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영향에 형성된 ‘문화유산 보고’ 경기도

 

파주, 임진각·캠프 그리브스 등 군사·위락시설 존재

동두천, 안흥교회·미군 7사단 기념관 사례 의미 깊어

가학광산서 관광지된 ‘광명동굴’… 美 아닌 일제 관련

화성 매향리 쿠니사격장·매향교회 미군 대표적 흔적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경기도 문화유산은 대부분 주한미군의 영향을 받았다. 미군이 머문 자리, 미군의 생활상이 담긴 거리, 미군과 관련한 상업활동 등으로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흔적이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자연스럽게 경기 북부에 미군관련 문화유산이 다수 잔존한다. 경기 북부지역 중에서도 연천은 신망리역, 한탄철교, 경원선 폐철교, 신탄리역, 대광리역과 같은 철도 관련 유산이 많다. 가장 큰 미군기지가 존재했던 의정부는 뺏벌마을, 주한미군노동조합 건물, 캠프레드클라우드 예배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을 제외하고 경기북부에서 가장 많은 미군관련 문화유산을 보유한 곳은 파주다. 안보 관광지로 유명한 임진각이 있고 개방된 캠프그리브스를 비롯해 현재도 사용되는 공동경비구역(JSA) 등 군사시설들에다 경의선 교각과 같은 철도 유산도 있다.

구시가지에는 카네기홀, 럭키바, DMZ홀과 같이 미군 위락시설이 있는 데다 장곡리움집처럼 군사 경계지역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형성한 마을의 흔적도 남아있다. 미군 주둔지, 교통관련 유산, 시가지의 미군 상업촌 등 미군관련 유산의 종합세트와 같은 지역이 바로 파주다.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는 평화의 집, 돌아오지 않는 다리, 공동일직장교 사무실 등은 여전히 민간인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보존가치를 지닌 유산이기도 하다.

1970년대 동두천 보산동 미 2사단 앞 럭키 클럽 골목. /동두천시 제공
1970년대 동두천 보산동 미 2사단 앞 럭키 클럽 골목. /동두천시 제공

파주와 더불어 동두천은 접경지역이면서 미군으로 인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여러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미군 문화 영향이 짙게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동두천에는 턱거리 마을, 캠프 모빌, 생연동 샬롬하우스, 구 케네디회관, 노르웨이 야전병원 등의 유산이 남아 있다. 미군기지 지근거리의 보산동은 마을 전체에 미군 정취가 짙게 배어있는 지역이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기획기사를 통해 소개하지 않은 동두천의 근대문화유산으론 안흥교회와 미군 7사단 31연대 기념관이 있다. 안흥교회는 현재도 운영하는데 설립은 천막교회 시절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지어진 예배당은 1964년 홍수로 유실됐고 1965~1966년 새롭게 건물을 짓는다.

신흥중고등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인 강신경 목사가 안흥교회 설립자다. 부대 군목으로 활동하던 강 목사는 안흥리에 주둔한 부대에 부임하며 지역과 인연을 맺었고, 신흥중고와 안흥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당시 동두천에선 동두천감리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교회인데 1961~1963년엔 미 7사단 공병대가 현재 안흥교 위 100m 지점에 출렁다리인 아리랑 다리를 설치해 학생 등하교를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천막교회, 함석지붕 예배당, 돌 예배당을 거친 안흥교회는 종탑부가 정면 우측에 세워지며 원형이 바뀌었고 종탑 상부의 지붕에도 변형이 있어 당시 모습을 확인하긴 어렵다.

내부 역시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동두천의 종교,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동두천 보산동의 현재. /동두천시 제공
동두천 보산동의 현재. /동두천시 제공

미군 7사단 31연대 기념관은 미군 기념관에서 보육원과 학교시설로 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 건물을 안흥보육원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군목으로 활동한 강 목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52년 제7사단이 주둔하기 시작하고 1953년 안흥보육원 설립, 1957년 신흥농축기술학교 개교 등으로 이어지는데 제7사단 예하 연대급 부대들의 재배치 등을 통해 주둔지가 이동하며 미군이 기념관으로 사용하던 것을 보육원, 학교시설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미군이 철수하며 보육시설로 사용한 과정 등을 기록한 자료는 발굴되지 않아 조성시기를 특정하긴 어렵다. 1956년 12월 25일 미군 제7사단 31연대 기념관 동판이 붙어 있어 미사용 시설 일부를 기념관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휴전 후 주한미군이 병원, 학교, 고아원, 공공건물 등의 건설을 지원한 사례들이 다수 있다는 것은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90년대에 촬영한 광명 가학동 광산 폐광 모습. /경인일보DB
90년대에 촬영한 광명 가학동 광산 폐광 모습. /경인일보DB

접경지역이 아닌 광명에는 미군 관련 유산이 없다. 대신 1912년 일제강점기에 시작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 광명동굴이 있다.

‘가학광산’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광물 채굴지로 이용된 광명동굴은 1972년 태풍피해 영향으로 폐쇄됐다가 2011년 관광지로 재개장했다.

광명 외에 경기 남부 지역에선 미군 유산은 보기 힘든 대신 광명동굴과 비슷한 목적으로 활용된 안양 채석장 사례도 있다. 화성의 매향리 쿠니사격장, 매향교회 정도가 미군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광명동굴의 현재. /경인일보DB
광명동굴의 현재. /경인일보DB

2년에 걸쳐 가평, 고양, 김포, 동두천, 수원, 연천, 오산, 의정부, 이천, 파주, 화성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봤다. 미군 흔적이 남아 있는 경기북부, 교육시설과 교회를 지어 힘든 환경 속에서도 생활을 꾸려나가려 했던 경기남부까지 둘러봤다.

내년에도 전쟁, 분단과 연결된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노력을 이어나가겠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