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 보다… 들어, 보다… 장애를 넘어, 보다

경기도자박물관 무장애 기획전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 모습.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경기도자박물관 무장애 기획전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 모습.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뮤지엄들은 관람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벽을 허물고 문턱을 낮추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는 비단 비장애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자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협력해 선보이는 무장애 전시는 모든 사람이 어려움 없이 박물관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장애인의 시선에서 박물관의 유물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여러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담긴 이 전시들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한층 더 높이는 마중물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 경기도자박물관

시각의존 유물전 탈피, 다중감각 확장

장애인 의견 반영, 수어·점자 등 활용

도자기 파편 직접 만져보며 질감 비교

체험물에 향 입혀 후각까지 경험 가능

음악 결합 ‘터치 세라믹’ 상상력 자극

■ 경기도자박물관 무장애 기획전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경기도자박물관의 상설전시를 무장애 버전으로 재구성한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는 진열장 안에 전시돼 시각에만 의존해왔던 유물의 전시 감상 방법을 촉각·후각·청각 및 다중감각으로 확장했다. 김진영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체험을 하는 전시로 기획했다”며 “박물관에 오는 데 어려움을 가진 분들이 누구일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각·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한 워크숍에서 나온 의견을 전시에 많이 반영했다고.

전시장 내 체험물 옆에는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쉬운 해설 QR코드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해설 QR코드가 있다. 모든 체험물은 만질 수 있게 돼 있고, 수어 영상, 점자, 전시 관람 방법을 담은 비주얼 스토리북 등도 마련돼 있다. 전시는 기존 스토리 라인으로 구성된 전시 형식에서 벗어나 제작 과정, 형태와 기능, 문양 등 도자기의 특징을 부각시킬 수 있는 3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유물은 주제에 맞게 문양이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 선별했다.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품들.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품들.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제작 과정’에서는 광주조선백자요지에서 출토된 실제 도자기 파편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초벌 도자기, 유약을 입힌 도자기, 문양을 낸 도자기의 질감과 장식기법, 무게감 등을 촉각으로 비교 가능하다. 이제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백자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진 달항아리를 통해 그 모양과 제작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100여 개의 오브제를 만들고 소성 후 가마에서 나올 때 도자기 표면의 유리질이 수축하며 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청각을 자극한다. 미술관의 소장품인 폴리엔 바바스 작가의 ‘나에게 말해줄래요’이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도자기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좋을 듯하다.

‘형태와 기능’에서는 3D 프린팅으로 재현된 석고 체험물에 향을 입혀 촉각과 후각을 활용하도록 했다. 조선시대 백자 주병부터 제례 용기인 상준 등 유물의 모습과 문양을 느낄 수 있도록 재현품과 양각으로 표현했고, 유물의 형태나 색이 연상되는 향을 매치시켰다. 익숙한 향을 맡으며 도자기의 용도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품들.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품들.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마지막 ‘문양’ 섹션에서는 백자청화 운룡문 항아리(관요), 백자철화 운룡문 항아리, 백자청화 운룡문 항아리(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용문양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됐는지를 반부조 촉각 체험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용문양은 왕실에서만 사용됐는데, 조선 후기 들어 계층의 변화가 생기고 상인들도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용문양 항아리를 주문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에 따른 운룡문의 모양새를 손끝으로 느껴볼 수 있다. 문양의 색깔을 알 수 있는 코너에서는 푸른색의 청화, 적갈색의 철화, 녹색의 조선말 크롬안료가 연상되는 향이 비치돼 있다.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품들.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도자기와 닿다, 도자기 와닿다’ 전시품들. 2025.1.2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터치 세라믹’은 특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산수문, 나비국화문 등 조선백자에 청화 안료로 그려진 문양을 양각으로 구현한 재현품은, 해당 부분을 만지면 그 문양을 모티브로 작곡된 음악이 흘러나온다. 도자기에서 각각의 문양을 만질 때마다 달리 나오는 음악이 상상력을 더욱 키웠다.

김 학예사는 “장애인 분들이 박물관이 문턱 높은 곳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같이 관람할 수 있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했다”며 “비장애인도 이번 전시에서 감각 기관을 좀 더 확장하며 새로운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경기도박물관

지역 명문가들 등 기증품 선봬

성리학자 송시열 초상화, 연구가치

전시장 재구성, 전동휠체어 동선 확보

■ 경기도박물관 무장애 기증특별전 ‘巖巖汪汪: 만 길 벽, 천 이랑 바다’

“기증을 하면 모두의 보물이 된다고 하는데, 그 모두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걸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경기도박물관은 2년 연속 장애인 접근성 강화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 ‘巖巖汪汪(암암왕왕)’은 조선 후기 학자 홍직필이 우암 송시열의 초상화를 묘사한 글에서 유래됐는데, 송시열의 학문적 깊이와 인격적 높음을 ‘만 길 벽처럼 드높고 천 이랑 바다처럼 드넓다’고 표현한 것이다. 전시는 경기도박물관이 기증받은 경기도 지역 명문가들의 초상화와 복식 유물 등을 통해 경기 사대부들이 추구한 학문과 철학의 깊이를 마주할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 무장애 기증특별전 ‘巖巖汪汪: 만 길 벽, 천 이랑 바다’ 전시 모습. 2025.1.2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경기도박물관 무장애 기증특별전 ‘巖巖汪汪: 만 길 벽, 천 이랑 바다’ 전시 모습. 2025.1.2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지난해 한 차례 무장애 전시를 열었던 경험을 되살려 올해는 다르게 접근하고자 했다는 것이 경기도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우선 전시장의 유물을 상당수 빼고 12점으로 간결하게 재구성했다. 정보를 최소한으로 하며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화려한 색이나 장식도 배제하고 심플하게 공간을 구성했다. 유니버셜 디자인 기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동 휠체어 등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폭과 발달 장애인을 고려한 공간 구획까지 섬세하게 따졌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은 결국 유물이다. 유물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가 무장애 전시에서도 핵심이다”며 “잘 보이지 않아도 내가 중요한 것들 사이에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경기도박물관 무장애 기증특별전 ‘巖巖汪汪: 만 길 벽, 천 이랑 바다’ 전시 모습. 2025.1.2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경기도박물관 무장애 기증특별전 ‘巖巖汪汪: 만 길 벽, 천 이랑 바다’ 전시 모습. 2025.1.2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1부에서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송시열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그의 후계자인 홍직필의 기증품을 통해 경기 사대부의 학문과 삶을 조명한다. 전시된 송시열의 초상화는 비교적 학계에서 늦게 발견된 초상이지만, 상태가 굉장히 좋은 데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이야기가 이뤄질 훌륭한 유물이다.

2부에서는 경기도 지역 명문가들의 기증 유물로 경기 사대부의 철학과 삶을 엿볼 수 있는데, 성재 허전의 초상, 김확의 무덤에서 출토된 심의, 유한갈의 지석 등이 주요 유물이다. 심의를 갖추고 의자에 앉아 있는 허전의 모습을 담은 초상은 탁자 위에 놓인 ‘주자대전’을 통해 그의 인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된 심의는 사대부의 일상복으로 유학자의 상징이기도 하며, 김확의 무덤 안에서 물이 들어 청색을 띠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은 지석 역시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전시된 유한갈과 인동 장씨의 지석은 모두 형조참의를 역임한 유한준이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유한지가 썼다.

전시실에 마련된 모니터에는 유물의 이미지가 높은 해상도로 제공된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 약시의 비중이 높은 만큼 모니터를 통해 보고 싶은 부분을 확대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어 영상은 물론 QR코드를 통해 음성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껴묻거리 도자기를 재현해 질감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