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장에 섰다. 수백만 촛불로 가득 메워진 2016년 겨울의 광장으로부터 8년만이다. 광장에 떠도는 한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머금은 분노는 8년 전보다 매섭다. 어떻게 완성한 민주주의인데, 어떻게 이룩한 대한민국인데… 당연하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너지던 그 밤, 국민도 ‘격노’했다.
2024년 겨울, 광장에서 다시 시민들을 만났다. 그런데 광장이 둘로 쪼개졌다. 하나의 광장에서 규모는 달랐지만, 적어도 서로의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아웅다웅이라도 했던 8년 전의 광장과 달랐다. 그날 밤 온 국민이 지켜본 하나의 ‘사실’을 두고 완전히 다른, 서로의 광장에서 자기 말만 외쳤다. 토론도 없고, 논쟁도 없다. 그 광장 안에 허용되지 않는, 다른 말을 하는 건 배신이고 반역이다. 광장은 민주주의의 산물인데, 어쩐지 민주적이지가 않다.
둘로 갈라진 광장에도 공통점은 있었다. 유튜브다. 정치를 콘텐츠로 활용한 유튜브다. 영상을 찍어 유튜브로 전송하는 사람 반, 그 유튜브를 보는 사람 반. 반과 반이 모여 그 광장을 가득 메웠다. 유튜브를 보는 이유를 물었다. “나랑 생각이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잖아요. 속이 시원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발표하는 디지털뉴스리포트2024에서 한국사람들은 ‘정치뉴스’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한국을 포함한 47개국을 조사한 결과에선 ‘지역뉴스’와 ‘국제뉴스’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에서 정치는 확실히 ‘먹히는’ 콘텐츠인 것이 맞다. 온라인 동영상,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보는 콘텐츠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54%가 국내정치이슈를 뽑아 다른 콘텐츠를 압도했다.
그들이 보는 유튜브를 살폈다. 언론이 없는데, 그들은 언론이라 여겼다. 광장에서 질문하는 경인일보 기자는 그들이 인정한 언론이 아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기성언론에서도 전체 뉴스의 절반 이상을 정치뉴스로 도배한다. 조금 더 깊이 물었다. “이제 조중동도 안봅니다. 다 변질됐어요.” “대한민국 어떤 언론보다 (내가 보는) 유튜브에 더 신뢰가 갑니다.” “앞으로는 기성 언론보다 유튜브가 훨씬 발전할거고 대체될 거에요.”
둘로 갈라진 광장에서 유일하게 함께 피어오른 건 언론을 향한 ‘불신’이었다. 꽤 뿌리깊게 박힌 듯한 불신을 자양분 삼아 정치 유튜브가 덩치를 키웠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명이어야 할 ‘뉴스’는 정치와 만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골라 들을 수 있는,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같이 돼버렸다.
2024년 광장에는 서로가 반대편 광장의 상대를 향해 ‘확증편향’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그 중간에 언론이 껴있다. 언론은 양쪽 모두에게서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진실을 찾아 더 깊숙이 파고드는 노력 대신 기사를 베껴서 1분이라도 빨리 포털사이트에 보내는 데에 열중했고, 다양한 취재와 분석을 통해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는 대신, 떠들기 좋은 먹잇감을 던져놓고 뜯고 씹고 맛보는 유튜브를 오히려 따라해온 건 아닌지, 8년 전 광장보다 언론이 더 초라해진 이유를 돌이켜본다.
그래서 을사년을 여는 신년호 ‘유튜브의 나라’에는 광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다. 언론이 완전히 잃어버린 독자의 신뢰가 유튜브로 옮겨간 그 현장이다.
유튜브는 어떻게 언론을 대체했나.
자영업자 오명환(65)씨는 요즘 뉴스만 보면 화가 난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생각하는 오씨는 한때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신문을 꾸준히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 신문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구독을 모두 취소했다. TV 뉴스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던 보수 성향 패널들이 종적을 감춘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씨는 신문, 방송 등 대부분 언론이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보도에서 진보 진영의 목소리만 대변해주는 데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기성 언론을 보지 않는 대신 오씨가 택한 대안은 유튜브다. 오씨가 보여준 유튜브 구독 목록에는 신의한수 (구독자 155만), 정의구현 박완석 (구독자 46만), 이봉규TV (구독자 93만) 등이 있었다. 모두 보수 성향을 띤 정치 유튜버들이다.
“이 채널들은 좌파에 장악된 언론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의 ‘열린 입’입니다.” 오씨는 유튜브 채널 ‘고성국TV’ 가 쓰인 롱패딩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매달 1만원씩 고성국TV를 후원하고 있는 오씨는 한때 8개 채널 멤버십에 가입했을 정도로 열성이다. 오씨는 “집회 현장에서 열심히 발로 뛰며,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주는 우파 유튜버들은 후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보수·진보 막론하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
신문·TV 등 불신에 유튜브가 ‘믿는 언론’
정작 크리에이터들 스스로는 “언론 아냐”
지난해 12월23일 오후 2시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선 보수성향 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 대열의 맨 앞에는 정치 유튜버 군단이 카메라를 켜고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중 한 채널에는 시청자 수백여명이 실시간으로 접속했다.
집회에 참여한 프리랜서 정태원(31)씨는 “유튜버는 철저한 사실 검증과 증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점차 언론의 필요성이 사라질 것”이라며 “보수 집회 참가자 수를 훨씬 적게 보도하는 언론사는 권력에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한 불신을 표했다.
이런 모습은 같은날 오후 7시 서울 송현공원 진보성향 단체 집회에서도 나타났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온 사람들은 시작 전부터 저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집회상황을 송출했다.
이곳에서 만난 정원주(70)씨 역시 더 이상 기성 언론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에게 정치 유튜브란 기성 언론을 대체할 수 있는 매체다. 정씨는 스픽스 (구독자 115만), 새날(구독자 104만), 서울의 소리 (구독자 144만) 등을 보고 있다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 구독 목록을 취재진에게 자랑스레 보여줬다.
정씨는 정치 유튜브가 신뢰성, 신속성, 전문성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대형 언론들은 정치권과 연결됐고, 특히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신뢰성이 더욱 떨어진다”며 “유튜브는 대단한 평론가들이 나와 정확히 사안을 짚어주기 때문에 심도깊다”고 했다.
정씨 역시 유튜브 ‘고발뉴스 TV’와 ‘뉴탐사’의 정기 후원 멤버십에 가입하고 있다. 정씨는 “이상호(고발뉴스 TV)와 강진구(뉴탐사)는 진정한 뉴스를 만들고 있다”며 “대한민국 어떤 언론보다 신뢰가 가는 이들에게 후원하는 것은 일종의 수신료”라고 말한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각자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정치유튜브가 ‘내가 믿는 언론’이 돼 있었다. 기저에는 하나같이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공통의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을 말해주기 때문”이라서다.
이런 현상은 관련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4 한국’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31%다. 이는 미국, 일본, 핀란드 등 조사대상 47개국 중 38위에 그친 순위다. 기성언론이 시민에게 외면받고 있는데 반해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률은 전체 소셜 플랫폼에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에서 유튜브의 점유율은 47개국 평균 31%를 훨씬 웃도는 51%로 기록됐다.
국내 정치 유튜버들은 사회적인 파장이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영향력을 넓혀왔다. 기성언론을 믿지 못할 수록 유튜브로 몰려갔다. 실제로 비상계엄령 선포 및 해제가 이뤄진 지난해 12월 3일을 기점으로 구독자 수가 수십만명까지 늘어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유튜브, ‘언론’인가
정작 정치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튜버들은 스스로를 언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오히려 정파적 입맛이 맞는 사람들에게 맞춘 유튜브 콘텐츠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강했다.
보수 유튜브인 애국청년spring 운영자 임한나씨는 “집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채널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론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언론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기성 언론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구독자들이) 하는 것은 유튜브가 굉장히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보니, 원치 않은 채널은 뜨지 않고 보고싶은 것만 볼 수 있는 특징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기성 언론에 기대하는 건 ‘치우치지 않는 느낌’인데, (유튜브에선) 이보다 구독자가 원하는 걸 보도해주고 알려주는 개념으로 본다. 쉽게 말해 내가 가진 생각을 이 사람이 대신 말해주네, 이렇게 여기면서 속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유튜브를 보는 이들은 언론을 대체하는, 대안언론으로써 소비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제작하는 유튜버들은 언론 임을 부담스러워 하는 괴리가 현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저 구독자가 궁금한 것을 사실대로 알려주기 위해 정치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현행법상으로도 정치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들을 언론으로 규정하기 애매하다.
유튜브 채널은 신문·방송법 등을 적용받는 기성 언론과 달리 정보통신망법을 적용받는다. 공중·지상파 방송이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를 생산하면 엄격한 제제가 이뤄지는데 반해 유튜버들은 이런 문제를 저질러도 실질적인 제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튜브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방송은 정치적인 공정성 여부를 확인하지만 유튜브는 정보가 유해한지, 불법성을 띄는지를 본다”며 “정치 유튜브에서 생산하는 가짜뉴스는 아직 사회적으로 명확히 규정된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라는 건 해설의 여지가 있는 분야에서 맞고 틀린 것을 재단해 구분하기가 어렵고 이런 탓에 정치 유튜브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일종의 사각지대다. 문제는 정치 유튜브의 속성이다. ‘구독자가 듣고 싶은 내용’이 판단기준이 되는 유튜브에선 ‘사실’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또 변형될 수 있다. 그래도 공적 규제는 가해지지 않고, 책임질 근거도 없다.
신문·방송법 적용받지 않는 유튜브 채널
검증 안된 정보 생산해도 제재 대상 아냐
가짜뉴스 양산·사회적 양극화 심화 우려
유튜브가 언론을 대체할 때 부작용은?
보고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을 말해주는 유튜브와 소비자간의 거래는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함민정, 이상우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가 낸 보고서 ‘유튜브 정치동영상의 선택적 노출과 정치적 태도극화: 정치성향별 내집단 의식의 매개효과 검증’에서는 정치 집단 간 갈등이 고조되는 이유 중 하나로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생산되는 당파적 콘텐츠와 가짜뉴스의 증가를 꼽았다.
보고서는 “특정 정치 이념에 대한 선택적 노출은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간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튜브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 전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양선희 대전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유튜브 저널리즘의 시대, 전통적 저널리즘의 대응 현황과 과제’ 연구를 통해 “유튜브 알고리즘은 여론 다양성을 훼손해 여론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민주주의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전통적 저널리즘을 소비하던 수용자와 유튜브 저널리즘 이용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연곤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정치 유튜브로 인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기성언론의 현 상황을 이렇게 바라본다.
“기존 미디어가 해왔던 뉴스 제작 방식도 따지고 보면 유튜브가 해왔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뉴스로 보내는 행태를 기성언론이 보여왔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퍼나르는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는 행태 등도 문제입니다. 포털이 언론을 장악한 지금의 환경에서 기성언론의 역할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기존 뉴스 제작 방식을 충분히 바꾸지 않으면 사람들의 불신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강 교수는 기성언론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아끼지 않았다.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된 격변의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뉴스 생산 방식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위기가 닥치면 기성언론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납니다. 사람들에게 여전히 기성언론은 유튜브에 비해 검증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약간의 믿음이 남아있다는 뜻이죠. 그런 믿음이 있기에 지금이야말로, 혼란한 정보 환경 속에서 기성언론이 갈등이나 혐오를 부추기지 않는 검증된 뉴스를 만드는 제작 방식을 절실히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공지영·이시은·김지원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