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적 성장의 비결은 ‘맛’… 두부 이로움 알리고파”

 

맛있는 두부 만들기 위해 수십년 간 연구

아들이 대 이어 해썹(HACCP) 인증 등 발전

더 나은 지역사회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아

두부 제조 업체 정남식품의 김정남 회장(오른쪽)과 아들 김석현 대표. 제조한 두부를 들고있다. 2024.12.24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두부 제조 업체 정남식품의 김정남 회장(오른쪽)과 아들 김석현 대표. 제조한 두부를 들고있다. 2024.12.24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두부를 만드는 회사인 정남식품은 김정남 회장의 인생 그 자체인 곳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던지고 싶어 전라남도 완도에서 혈혈단신 상경한 스물두살 청년은 채소를 팔고 짐을 나르며 돈을 벌었다. 두부 배달도 그 무렵 처음 했다. 몇 년 배달을 하다 보니 두부를 직접 팔아보고 싶어졌다. 두부를 제대로 만들 공장을 찾다 연고도 없는 지금의 화성 정남면 공장 자리까지 오게 됐다. 정남면에 있는 김정남 회장의 정남식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콩 1가마로 시작했던 두부 공장은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오며 하루 600가마를 써야 할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비결을 묻자 김 회장은 “우리 두부가 맛있어서”라고 했다. “알면 알수록 두부라는 것이 참 좋은 식품이더라고요. 거의 자연, 천연에 가까운 식품이고. 어느새 보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더라고요. 그런 두부와 매일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콩을 어떻게 삶고 어떻게 갈고 간수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야 네가 좀 더 낫니? 좀 더 나아지니?’ 하면서요.” 두부에 대해 말하는 김 회장의 목소리가 일순간 들떴다.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게 필생의 과제가 된 그가 여느 제조업체들이 사용하는 대두분이 아닌 콩 그대로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용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나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일지라도, 콩을 직접 쓴 두부라야 맛이 살고 단백질이 유지됐다. 대기업에서 두부 판매를 본격화하며 많은 소규모 두부 업체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만 정남식품이 생존할 수 있던 것도 이런 고집 덕분이었다. 지금은 대기업에서 오히려 제품 생산을 위탁하거나 제품 납품을 다수 의뢰하고 있다.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자식은 다른 길을 걷길 바랐다. 아들인 김석현 대표가 대학교에 진학할 때 전기전자 공학을 전공토록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이 돌연 “아버지, 제가 공장 가서 도우면 안 될까요”라고 했을 때 선뜻 답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출근 준비해라”라는 답이 돌아온 건 1년 뒤였다.

김 대표는 “처음 그런 말을 아버지한테 했을 땐 솔직히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1년이 지나서야 아침 식사를 하다 출근 준비하라고 하시더라. 출근은 했는데 어디서 뭘 하라는 지시가 없었다. 저 스스로 뭘 해야할지 찾아야 했다. 제조 공장에서 두부 쌓는 일만 5년을 했다”며 “회사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해썹(HACCP)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해 직접 인증을 준비했다. 외부 도움 없이 하다보니 계획했던 것보다는 다소 일정이 늦어졌지만, 자력으로 인증을 받고 나니 훨씬 이해도가 높아졌다. 제가 식품 전문가도 아니고 공장에 저보다 연세가 많은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여전히 부족한 점도 있지만 제품과 회사 전반을 알기 위해 노력해왔던 게 대표로서 일할 수 있는 요인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업 승계에 부침을 겪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은 상황 속, 아버지의 두부 외길을 아들이 이어 걷고 있는 데 대해 김 회장은 그저 고맙다고 했다. 김 회장은 “아들이 당돌하게 이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땐 그 깊이를 몰랐을 것이다. 저 스스로는 두부와 친해지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고 고생했다. 그런데 아들이 열심히 하고 뭔가 해보려고 하니까 아버지로선 그보다 고마운 게 어딨겠나”라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내 공업이든 경영을 물려준다는 무게가 상당하다. 대를 이은 제품을 소비자가 똑같이 인정해줄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아들이 최선을 다해서 그런 터널을 괜찮게 탈출했다고 본다. 어제도 아들에게 ‘하산해도 되겠다’고 했다”면서 웃었다.

아들에게도 이제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일은 인생의 자부심이자 필생의 과제가 됐다. 김 대표는 “저희는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두부 제품군은 모두 생산한다. 보통은 특정 제품군만 생산하기 때문에 저희처럼 망라해 생산하는 업체는 드물다. 두부라는 제품의 특성상 오늘 만들면 소비자에게 다음 날 도착해야 한다. 그게 우리 회사와 소비자 간 약속이다.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모든 제품군의 제조 설비가 2~3개 라인을 가지고 있다. 한 라인에서 문제가 생겨도 다른 라인에서 곧바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포장 두부가 나오기 전엔 두부를 한 모 한 모 잘라서 판매했는데 집에 가면 부서지는 게 예삿일이었다. 그래서 두부가 다소 거칠어도 단단한 게 일반적이었다. 저희는 입에 들어갔을 때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두부를 만들고 싶었다. 끝없는 연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좋은 설비가 필요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고가의 설비들도 거침없이 도입했다. 그런 점이 결국 차별화된 제품으로 이어졌다. 정남식품은 물론 저 스스로의 자부심”이라고 밝혔다.

맛있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점과 함께, 더 나은 지역 사회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온 점도 자부심의 근원이다. 여기엔 처음 공장을 샀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포장 도로 하나 없던 곳을 손수 정비하고 닦아 비교적 번듯한 지역으로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자리한다.

김 회장은 “저렴하게 공장을 사려다 보니 길 하나 제대로 나있지 않던 이곳까지 오게 됐다. 매 겨울마다 눈이 오면 연탄재를 뿌려야 겨우 두부 배달 차가 오갈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는대로 도로 포장을 하면서 터를 조금씩 닦아 나가니까 인근에 다른 공장들도 하나 둘씩 생겨 지금처럼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아무 것도 없던 맨 땅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지역 환경 보전이나 이웃과의 나눔 등에도 관심을 많이 기울여왔다. 저희가 두부를 만들 때 쓴 간수 같은 물을 자체 처리해서 방류하는데, 그 물에서 잉어를 키우고 있다. 짠 물을 그만큼 제대로 정화 처리해서 내보내는 것”이라며 “지역 푸드뱅크에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보통 푸드뱅크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들을 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버지가 그 날 생산한 정상 제품을 꼭 전달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새해엔 콩을 소재로 한 새로운 사업도 시작한다. 오산지역에 콩 관련 베이커리 카페 개업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콩, 두부가 건강에 매우 이롭다는 점을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알리고 싶다. 아버지가 일군 이 회사를 보다 탄탄하게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게 2세로서 제가 해야할 도리라고 여긴다”고 강조했다. 두부를 앞에 두고 미소 짓는 아버지와 아들이 유독 닮아보였다.

화성/김학석·강기정기자 mar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