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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나더러 자기 집에 들러서 잡화벌꿀과 노트북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아마도 본인은 부탁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는 명령으로 들었지만. 대표의 집은 회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의 빌라 5층이다. 대표는 늘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업무를 교묘하게 섞었다. 어디까지가 공적인 업무이고 어디까지가 사적인 업무인지 고민하지만, 그건 모래사장에 바다의 경계를 긋는 것처럼 무용하다. 어차피 네, 하고 대답할 테니까.
이런 거 불편하나?
처음 샌드위치를 사오라고 명령했을 때 내게 했던 말이다.
아니요, 편합니다.
편합니다, 라니. 그 상황에서 이 이상 바보 같은 대답을 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편한만큼 대표는 선을 넘는다. 이건 일종의 영역 싸움이다. 대표는 내 몫의 샌드위치 값도 지불한다며 자기 명령을 부탁으로 정당화하고, 나는 복종이 아닌 호의로 하는 행동이라며 스스로 기만한다. 샌드위치 심부름은 외근을 빙자한 운전 부탁으로, 중고 거래 심부름으로, 집안의 가구를 옮겨달라는 부탁으로 이어진다. 내가 초래한 일이다. 나갈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고개를 젓던 디자이너 남서윤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불편한 게 편한 겁니다.
시켰을 때 싫은 티라도 내란 말이겠지. 나는 꿈틀거리지도 못했구나, 자책하며 걸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5층에서 열렸을 때,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화들짝 놀랐다. 눈 주위가 붉었고 날이 추웠음에도 앞머리가 땀에 젖어 있었다. 보풀이 일어난 코트 깃을 바투 올린 채 비스듬히 돌린 고개는 어쩐지 누가 손찌검을 할 때 눈을 질끈 감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지체하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고양이 털이 공중에 떠다녔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문을 열었다.
오후의 남의 집에는 기묘한 고요함이 있다. 수요일마다 방문하는 가정부 덕에 집안은 깔끔했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베란다 통창으로 투명한 햇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평화로운 연립주택촌이 내려다보이고, 고가도로에서 차들이 오가는 소리가 방음벽에 둥글게 깎여 웅웅 거리며 귀에 닿는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햇볕을 쬐고 그 회색 소음을 들었다.
방은 세 개다. 거실 탁상 위 노트북을 챙겨 부엌에 두고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빤히 노려보다가 선반을 열었다. 각종 영양제와 비타민,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 따위가 노란 약통에 들어있다. 라벨에 쓰인 약의 성분을 하나씩 읽어보다가 종합비타민, 루테인, 오메가3 따위의 건강보조제만 주섬주섬 손바닥 위에 쏟아 입에 털었다. 수돗물을 조금 마셨다. 선반을 닫고 밖으로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실과 냉장실 구분할 것 없이 꽉 차 있다. 좋은 냉장고는 아래가 냉동실이다. 양 갈빗대, 소, 돼지고기, 참돔 따위가 진공포장 되어 있다. 냉장실 신선칸에서 천도복숭아를 하나 꺼내 크게 베어먹자 과즙이 바닥에 튀었다. 양말로 닦은 뒤 싱크대 앞에 서서 마저 천도복숭아를 다 먹고 씨앗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잡다한 쓰레기 위로 누군가 사용한 일회용 주사기가 보였다. 냉장고에서 반쯤 남은 진을 꺼내 크게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냉장고 문을 닫았다.
씹을 때 턱 근육이 꿈틀거리는 느낌. 삼킬 때 울대가 요동치는 소리. 그런 게 전부다. 이런 발작적인 행동은 하면서도 왜 하는 건지 스스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냥 단순한 보상심리 때문일까. 휘파람을 불었다.
대표에게는 18살 먹은 노령의 고양이가 있다. 삼색이고, 당연히 암컷이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낯을 가리는지 내가 문을 열면 늘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최근에 대표는 일본 여행 동안 동네 구인 어플로 연락한 펫시터에게 고양이를 맡겼다. 펫시터가 심장약을 잘못 투약해 고양이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치료 비용으로 수억이 깨졌다며 펫시터가 자신의 고양이를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펫시터에게 맡기기 전부터 고양이는 몇 차례 거품을 물고 발작해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고양이 화장실 뚜껑을 열고 삽으로 모래를 뒤적였다. 며칠 동안 치우지 않은 오줌 덩어리와 똥이 삽 끝에 걸렸다. 화장실 선반에서 리스테린을 꺼내 가글을 하고 세면대에 뱉은 뒤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데, 열려있는 침실 문 좁은 틈새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을 길게 뻗은 다음 손가락 끝으로 문을 확 밀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몇 주 전부터 나는 집 근처 독립서점에서 소설창작 입문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가벼운 독서모임도 있었고, 시 창작 수업도 있었고, 에세이 수업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창작 수업을 택했다. 나는 내 삶을 쓰고 싶었지만 있는 그대로 쓰고 싶진 않았다. 같은 또래 친구들이 차근차근 자리 잡고 결혼 준비까지 하는 마당에, 업계 관례라며 4대 보험도 들지 못한 채 박봉의 월급을 받고 아침을 회사 식기 설거지로 시작하는 내 삶을 적어서 뭘 한단 말인가? 이런 걸 그대로 받아 쓰고 싶진 않다. 소설은 픽션이니까, 픽션을 발판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싶었다.
나는 내 삶을 쓰고 싶었지만
있는 그대로 쓰고 싶진 않았다…
소설은 픽션이니까, 픽션을 발판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싶었다
선생은 등단한 지 5년 정도 된 작가였다.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서점에서 그녀가 쓴 소설집을 살펴봤는데, 중쇄를 찍지 못했다.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가 정원을 10명 정도로 예상한 수업은 나를 포함해 4명이 전부였다. 선생은 첫 수업 때 말했다.
소설 쓰는 방법 같은 건 가르칠 수 없습니다.
초면인 수강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소설을 완성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같이 쓰고, 읽고, 응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강생들은 모두 전에 소설을 써본 적 없는 초심자였다. 다들 뭔가를 쓰고 싶어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은 쪽지를 나눠주며 지금 각자가 당면한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짧게 한 줄로 적으라고 말했다.
그게 여러분 소설의 씨앗이 될 겁니다. 이야기를 쓰는 건 출산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산모이자 산파입니다.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착상하고 메타포를 만나 화학 작용을 일으키고, 그게 머릿속에서 천천히 불러오다가 결국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 아이는 걸을 수도 있고, 얼마 못 가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 문제를 쓰기 전과 달리 소화했다는 걸 의미할 테니까요.
어둑한 서점 한가운데서 둥글게 배치한 의자에 앉아 번갈아 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알코올중독자 치료 모임의 한 장면 같았다. 키가 크고 입만 웃는 여자가 먼저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뭔가 민망합니다. 영양사… 라고 불러주세요.
안녕, 영양사.
선생이 인사하자 모두 웃으며 따라 인사했다. 영양사는 시선을 맞은편 의자 오른쪽 다리에 고정한 채 말했다.
병원에서 영양사 보조로 배식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영양사라고… 방금 지어냈습니다. 이름을 말해도 큰 상관은 없지만, 이름보다는 이쪽이 저에 대해 알려주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한 문제는… 부끄러워요. 몸무게에 대한 집착이 심해요. 보다시피 키가 큰 편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만큼 컸어요. 하지만 몸무게는 44킬로그램 정도입니다. 자랑하는 건 결코 아니에요. 여기서 더 찌는 걸 참을 수 없어요. 몸무게를 신경 쓴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건강했고, 꾸미는 것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부 재미없어져 버렸습니다. 특성화 고교를 나왔으니 거기서 배운 영양사 일을 할 뿐이지 다른 걸 할 여력은 없어요. 버는 돈은 족족 병원비나 핸드폰 게임에 써버립니다. 들으면 놀랄 거예요. 월급을 전부 게임에 써버리는 수준이니까요. 오래전부터 제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남자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제가 제어할 수 있는 건 몸무게, 그거 딱 하나뿐인 것 같아요. 45 킬로그램이 체중계 한가운데에 인쇄되어 있어요. 44에 멈추는 체중계 침이 오랜 친구 같습니다. 거기에 기대서 살아요. 여러분이 보기에 문제 같지만, 솔직히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문제죠. 쓸 수 있다면 이것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생각보다 솔직하게 말해서 놀랐다. 나머지 둘도 각자가 처한 문제를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종이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루이, 루이입니다.
안녕, 루이.
빈 종이를 냈는데… 문제가 없어서는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많아요. 뭐가 가장 큰 문제인지 몰라서 그렇지. 첫 직장에서 1년 조금 넘게 일하고 있는데, 최근에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잡지나 사보, 문화행사기획을 하는 회사입니다. 직원은 고작 3명뿐이고요. 이런 설명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원두를 갈아서 드립 커피로 내려 마실 수 있는 사무실이 있지만, 4대 보험은 업계 관례라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는 곳입니다. 작은 곳일수록 대표의 힘이 세고, 뭐든 대표 위주로 돌아갑니다. 가끔 앉아서 사무실을 돌아보면 대표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싸워야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전부 싸우지 않았습니다. 제 안의 수동성과 노예근성이 20대 남자는 착취당하는 게 당연하니까, 라며 자신을 먼저 속였습니다. 몇 달 전에 새 디자이너가 들어왔어요. 그분에게 회사를 소개하는데, 부끄러웠습니다. 진작 느꼈어야 할, 제가 유예했던 부끄러움을 그제서야 느낀 거예요. 그분은 지금도 가끔 제게 말해요.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고. 그런데 저는 여전히 싸우지 못해서 스스로가 한심합니다.
이야기를 쓰는 건 출산과 같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 문제를 쓰기 전과 달리
소화했다는 걸 의미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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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까지 출근하지 않던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는 소리만 들리길래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전화하더니 고양이가 죽었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펫시터가 고양이를 죽였다고 집요하게 덧붙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대표는 전화를 끊고는 선임 에디터인 김철진과 남서윤에게 차례로 전화해 똑같이 고양이가 죽었다고 말했다.
다들 와서 참치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해줘요.
김철진은 한숨을 쉬더니 죽은 고양이 보러 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 남서윤은 동물 사체를 보는 게 싫다며 거절했다. 나는 대표가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가는 길에 죽을 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와 김철진은 전복죽을 회사 카드로 산 뒤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통곡 소리가 들렸다. 현관은 신발로 가득했다. 거실 탁자 위로 푸른 수건에 쌓인 채 뻣뻣하게 굳어있는 고양이가 첫눈에 보였다. 대표는 그 앞에 앉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 채 울고 있었다. 그 뒤로는 대표의 지인 대여섯 명이 병풍처럼 대표를 둘러싼 채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고양이가 좋은 곳에 갔을 거라 말하고 있었다. 나무토막 위 버섯처럼 대표의 등에서 팔 여러 개가 자라난 것 같았다. 대표는 자기가 여행을 가서 고양이를 죽였다고 자책했다. 그러면 지인들은 대표가 아니라 펫시터가 죽인 거라며 위로했다. 대표는 눈물을 닦은 뒤 나와 김철진더러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김철진은 천연덕스럽게 두 손을 모은 채 고양이가 웃어른이라도 된다는 듯이 존댓말로 인사를 하고 반절을 했다. 나는 옆에서 고양이를 우두커니 내려다봤다. 수차례 대표의 집에 들를 때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죽어서 처음 봤다. 고양이는 기지개를 켜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어쩐지 대표의 지인들이 뒤에서 나를 노려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죽은 고양이의 이마를 몇 차례 쓰다듬다가 좋은 곳으로 가라고 말하고는 뒤로 빠졌다. 대표는 사무실로 복귀하려는 나와 김철진을 불러 세웠다.
반려동물 장례식장 좀 알아보고 단톡방에 올려줘요. 부탁할게요.
고양이 장례식을 마친 대표는 요 며칠 지쳐 보였고, 내내 신경이 날카로웠다. 한번은 이동통신사 요금제 연장 사은품으로 받은 핸드블렌더 성능이 끔찍하다고 이런 형편없는 물건을 VIP 사은품으로 기획한 책임자가 누구냐며 상담직원을 붙잡고 무려 2시간 동안 분풀이를 했다.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사무실로 흘러들었다. 대표는 통화를 끊고는 나를 불렀다. 나는 내가 작성한 기사 때문이라 여기고 깨질 준비를 했다.
대표가 건넨 건 흡사 줄자처럼 보일 정도로 긴 영수증이었다. 핸드폰 화면에 다 담기도록 영수증을 들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처럼 구겨지거나 꼬여서 누락 되는 부분 없이 영수증을 펼쳤다. 동물병원 영수증이었다. 진찰비, 입원비, 검사비, 약값, 수혈비, 수술비 등 기타 잡다한 의료서비스가 날짜와 함께 수차례 반복해서 적혀있었다. 그걸 모두 합친 금액은 9백만 원이 넘었다. 대표는 자기가 찍은 사진을 넘겨보며 확인하고는, 대뜸 내가 웃기게 나왔다고 말했다.
며칠 뒤 대표는 중식당에서 직원들에게 점심을 샀다. 고양이를 애도하느라 회사 일에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김철진은 대표에게 오전에 사무실에 방문했던 남자가 누구였냐고 물었다.
변호사. 소송 걸었거든.
나는 짜장면을 비비던 젓가락을 멈췄다. 김철진이 물었다.
소송이요? 누구한테요?
펫시터.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텐데요.
걔 때문에 참치가 죽었어요. 걔가 죽인 거야. 여행 가기 전에 직접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가르쳤다고. 수액은 어떻게 놓고, 영양제, 흡착제, 이뇨제, 심장약은 어떻게 먹이는지. 불안해서 카톡으로도 세세하게 남겼어요. 내 성격 알잖아. 그런데 그걸 지 멋대로 먹여서 참치를 죽인 거야. 이건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에요. 잘못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나는 음식을 절반가량 남겼다. 대표는 잡채밥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이를 닦고 자리에 앉아 동네 구인 어플을 깔았다. 위치를 회사로 지정한 다음 검색창에 ‘펫시터’라고 입력했다. 서너 페이지에 걸쳐 펫시터 일을 자원한 사람들의 프로필이 쭉 떴다. 조그마한 프로필을 차례로 넘겨보다가 멈췄다. 사진에서 시차는 느껴졌지만, 분명히 닫혀있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 여자였다. 아이디는 ‘toibi94’였다. 햇볕이 충분히 들지 않아 조금 어둑한 실내에서 고등어 고양이를 안은 채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필름 사진이었다. 찍히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포즈를 취한 몸은 어딘가 경직되어 있다. 하지만 안겨있는 고양이는 편안해 보인다. 여자의 입꼬리는 한쪽만 살짝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마 플래시가 잦아든 다음에는 허리를 꺾으면서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자신을 다음 문장으로 소개했다.
어제는 당신이 고양이를 구했지만, 내일은 고양이가 당신을 구할 겁니다.
갑자기 명치 한가운데가 아팠다. 아코디언처럼 펼쳤던 영수증 끝에 적힌 9백만 원이라는 금액이 그만큼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나의 부채가 아니었지만 나는 9백만 원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날, 야근을 마치고 잠이 올 때까지 토이비의 펫시터 서비스를 이용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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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는 늘 30분 정도 일찍 서점에 도착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책을 빼서 도입부만 살펴보다가 다시 꽂아두곤 했다. 나 역시 모처럼 일찍 서점에 도착해 영양사에게 말을 붙였다.
안녕, 영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