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기운 품은 ‘약리도’

다짐으로 연 새해, 매일을 버텨내

‘앙상한 잉어’서 읽어낸 허무·염원

1년의 끝, 작품따라 한해 돌아보길

약리도(躍鯉圖), 조선, 지본수묵, 115×31㎝. /경기도미술관 제공
약리도(躍鯉圖), 조선, 지본수묵, 115×31㎝. /경기도미술관 제공

‘팝아트’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과 같은 작가의 작업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렇듯 명징해 보이는 팝아트의 범주를 넘어 한국의 전통 민화와 한국적 팝아트의 관계성, 그리고 여러 질문을 던지며 그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는 전시 ‘알고 보면 반할 세계’가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경인일보는 경기도미술관과 함께 모두 8회에 걸쳐 다양한 전통 민화와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전시를 깊고 다채롭게 즐기도록 하고자 한다. K-팝아트를 새롭게 조명할 이번 특별전은 내년 2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주

민화에는 약진하는 잉어를 그린 ‘약리도(躍鯉圖)’가 있다. 출세의 기운을 품은 이 그림과 같이 올해 초하루도 다짐으로 열었을 것이다. 도약하는 잉어가 만날 세상처럼, 매일의 무게를 버텨낸 일상 속에서 달라진 무언가가 있을까? 한 해의 일상 면면을 되짚으며 올 1년을 돌아보는 12월이다.

민화 ‘포도도(葡萄圖)’는 탐스러움을 자랑한다. 둥근 넝쿨을 따라 풍요롭고 상서로운 기운이 감돈다. 한 해의 시작에 포도도를 닮은 소망을 가슴에 새겨 그렸을 것이다.

백정기作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 /경기도미술관 제공
백정기作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 /경기도미술관 제공

소망처럼 오롯이 빛나는 촛불들이 백정기의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2023) 작품에 모여있다. 이 작품은 촛불 발전기 10점과 달걀 부화기 1점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촛불이 일으키는 정서적 반응과 열기와 같은 잠재 에너지가 기계 원리로 구현된다.

작가는 주술, 믿음에 대한 관심을 과학의 원리와 조각적 탐구로 풀어낸다. 보이지 않는 촛불 에너지들이 모여 달걀을 실제로 부화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무언가 이루어내기까지는 애초에 마음에 새겨 넣은 소망이 있었다.

이인선作 ‘등용문’. /경기도미술관 제공
이인선作 ‘등용문’. /경기도미술관 제공

모든 소망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인선의 ‘등용문’(2024)에도 ‘약리도’의 잉어처럼 도약하는 물고기의 상징이 담겨있다. 그러나 작품 한편의 “영차”라는 글귀가 무색하게 뼈만 남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버겁게 버틴 한 해의 현실을 돌아본다. 그럼에도 비단 천 위에 매끈한 실로 단단히 매여진 물고기는 아직 약진할 힘이 남아있어 보인다. 오히려 최선의 힘을 내어보는 듯한 거룩함까지 배어난다.

이인선은 이른바 오버로크(overlock)라고 알려진 기계 자수를 주된 매체로 삼는다. 그리고 이 자수만의 화려한 색상과 매끈한 실의 질감을 이용해 상징적 도상을 수놓는다. 작가는 동서양의 신화적, 문화적 상징에 담긴 이원적 의미를 작품에 담는다.

포도도(葡萄圖), 조선, 지본수묵, 112×47.5cm (10),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경기도미술관 제공
포도도(葡萄圖), 조선, 지본수묵, 112×47.5cm (10),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경기도미술관 제공

뼈만 남은 ‘영차’의 물고기 도상에서도 현실의 허무함에 대한 공감에 그치지 않고 욕망과 염원의 에너지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유이다.

정월에 마음에 새긴 바대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뛰어올랐던 하루가 쌓이고 또 한 해가 저물 준비를 한다. 위 작품들에서 옹골진 포도넝쿨도, 고요한 촛불도, 뼈만 남은 물고기도 무언가를 향한 염원의 약동하는 기운을 품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준비하며 결실을 맺는 시간에는 삶 속에 닿은 예술을 들여다보자.

/방초아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