장 취업이나 앞길을 걱정하는 집단이기도 한데 대통령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패닉에 빠진 상황입니다. 계엄령 선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 과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대목 중 하나입니다.
지우: 비상계엄 선포로 여러 정치적인 현안이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사회적인 의제가 민주주의 회복에 쏠려있으니까요. 민주주의를 지켜내야하는, 어찌보면 다시 원점이 된 상황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에요. 정치와 무관한 집단도 집회에 나와 함께 의견을 내고 있다는 점도 의미있어 보여요.
이진: 일단 대학생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조직돼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이 대학생을 대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제 의견을 말하자면 대학생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정치권보다는 국민의힘인 거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가지고 양비론을 펼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계엄이란 단어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요. 양비론이 오히려 한국사회를 병폐로 물들인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의 주동자와 동조자에 대한 응당한 죗값을 치르기 전까지 탄핵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야하고요. 우려하는 건 경제적인 부분이 있겠죠. 대학생은 취준생이 있는 집단이니까요. 민주당이 이번 사태로 독주하게 된다면 그게 대학생에게도 꼭 좋지만은 않은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계엄령 사태는 2030세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집회 분위기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고요. 사실 2030세대가 일명 ‘무당층’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는데 어떤 변화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는 이토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시나요.
주영: 청년들이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 눈 앞에 놓인 취업 걱정이 더 현실적이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이야기는 꺼내면 싸움거리가 되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령 사태는 서로 다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한군데로 모이는 사안이잖아요. 그래서 시너지가 난 것 같습니다.
지우: 중장년층은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어요. 반면 청년세대는 민주주의 체제가 태어날 때부터 보장돼있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 정치적인 관심이 적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청년 세대가 젠더갈등과 세대갈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회적인 억압을 내면화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테고요.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요소에 대한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었다는 뜻인데요. 비상계엄령 선포는 다른 것들과 달리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청년세대가 확신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권리를 지키고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진: 젊은이들에게 퍼져있는 정서는 탈정치인 거 같아요. 탈정치의 본질은 일상과 정치를 나눠놓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일상과 정치는 불가분합니다. 예를 들면 대중교통은 끊임없이 파업을 하고요. 학교에서 학식을 먹어도 급식 노동자분들의 어떤 노고가 있고요. 학교에서 이용하는 강의실도 청소 노동자분들이 깨끗하게 유지를 합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고, 그렇지 않은게 없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일상과 정치 사이에 차단막을 둬서 두개가 별개인 것처럼 보이게 한, 일종의 착시효과가 청년층에게 먹혔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면 정치가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대표적인 게 세월호나 이태원참사, 이번 계엄령 같은거죠. 우리는 일상에 매몰돼있는데 어느 시점에 정치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에 맞게 어떤 행동을 취해야합니다.
대학생들이 이번에 탈정치라는 그 이데올로기를 벗어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건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과 정치가 사실은 불가분하다는 것을 이번 계엄이 드러내줬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이번 사태를 두고 낙관도 하고 비관도 합니다. 대학생들이 목소리 내고 해야할 일을 하는 게 낙관적이라고 느껴지고요. 우려되는 건 대통령이 탄핵된 뒤 동력을 전부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번에 대학생 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가 전부 길거리에 나와 자신들의 말로 의견을 표명했거든요. 탄핵 후에도 사회가 이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마침 시위 현장을 언급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사안이 중대함에도 집회가 다소 밝은 분위기라는 평이 많습니다. 현장에 가보면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요?
지우: 현장에 가보면 로제 아파트, 소녀시대 다시만난 세계 이런 노래 떼창하고 응원봉을 들고 뛰거든요. 야외 페스티벌인가 헷갈릴 정도인데요.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향한 마음이 이전에 비해 희석된 건 아니라고 봐요.
이진: 세대가 바뀌면서 시위 문화가 변한거죠. 좀 더 정확히는 2030 여성이 많이 참여해 그들의 문화가 주축이 된겁니다. 현장은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 속에서도 진중함이 느껴졌습니다. 문화 자체가 변한 건 긍정적으로 보여져요. 새로운 사람들이 현장에 나왔다는 뜻이고 민주주의가 젊어지고 있다는거니까요.
20대 여성이 주축이 돼 만든 문화가 집회 현장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대목에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광장에서도 여성혐오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고요. 최근 여성뿐 아니라 본인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경인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대학가 시국선언 현장을 다룬 영상 속에도 악플이 달리는것처럼요. 이런 사회의 단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우: 사회가 해결해야할 갈등입니다. 특히 남녀갈등은 계속해서 이어져왔던거니까요.
이진: 저도 시민사회가 해결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탄핵이라는 절대적인 명령이 완수된 뒤에도 계속해서 책무를 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요. 특히 20대 여성을 비롯해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중하게, 모든 시민이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인터뷰에 나선 이유도 제가 남자이기 때문인데요. 여성과 남성이 오프라인에서 받을 수 있는 공격의 강도가 다르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주체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거든요. 모든이들이 주변 시선에 주눅들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역사의 혁명은 사실 그 시대의 청년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것이 많습니다. 이번 비상계엄 이후 청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할까요. 또 청년의 시각에서 정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지우: 교육을 비롯한 청년에게 주어진 여러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선생님들도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고요. 그런 환경에서 공부하다가 대학생이 되면 정치적인 참여를 해야한다는데, 대학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정치에 좀 더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하고 대학교에서도 학회나 모임 등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전한 장소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영: 사회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할 것입니다. 청년들이 정치와 삶이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깨우치는 게 일순위 과제일겁니다. 이를 위해선 공교육에서 청년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진: 청년들이 일상과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먼저 인식해야할테고요. 한국 정치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구 중 ‘정치란 소음을 목소리로 만들어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음으로 산적해있는 많은 목소리를 식별하고 여과하는 능력이 다양성과 포용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극단적으로 들리는 문장이 아니라 다수의 아우성같은 목소리를 식별해낼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생들은 겸손한 자세로 여성, 노동자 등 사회에서 목소리내는 다른 주체에게 귀기울일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이시은·공지영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