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구도심 침체된 전자제품 판매점
1980년대 전성기 누린 가게 그대로 재현
자세히 살피면 각양각색 이야기 꽃 피워
스산한 풍경에 발걸음 재촉했다면
이젠 천천히 거닐며 기억을 느끼길
인천 중구 인현동 인천시교육청 학생교육문화회관 옆에 일자로 늘어선 상가들 간판에는 유독 ‘전기’ ‘전자’ 같은 이름이 많습니다. ‘용산전자상가’보다 더 먼저 생겨 한때 인천 최대 규모로 호황을 누렸던 ‘동인천 전자상가’입니다.
지난 2일 오후 4시께 찾은 동인천 전자상가와 그 주변은 무척 한산했습니다. 과거엔 공구, 기계, 전기, 전자제품을 사거나 고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합니다. 지금은 손님이 줄고 상당수 가게가 문을 닫거나 이전하면서 침체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동인천 전자상가 근처에 지난해 7월 문을 연 독립서점 겸 작은 미술관 ‘시와 예술’ 안에는 또 다른 동인천 전자상가가 영업 중입니다. 바로 인천시립박물관 도시 아카이브 조사 ‘동인천 전자상가, 기억을 담다’ 특별 전시가 개최 중입니다.
서점 안 전시 공간에는 ‘일심특수조명전기’ ‘아주전자’ ‘새한일전기’ ‘인성베아링’ ‘하나음향’ ‘동원전자’ 등 동인천 전자상가의 가게들을 재현했습니다. 그 가게에서 무엇을 팔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던 가게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네요. 평화전기 코너에는 황금빛 코일이, 하나음향 코너에는 그 옛날 라디오를 조립할 때 봤던 회로기판이, IC전자 코너에는 이젠 보기 드문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가 전시돼 있습니다. 어떤 이는 추억을 떠올릴 수도, 또 어떤 젊은이들에겐 신기한 풍경일 수도 있겠습니다.
“1985년 직원 시절에는 공구상가가 동인천이 유일하여서 점심을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항상 위장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새한일전기)
영상과 함께 이 같은 가게들의 이야기도 담겼습니다.
“지금 나는 나이가 있지만 그냥 노느니 소일거리로 이렇게 나와요. 또 오래된 사람들이 가끔 와요. 한 20~30년 된 사람들이 들러서 대륙전자가 어디 이사갔나, 사장님 어디 가셨나 하고 가끔 와요. 반갑지. 만남의 광장이라고 봐야지.”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우리는 그걸 뜯어서 다 이렇게 일일이 확인해 보는 거야. 이게 어떤 원리로 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게 어떤 원리로 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러니까 첩보를 수집하는 거야, 말하자면. ‘아, 얘네들이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러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 떠오르고 이제 그렇게 되는 거지.”
한국전쟁이 끝나고 옛 축현학교(현 인천시교육청 학생교육문화회관) 돌담 아래 공구와 전기,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작은 노점과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부대와 외항선에서 흘러나온 전자제품이나 공구를 팔았습니다. 그 시절 ‘얼리 어답터들의 성지’였겠네요.
1970년대 후반 축현학교 맞은편 양조장이 폐업하고 그 자리에 전자상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확장했습니다. 당시 건물 내부를 약 10평(33㎡) 단위로 나눠 분할 매매했고, 그 흔적도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한편으로는 1978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제59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준비에 따른 시가지 정비로 인해 도로변 작은 점포들이 철거되기도 했습니다. 공구를 취급하던 이들 가게들은 숭의동으로 이전해 숭의공구상가를 조성했습니다.
구도심이 쇠락하면서 동인천 전자상가도 예전의 활기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천 최초·최대 전자상가의 명맥을 잇는 사람들이 머물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전엔 조금은 낡고 스산한 분위기 탓에 발걸음을 재촉했던 분이라면, 이번 전시를 통해 앞으론 천천히 전자상가 주변을 거닐며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가게들을 살피는 것도 좋겠습니다.
왜 서점에서 전시를 꾸렸을까요? 인천시립박물관 관계자는 “동인천 전자상가 인근에서 전시를 여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고, 조사 과정에서 인근에 있는 독립서점 ‘시와예술’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시와예술’은 시집과 예술 분야 서적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점을 둘러보는 건 또 다른 재미입니다. 전시는 오는 12일까지입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