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옛집서 찾은 삶의 흔적… 마지막까지 울림 지속”
정치적 격랑을 거치면서, 계속 되는 불황을 견디면서, 우리들의 시심은 더 높아지고 더 깊어졌음을 응모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 누구나 시인입니다.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는 서정을 사물에 투사하여 사물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면 훌륭한 시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될 수 있다면 아름답고 기쁘고 담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심은 연민입니다. 이 사회가 연민으로 가득 찬다면 시편들은 사회 병리를 치유하는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응모작품의 수가 늘어났으며 작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의 경향은 대체로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철학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두 심사위원은 오랜 토론 끝에 김지민을 당선자로 밀었습니다.
김지민의 당선작 ‘넝쿨은 집으로 가요’는 재건축지구의 폐기물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삶의 흔적들에 깊은 시선을 보내는 시입니다.
굴러다니는 벽시계는 사하라 장미가 그려져 있고, 빈집과 빈집 사이에는 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라진 아낙의 목소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고, 오르톨랑, 즉 멧새 요리가 차려진 식탁이 있기는 하지만 먹어본 적이 없으니 상상속의 음식일 뿐입니다.
온갖 폐기물들 사이에 자라나는 넝쿨은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이미 무너져버린 옛집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 넝쿨은 재건축지구에 살던 주민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버려진 메뉴판은 재건축되기 전, 그곳에서 음식점 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리하여 주민들과 정담을 나누던 업주의 마음일 것입니다. 재건축지구의 하늘이 가라앉고 그늘이 커지면 그늘 속으로 발을 옮기던 사람들이 떠나고 주민들의 과거가 해체되는 것입니다. 결국 주민들은 재건축지구를 떠납니다. 서럽고도 슬픈 일입니다.
‘우리들만 떠나고’라는 마지막 행의 울림이 오래 계속됩니다. 부디 한국 시단의 미래를 예인하는 능력 있는 시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