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로 미학·미술사를 전공한 고유섭(1905~1944·사진) 선생은 인천 용동(현 중구 동인천길병원 인근) 출신으로 1918년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15세 나이에 태극기를 직접 그려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용동 일대에서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인천에서 통학하며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한 고유섭 선생은 1927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학을 공부했다. 1933년에는 28세의 나이로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한국 미술사를 체계적인 학문으로 개척한 첫 인물로 평가된다. 1944년(향년 40세)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2년 동안 80여편의 논문을 남기며 일생을 한국미학에 바쳤다.
인천의 새얼문화재단은 1992년 8월 ‘새얼문화대상’을 제정해 제1회 수상자로 우현을 선정했다. 현재 인천시립박물관 마당에 있는 우현 청동상도 당시 새얼문화재단의 상금으로 만들어졌다. 인천문화재단도 고유섭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5년부터 ‘우현예술상’을 제정해 인천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해 4월12일에는 고유섭 선생 타계 80주기를 맞아 용동 일대에 명예도로 ‘고유섭길’이 생겼다. 인천시가 1999년 고유섭 선생의 호를 따 동인천역 대로를 ‘우현(又玄)로’로 명명했는데, 안쪽 골목길 생가 터를 따라 명예도로명이 새로 지어졌다.
중구 큰우물로 31에서 시작해 우현로 90번길 19의17을 지나 우현로90번길45에서 끝나는 240여m의 길이다. 그의 생가 자리에는 현재 동인천길병원이 있고 병원 뒤 광장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석이 있다. 2021년에는 고유섭길 근처에 ‘우현문갤러리’가 문을 열어 매년 추모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9월에는 고유섭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답사길을 관리하자는 취지의 조례안이 인천시의회에서 발의됐으나 상임위에서 유사 사업과 중복되지 않도록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쉽게 부결됐다.
/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