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식 영상의 허전함 채울 ‘묵직함’
해석과 함께 ‘새로운 것 논쟁’ 향유하길
■ 역사와 사회적 상상에 관한 대화┃폴 리쾨르,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지음. 김한식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20쪽. 1만2천원
짧은 형태의 쇼츠가 범람하는 시대 한편에서는 ‘얕고 넓은 지식’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들이 활황을 맞이하고 있다. 진행자들은 역사,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인문학 자료를 구독자의 수요에 맞게 다듬어 간편한 밀키트식으로 선보인다.
시청자가 직접 읽고 이해할 필요 없이 영상을 보기만 해도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듯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어딘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영상이 아닌 책 속에 답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독하기 까다롭더라도 말이다.
신간 ‘역사와 사회적 상상에 관한 대화’는 40년 전인 1985년,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폴 리쾨르(1913~2005)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1922~1997)가 라디오에서 나눈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두 철학자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뿌리 깊은 의문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펼친다. 리쾨르는 ‘대화의 철학자’라고 불리며 해석학·역사학·신학 등을 폭넓게 연구한 학자다. 카스토리아디스는 ‘정신의 거인’이라 불리며 관료제적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경제학과 정신분석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책에서 두 철학자는 쉼 없이 ‘핑퐁 대화’를 주고받는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묵직한 철학적 사유로 가득 차 있다.
리쾨르와 카스토리아디스는 ‘역사적 창조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카스토리아디스는 기존의 질서 속에서 형상화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들을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리쾨르는 ‘창조’보다는 ‘생산’이라는 용어가 정확하다며 반박한다. 리쾨르는 인간이 새롭게 생산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다소 심오하고 난해한 내용이지만, 천천히 책을 읽으며 김한식 교수의 ‘옮긴이 해제’를 참고하다 보면 사유의 폭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