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ES서도·유엔서도 주목
물질 탐색 최적화된 연산 능력
속도전인 신약 개발때 유용해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 Show) 2025’에서 ‘양자컴퓨팅’ 분야가 신설됐다. 글로벌 빅테크 업체들은 앞다퉈 양자컴퓨터 관련 기술을 발표하고 있으며, 유엔은 내년을 ‘양자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글로벌 기술의 흐름이 인공지능(AI)에서 양자 컴퓨터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양자컴퓨터 관련 기술 개발이 본격화 하고 있다. 최근 연세대학교는 세계 대학 가운데 두 번째로 IBM이 개발한 양자컴퓨터(IBM 퀀텀 시스템 원)를 도입했다.
연세대 양자사업단 정재호 단장은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 설치된 IBM 퀀텀 시스템 원은 우리나라 양자컴퓨팅 분야를 글로벌 기준으로 도약시켜 줄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세대 국제캠퍼스에 설치된 IBM 퀀텀 시스템 원은 127큐비트(양자컴퓨터 기본 단위)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실제 산업에 활용하려면 100큐비트 이상의 성능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아직 20~30큐비트 급의 양자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다. IBM 퀀텀 시스템 원은 실질적으로 각종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국내 첫 양자컴퓨터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정 단장은 “국내 최초의 대학이라는 책임감으로 양자컴퓨터 도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양자컴퓨팅 기술은 100점 만점 중에 2점 수준에 불과한데, 이웃 나라인 중국(35점)과 일본(28.5점)은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며 “양자컴퓨터 연구가 활성화하려면 큰 비용이 들더라도 100큐비트 이상의 컴퓨터를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차 수요자 송도내 바이오 기업
경로 단축 등 물류업 활용 가능
“연세대가 발전의 첫걸음 될것”
양자컴퓨터의 최대 장점은 ‘속도’다. 슈퍼컴퓨터보다 월등히 연산 능력이 빨라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세계 각국이 관련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다. 정 단장은 “일반적인 컴퓨터는 0과 1을 번갈아 가면서 계산하는 탓에 슈퍼컴퓨터를 아무리 이어 붙여도 계산 속도를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며 “양자컴퓨터는 아무리 많은 수식이 있어도 이를 동시에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산을 마칠 수 있다”고 했다.
양자컴퓨터의 활용도가 가장 높은 분야는 바이오 산업이다. 정 단장도 국내 암 연구 권위자인 외과 교수다. 그는 “암을 치료하는 신약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질병의 타깃 단백질과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약물 등 다양한 물질을 탐색하고 최적화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일일이 계산을 해야 알아낼 수 있다”며 “현재는 AI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지만, 오차가 커 정확도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 단장은 “양자컴퓨터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계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신약 개발 속도도 기존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연세대가 도입한 양자컴퓨터의 1차 수요자는 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해 있는 주요 바이오기업이 될 전망이다. 그간 국내 기업이 양자컴퓨터를 사용하려면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미국 빅테크의 양자 클라우드를 써야 했는데,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대기 하는 기간이 길고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연세대는 양자컴퓨터를 국내 사업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약을 맺었다. 정 단장은 “바이오 산업은 특허가 12년 동안 독점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바이오 클러스터 입주 업체들은 양자컴퓨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물류분야도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획기적인 기술·서비스 개발의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는 “이를테면 20곳에 택배를 배송하는 경우의 수는 2경이 넘는다”며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최적의 배송 경로를 찾아내면 물류비용이나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화물차나 선박, 항공기의 운항 시간이 감소하면 대기오염물질 배출량도 줄어 환경 오염 피해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韓 양자컴퓨팅 기술 100점 중 2점
中 35점·日 28.5점 비해 뒤처진셈
“전문가 부족, 인력 양성에 집중”
아직 양자컴퓨터에 대해 생소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앞으로 10년 뒤에는 모든 산업기술에 ‘양자’라는 단어가 붙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단장은 지금은 AI와 반도체가 글로벌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10년만 지나면 양자 AI, 양자 반도체 등으로 산업 구조가 개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양자컴퓨터 관련 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 단장은 “우리나라에 있는 양자컴퓨터 전문가를 모아도 100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양자컴퓨터 산업이 발전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세대는 양자컴퓨터를 산업에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도 내년부터 운영할 방침이다.
그는 “양자컴퓨터 인력을 키워내기 위한 대학원 과정을 우선 개설할 예정이며, 학부와 박사 과정 등도 잇따라 신설해 나갈 방침”이라며 “국내 양자 전문 인력이 한곳에 모여 연구를 한다면 조금씩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단장은 “양자 산업에서 아직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크게 뒤처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며 “연세대 양자컴퓨터가 우리나라 양자 산업 발전에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재호 단장은?
▲1995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2000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석사
▲2006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박사(종양외과학, 종양생물학)
▲2020년 3월~2023년 2월 연세대학교 바이오융합연구원 부원장
▲2020년 11월~현재 연세대학교 의료원 바이오클러스터추진단장
▲2024년 2월~현재 연세대학교 융합과학기술원장 겸 양자사업단장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