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3일 한남동, ‘내란·탄핵 정국 축소판’

‘12·3 비상계엄 사태’를 벌여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지난 3일 진행됐습니다. 지난달 31일 공수처가 법원으로부터 체포·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지 나흘만입니다.

체포영장의 유효기간은 일주일. 내란 수사의 중대성을 고려했을 때 빠른 수사가 요구됐지만 영장 집행 시기에 대한 소문만 무성할 뿐 공수처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공수처가 멈춰있는 동안 시민들은 한남동 관저로 모였습니다.

지난 1일 윤 대통령은 “실시간 생중계로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는 관저 인근에 모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격앙시켰습니다. 다음날 2일 지지자들은 공수처가 관저에 진입할 수 없도록 스크럼을 짜고 도로에 드러누웠습니다. 경찰의 해산명령 끝에 강제 해산됐지만 체포영장 집행이 예고된 3일 관저 인근에 감돌 긴장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띠로 무장한 체포반대 지지자들

집행 전날부터 현장 지킨 집회 인원

공수처-경호처 이어 양 진영간 대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3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가 경찰 버스 등으로 일부 통제되고 있다. 2025.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3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가 경찰 버스 등으로 일부 통제되고 있다. 2025.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관계자들이 청사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2025.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관계자들이 청사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2025.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3일 오전 6시 10분께 찾은 한남동 관저 인근은 일촉즉발이었습니다. 수많은 경찰 인력이 요소마다 배치됐고, 관저로 이어지는 보행로는 통제됐습니다. 경찰 기동대 버스는 이중으로 세워져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관저 정문 바로 옆에 있는 한남초등학교 앞에는 이미 윤 대통령의 체포를 반대하는 지지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체포를 막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자리를 지켰습니다.

각자 흩어져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 뉴스를 접하던 이들은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정부과천청사를 출발했다는 소식을 보자 모였습니다. 공수처 차량이 한남동 관저 인근에 진입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서로 팔짱을 끼고 인간 띠도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돌발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반대하는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진행고 있다. 2025.1.3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반대하는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진행고 있다. 2025.1.3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이날 오전 7시 21분께 관저 앞에 도착한 공수처의 영장 집행은 진입부터 난관이었습니다. 관저 건너편 보행로에서 주차된 경찰 기동대 차량 간 틈으로 지켜본 공수처 관계자들은 관저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41분 간 대통령경호처와 대치했습니다. 관저 입구를 넘었더라도 전해지는 소식은 연신 군인·대통령경호처 등과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윤 대통령의 체포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날 오전 6시부터윤 대통령 지지 단체들은 관저 인근에 모여 윤 대통령 체포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는데 집회장소에 가기 위해선 한강진역 인근에 있는 육교를 건너야 합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늘어나자 육교를 건너기 위한 줄은 80m 가량 늘어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통행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육교에서 흔들거림도 느껴졌습니다.

양측의 충돌도 있었습니다. 현장 리포팅을 준비하던 MBC 카메라감독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가 확성기를 통해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윤 대통령 체포를 찬성하는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MBC는 우리가 지킨다”며 윤 대통령 지지자에게 맞불을 놓은 겁니다. 서로 거친 욕설이 오갔고, 결국 물리적 접촉이 생기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싸움을 제지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3일 오후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중지된 후 민주노총 집회 참석자들이 한남동 일대를 행진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2025.1.3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3일 오후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중지된 후 민주노총 집회 참석자들이 한남동 일대를 행진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2025.1.3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3일 오후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한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 모습. 2025.1.3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3일 오후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한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 모습. 2025.1.3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

무위에 그친 영장집행, 반격 노리는 공수처

5시간 30분 대치 끝 관저 진입 실패

경호처장 등 입건… “불법조치” 반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공수처와 이를 막으려는 대통령경호처의 지난한 대치는 공수처가 관저에 진입한 지 5시간 30분만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불법영장의 당연한 결과”라며 환호했고, 윤 대통령의 체포를 바라던 시민들은 “사법절차를 지키지 않는 비겁한 행태”라며 분노와 허탈함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되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공수처가 함께하는 공조수사본부는 대통령경호처의 박종준 처장과 김성훈 차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하고, 4일까지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자존심을 구긴 공수처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공수처는 현장에서의 불상사를 최소화 하기 위해 영장 집행을 중지한 것임을 설명하며, 경호처 지휘감독자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경호처가 체포 영장 집행에 응하도록 명령할 것을 강력히 요구할 예정입니다.

이에 경호처는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공수처와 국수본에게 “불법 행위를 자행한 책임자와 관련자에 대해 법적 조치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다가 경호처의 반발로 집행을 중지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관계자들이 나오고 있다. 2025.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다가 경호처의 반발로 집행을 중지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관계자들이 나오고 있다. 2025.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혼란에 빠트린 尹, 결자해지해야

진영 간 갈등 가속화… 영장 시한 6일까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진행된 3일 한남동은 혼란한 대한민국의 내란·탄핵 정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소판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후안무치는 여전했고, 그를 체포하려는 수사기관과 저지하려는 경호처의 대치는 내란 수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과 같이 답답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정치 진영을 둔 갈등을 더욱 심화됐습니다. 싫어하는 것을 넘어 증오가 한남동을 가득 채웠습니다.

대한민국을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윤 대통령 스스로 져야할 것입니다. 비상계엄이 내란이 아니며 대통령이 가진 정당한 헌법적 권리라는 주장에 숨지 말아야 합니다. 당당하다면 내란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피해선 안 됩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시한은 오는 6일까지입니다. 공수처가 재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설지,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강공으로 대응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란·탄핵 사태의 이른 종식이 우리 사회의 혼란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결자해지하고, 한남동을 내란·탄핵 정국의 축소판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