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지휘봉의 무게…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음악은 내 운명”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 상처 많았지만 ‘리베라’ 공고에 잠 못이뤄
단원들의 성향 각각 기록해 파악, 연습 줄이거나 편곡 없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연습
존경스럽고 배울 점 많아… 음악으로 마음 연결하고 사회적 편견 해소 하는 게 목표
“첫 합주 연습 때 느꼈어요. ‘나만 멈춰 있었고, 이 친구들은 계속 성장했구나’ 느껴지던 순간부터 지휘봉이 어찌나 무겁던지요.” 박성호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 초대 지휘자는 지난 3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휘를 맡게 된 소감을 묻자 “지금도 사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는 전국 최초 인재 양성형 장애인 오케스트라로, 발달장애·시각장애·청각장애를 가진 단원 40명으로 구성됐다. 바이올린 18명, 비올라 4명, 첼로 5명, 콘트라베이스 1명, 플루트 2명, 오보에 2명, 클라리넷 2명, 호른 2명, 트럼펫 1명, 튜바 1명, 타악기 2명 등으로 이뤄진 오케스트라다.
경기도가 매월 연습비, 교통비 등 연습수당을 지급하고 전문 연주자의 집중 지도를 지원하는 인재 양성형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초대 지휘자 공모에만 31명이 참여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초대 지휘자로 선정된 박성호 지휘자는 사실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 경력자다. 그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여 동안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를 맡은 적 있다. 그런데 그는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 경험이 있었기에,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선뜻 나서기가 망설여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어느샌가 지휘자 모집 공고에 지원해 면접을 보고 지휘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국내 최초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장애인과 상관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맞닥뜨리며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됐었습니다. 그렇게 애써 장애인 관련 이야기들을 회피하며 무려 11년이 지났는데,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공고를 보고 나서는 머리로는 지우고 싶은데 심장이 뛰고 잠이 안오더라고요. 그렇게 결국 지원하게 됐습니다.”
박 지휘자가 처음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발을 들이게 된 건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라고 한다. 지인의 권유로 시작했고, “(발달장애인에 대해) 알았다면 절대 안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에 그는 점점 스며들었고,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게 됐다.
“사회복지사분들 도움을 받아 장애에 대한 이론적인 것들을 배우고, 중요한 건 실전에서 단원들마다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에서 출발했죠. 단원 한 명 한 명이 자폐 성향이 더 강한지, 정신지체가 더 심한지, 이럴 땐 엄하게 혼내는게 더 좋은지, 혼내면 더 숨으니까 끌어내기 위한 대화와 설득을 해야되는 건지 등을 알아갔어요.”
그러면서 박 지휘자는 보호자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저는 (단원들을) 여기 합주할 때밖에 못 보는데, 일상생활에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호자들에게) 들으려고 해요. 그리고 한 명 한 명의 성향을 기록해둡니다. 이렇게 단원들 성향을 파악하고 나니 더이상 (아이들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겁이 나지 않더군요.”
물론 단원들과의 소통만큼이나 중요한 박 지휘자만의 엄격한 원칙도 있다. 그는 비장애인과 같은 연주 시간으로, 같은 악보로 공연하게끔 연습한다고 강조했다.
“연습할 때 가급적이면 보호자분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환경에 익숙해지면 그때 들어오시게끔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집중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연습시간을 줄이거나, (쉽게) 편곡한 악보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비장애인 오케스트라와 똑같이 3시간 연습하도록 해요.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경기아트센터에서 합주 연습을 한다. 지난 3일에도 어김없이 열린 합주 연습에서 박 지휘자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친구같은 모습으로 단원들의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연습을 이끌었다.
수업 시작 전, 악기를 이리저리 만지고 옆에 앉은 단원들과 서로 담소도 나누는 등 어수선하던 이들은 음악이 시작되자 한순간 눈빛이 돌변했다. 그들의 눈빛은 바쁘게 움직이며 박 지휘자의 손을 쫓았다. 잠시 음악이 멈춘 순간엔 다시 악기를 만지고, 잡담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지휘봉이 움직이면 모든 단원들은 음악에 집중했다.
“100이면 100 단원들에게 배우는게 많습니다. 하나의 행동을 배우는 데에 몇 년 씩 걸리는 아이들이, 악기를 잡고 몸에 고정하고 연주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요. 존경할만한 단원들 사이에 둘러싸여 지휘를 하는 제가 어른인척 한다는 느낌을 순간순간 받아요.”
박 지휘자는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 2회차인만큼 이번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처음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맡았을 당시의) 물불 안가리던 열정과 경험에 지금의 노련함을 더해 그때보다는 좀 더 끌려다니거나 휩쓸리지 않고, 오직 장애인들을 돕는 지휘자로 기억에 남고싶습니다.”
지난 달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창단한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는 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첫 번째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창단식은 원래 임명장 수여 정도로만 끝나는 자리였는데, 이미 단원들 연주 실력이 뛰어나 창단식에서도 공연을 보여준 바람에 정기연주회 공연은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박 지휘자는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저는 장애인들과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란 음악적으로 비트를 주고 음악을 해석하고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며, 그들에게 따뜻한 가족도 돼야 하고, 때론 무서운 선생님도 돼야 하며, 유치원선생님처럼 친절해야 하며,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경기 리베라 오케스트라를 통해 구성원 모두에게 사회적 통합의 기회가 제공되길 바랍니다.”
■박성호 지휘자는?
- 학력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졸업
▲Chopin University of Music in Warszawa (폴란드 국립 쇼팽음악대학교 지휘과 졸업)
▲Filharmonia Gorzowska International Conducting Master Class Diploma. (고주프 필하모니아 국제지휘 마스터클래스 디플로마)
- 활동내용
▲폴란드 Gorzowska Filharmonia 시립교향악단 지휘
▲KUKO(한국대학생연합 오케스트라) 지휘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국내 최초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초대 상임지휘자 역임(2006~2013)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2002~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기악과 겸임교수
/구민주·이영지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