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 원작… 언 마음 녹여줄 미야자와 겐지 16편 모음집
작가 삶 끝자락에 쓰여 ‘질병·소외’ 등 당시 사회상 반영
그림 그리듯 풀어내는 문체, 동화 탈 쓰고 새긴 깊은 여운
■ 은하철도의 밤┃미야자와 겐지 지음. 정수윤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 372쪽. 1만6천800원
“작고 아름다운 열차는 하늘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곳, 은하수와 삼각점이 푸르스름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시공간 속을 어디까지고 하염없이 달려나갔습니다.” (‘은하철도의 밤’ 중)
오랫동안 부재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아픈 어머니를 보살피며 집을 이끌어가는 소년 조반니.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려 수업이 끝나면 인쇄소에서 일을 하는 아이에게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마을에서 은하축제가 열리는 밤, 쓸쓸함을 느끼며 별 하늘만 바라보던 조반니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고, 곧 자신이 야간열차에 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함께 열차를 탄 친구 캄파넬라와 함께 은하수를 따라 북십자성, 백조자리, 쌍둥이자리, 전갈자리 등을 여행한다.
우리에게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은하철도의 밤’은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사후인 1934년에 발표됐다. 그의 삶 끝자락에 쓰인 작품은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돼 빈곤과 질병, 소외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상황에서도 조반니는 은하철도를 타고 여러 곳을 여행하며 현실과 맞설 용기를 얻게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옳은 일을 하며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미야자와 겐지가 그린 아름다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미야자와 겐지는 가업을 이어받는 대신 불안정한 작가의 삶을 선택했다. 생전 400여 편의 시와 100여 편의 동화를 썼음에도 세상에 나온 책은 두 권뿐이었다. 글을 써서 받은 돈도 고작 5엔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농민들의 삶에 뛰어들어 세계 대전과 자연재해, 경제 공황 등 나라 안팎으로 고통받는 소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작은 것에도 온 마음을 기울이려 노력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들은 그런 그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그만의 언어로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작가는 머리나 마음속에 떠오른 순간의 인상을 마치 그림 그리듯 풀어내며 고유의 글쓰기 방식을 보여준다.
내린 눈이 얼어붙은 달밤에 열린 환등회를 배경으로 한 ‘눈길 건너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가을의 모습이 담긴 ‘은행나무 열매’에서는 계절에 따른 고요하고 맑은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또 작가는 ‘오쓰벨과 코끼리’, ‘고양이 사무소’, ‘주문이 많은 요리점’ 등 자연을 경시하거나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모습을 풍자하면서도 ‘겐주 공원 숲’, ‘첼로 켜는 고슈’, ‘나메토코산의 곰’ 이야기처럼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작은 이야기 조각이 마침내 당신의 맑고 진정한 양식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던 그의 말처럼 이번 책 속에 담긴 16편의 동화는 독자들에게 따듯한 새해 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