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든 현재든 다를것 없는 세상
존중·관심 갈구하는 “쇤네” 표현
세속적 욕망 관조 ‘요석공주’ 등
고리타분함 극복하게 하는 예술
“내가 항상 얘기하잖아”, “내가 무식한 거야?”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 문구는 김재민이 작가의 설치 작품 ‘소인 연구 중간 발표 - 소인에게 사랑을’(2024)의 일부를 구성하는 현판의 내용이다. 작가는 스스로 대한소인협회를 창설하고 소위 ‘쇤네(소인네)’라고 불렸던 소인의 현대판 사례를 연구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내용에 따르면, 소인은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조바심을 내거나 존중과 관심을 갈구하는 등의 여러 특징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양태를 연구한 작가의 자조적 시선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돌아보도록 한다.
작가 최수련 역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고서나 담뱃갑 카드 삽화에서 찾을 수 있는 덕목과 계몽의 문구들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사람이란 자고로 어떠해야 한다는 등 교훈과 관습, 권선징악의 교리가 글자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교리의 문구와 더불어, “세상의 화복과 선악은, 왜 보응하기도 하고 보응하지 않기도 한가?”와 같은 탄사나 “저의 죄를 알았습니다. 나중에 고쳐도 되겠지요?” 등의 대사에서 관례적 덕목에 이르려 애쓰는 인간사를 관조하게 된다. 글자를 이미지로 도입한 작가의 회화적 시도에는, 이와 같이 세태에 대한 희극적 해석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다양한 미신, 설화, 민담을 작품의 소재로 삼은 임영주 작가도 현대 사회의 관습과 현상을 풍자적 태도로 관찰한다. 원효대사의 정인에 관한 영상 ‘요석공주’(2018)에는 대중문화의 밈이나 미신들이 간간이 짧은 영상으로 겹쳐진다. 작가의 재치 있는 편집을 통해 동전이나 신체, 북두칠성 등 우리 주변의 믿음에 담긴 세속적 욕망에 대해 관조하도록 한다.
한국 미술에서 이처럼 전복적 위트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민화의 ‘호작도(虎鵲圖)’를 볼 수 있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한 눈을 한 호랑이, 털이 쭈뼛 선 호랑이, 또 이러한 호랑이를 향하고 있는 야무진 까치, 민화의 호작도에는 이처럼 익살스러운 동물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림에는 몰락한 양반의 위선과 관습적 위계의 부조리함을 꾸짖는 시선이 우화적이고 해학적인 태도로 담겨있다.
민화에서 한국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삶을 관찰하며 전통적 권위와 부조리를 초극하고 풍자로 묘사한 세상살이의 이야기, 예술의 전통적 기준을 기지 있게 반전시킨 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술의 사례들은 해학과 유머의 태도로 우리에게 삶의 여러 현실 장벽과 고리타분한 관습을 극복해 나가는 동력을 전한다.
/방초아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