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 현 정부 공약 사업 역점적 시행
계엄·탄핵 여파에 ‘잘 될까’ 걱정 커져
철도 지하화 선도사업 발표는 연기 가닥
12월 3일은 평범한 하루였다. 밤 10시 25분 무렵까지는. 갑작스레 선포된 계엄은 다음 날 새벽 1시께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로 멈췄다. 이어 열흘 뒤 헌정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의결됐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고 정국의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사업들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비상계엄·탄핵 폭풍의 여파는 군포시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철도 지하화 등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군포시는 매우 역점적으로 각 사업들을 준비해왔다. 그만큼 해당 사업들이 군포시로선 오랜 숙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1기 신도시 재정비와 철도 지하화는 지역 내에서 단연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일들이다.
특별법도 이미 제정, 시행돼(‘철도 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 시행은 내년 1월 31일부터) 이제 1번 타자를 정한 후 특별법대로 각 사업을 이행하는 일만 남았을 줄 알았다. 12월 3일 밤 10시 25분 무렵까지는. 정부는 예정대로 각 사업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며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을 잠 재우긴 역부족인 상황으로 보인다.
# 1기 신도시 재정비
“1기 신도시 재정비는 현 정부 공약 사업이잖아요. 이런 상황인데 잘 시행될 수 있을까요?”
지난 여름, 날씨만큼 산본 노후단지 주민들의 열망도 뜨거웠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완화된 규정대로 재정비를 진행할 선도지구에 선정되기 위한 행보였다. 특별정비예정구역 13개 구역 중 9개 구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평가 배점 항목 중 주민 동의율이 가장 많은 배점을 차지했기에, 한 장이라도 더 주민 동의서를 받기 위해 휴일 없이 근무하는 것은 물론 타 지역 원정까지 불사했다. 열정과 노력으로는 어느 곳도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2개 구역, 6개 단지 총 4천620가구가 선도지구에 선정됐다. 특별법에 따라 이제 ‘재정비 패스트트랙’을 타는 일만 남을 줄 알았다. 그랬는데.
지난 18일 오후 7시 군포시청에서 열린 산본신도시 선도지구 주민설명회엔 말 그대로 구름 인파가 몰렸다. 앉을 의자가 없어 선 채로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시국이 이러니까 이 사업이 어떻게 될 지 불안해서 와본 것 아닐까요?”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불안감은 곧바로 질문에 묻어나왔다. 선도지구에 포함된 단지들이나, 그렇지 않은 단지들이나 걱정은 매한가지다. 이제 겨우 1번 타자가 선정된 상황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의 동력이 떨어지면 다음 타자 선정은 원활히 이뤄지겠느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어서다.
선도지구 선정 단지들의 호가가 한껏 뛰었지만 최근 정국 혼란 여파로 불안 심리가 부동산 시장에도 강하게 작용하며 기대만큼 매매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점도 산본 노후단지 주민들의 초조함을 키우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23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2월 들어 매주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성남 분당, 안양 평촌(동안구) 등과 달리 산본이 있는 군포시 아파트 매매가는 12월 들어 하락 전환해 내내 감소세다.
설명회에서 LH 등은 “아무래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설명회를 연 것은 결국 당초 계획대로 잘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예정했던 대로 이뤄지리라 본다”고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가운데, 국토부는 지난 19일 산본 재정비 이주 대책으로 당정동 공업지역에 이주 주택 2천2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며 박 장관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 철도 지하화
군포시에는 지하철이 없다. 모든 전철 노선이 지상에 있어 군포시 땅을 가르고 있다. 지하철을 갖고 싶다는 소망은 지역의 숙원이었다. 같은 염원을 가진 지자체들과 2012년부터 철도 지하화 필요성을 역설해온 것은 이 때문이다. ‘철도 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 개발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가장 먼저 지하화를 시행할 선도사업 대상 노선을 신청받을 때 도전장을 내민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군포시가 선도사업 대상 노선으로 제출한 구간은 수도권 전철 1호선(경부선) 중 당정역부터 금정역까지의 구간이다. 해당 지하화 사업은 군포시가 추진 중인 금정역 개선 사업과도 맞물려있다.
정부는 당초 올해 말 선도사업 대상 노선을 발표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최근엔 발표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군포시 등에도 이같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 1차 선도사업 대상 노선을 선정한 이후 내년 5월까지 추가로 사업을 제안받아 철도 지하화 대상 노선을 최종 확정해 내년 말 수립할 종합계획에 담는다는 게 정부의 기존 계획이었는데, 현재로선 내년 5월 한 번에 발표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토부는 군포시를 비롯해 선도사업 선정을 신청한 각 지자체들과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유로 앞세우고 있다. 박상우 장관은 “사업 주체와 재원 조달 등 구체적인 사업 시행 방안은 연말에 발표하겠다”면서도 “1차 사업(선도사업) 선정은 사업 계획을 제출한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발표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최근의 정국 혼란이 여러 정부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선도사업 선정 역시 이를 빗겨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짐작해서였을지 지난 12일 군포시는 지난 2012년부터 수도권 전철 1호선(경부선)의 지하화를 함께 추진해온 안양시, 서울 용산·동작·영등포·구로·금천구와 경부선 지하화 선도사업 지정을 촉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지하화가 각 지역에 가져다줄 경제적, 사회적, 정책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선도사업 대상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이 건의문의 주를 이뤘다.
잇딴 초유의 사태에 정국의 시계가 멈추고, 이와 맞물린 군포시 현안 사업의 시계도 더뎌진 채 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새로운 해가 뜨면 시계추는 다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