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한강로 심야시간에 공사로 교통체증

담당 공무원, 좌표 찍혀 악성민원 시달려

서른일곱 청년 떠난 이후 변해가는 사회

이해와 소통의 길을 내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김포시 고촌읍 신곡육교에서 바라본 김포한강로 강화방면 전경. 이 도로에서 진행된 포트홀 보수공사로 김포 공무원 사건이 시작됐지만, 지금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차량이 수월하게 오가고 있다. 2025.1.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김포시 고촌읍 신곡육교에서 바라본 김포한강로 강화방면 전경. 이 도로에서 진행된 포트홀 보수공사로 김포 공무원 사건이 시작됐지만, 지금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차량이 수월하게 오가고 있다. 2025.1.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김포시 고촌읍 김포한강로. 휴일을 앞두고 모두가 들뜬 기분으로 귀가하고 있었을 2024년 2월 29일. 한강 옆으로 곧게 뻗은 그 도로에서 그때,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추운 밤이었다. 차량정체 우려로 심야시간대 공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겨우내 이어진 민원을 매듭짓기 위해 담당 공무원은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눈을 왜 제때 치우지 않느냐는 항의 민원과 이에 따른 제설작업, 예방적 제설제 살포로 인한 포트홀 발생과 이에 따른 항의 폭주, 포트홀을 메우기 위한 도로공사와 이에 따른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민원은 ‘공사 담당 공무원’이라는 공격대상을 찾아내 좌표를 찍었고, 불특정 다수가 한풀이하듯 저주를 쏟아냈다.

따지고 보면, 이후에도 모든 일이 꼬리를 물었다.

A는 고인이 근무했던 부서에 새로 발령받은 동료다. 지난해 3월 5일 청년 공무원이 숨지고 얼마 후 김포시는 소속부서 구성원의 충격을 고려해 전원 타 부서로 이동시켰다. A는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 자원했다. 도로관리 업무만 네 번째였다.

행정 일선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을 것 같다는 비판적 시각으로 애초 만났던 건데 A는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공무원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도 큰 변화였다”고 했다.

지난 6일 시청사에서 만난 A는 다른 부서로 한 번 더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A는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그 부서에 자원했던 계기를 밝혔다.

청년 공무원이 숨지고 얼마 후 김포시는 소속부서 구성원의 충격을 고려해 전원 타 부서로 이동시켰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동료들의 사명감으로 채워졌다. 2025.1.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청년 공무원이 숨지고 얼마 후 김포시는 소속부서 구성원의 충격을 고려해 전원 타 부서로 이동시켰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동료들의 사명감으로 채워졌다. 2025.1.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A는 “조직이나 사회가 어느 순간 변하진 않겠지만 공무원 개개인의 마음에 흔적이 남으면서 충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아무것도 아닌 나조차 행동하는 사람이 됐으니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고, 주정차 단속이나 환경, 징수 등 격렬한 민원과 맞닥뜨리는 동료들의 심정을 더 깊이 헤아리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A는 “사건 이후에도 야간 도로공사가 많았는데 민원은 없었다”며 “희생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 희생이 던진 메시지를 계기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시민의식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변화를 체감하는 건 김포만이 아니다. 민홍철 과천시 열린민원과 주무관은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민원인들이 화를 내거나 업무를 방해해도 무조건 참고 응대했다. 지금은 시간이 지체되면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생각으로 좀 더 단호한 마음가짐이 생겼다”며 “악성민원 발생 시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인식도 공무원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정부와 지자체 지침이 있다는 걸 다수가 인지하고 있고 ‘이런 정도면 이제 이렇게 대응해도 돼’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시청 홈페이지에서 공무원 신상정보를 비공개 조치한 데 대해서도 “시민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해해 주고 크게 불평을 안 한다”며 “이름을 왜 지우냐, 너희 편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등 항의를 제기할 걸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공무원 사망사건 이후 언론보도가 많이 나와 경각심을 더 갖는 것 같다”고 했다.

김포 공무원 사망사건은 ‘민원 관련 3법’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악성민원 방지를 위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 개정안과 부당·과도한 정보공개 청구를 담당 공무원 권한으로 종결할 수 있게 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다.

시행령부터 공포된 민원처리법 개정안은 ‘민원통화 전체 자동녹음’과 ‘장시간 통화·면담에 대한 종결’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현장 공무원들의 숙원이었다. 폭언·폭행을 가하거나 무기·흉기 등을 소지한 민원인을 퇴거 조치할 근거도 마련하고 위법행위 발생 때 기관 차원의 고발을 의무화했다.

개정안은 또 민원내용에 욕설·협박·모욕·성희롱 등이 있을 때 담당자가 종결 처리할 근거를 담았다. 3회 이상 반복민원은 그 목적과 의도를 고려해 종결토록 하고 전자민원을 비정상적으로 반복 청구하는 민원인은 일시적으로 이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정보공개법 개정안에는 ‘부당하거나 과도한 정보공개청구’의 판단기준과 종결 처리의 근거를 담았다. 이전까지는 부당·과도한 청구도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아울러 똑같은 정보공개청구를 타 기관으로부터 재차 이송받은 경우에도 종결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하고, 반복청구에 대한 통지는 생략하도록 했다.

국가·지방공무원법상 ‘공무원 보수·수당 등에 관한 규정’도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1월3일자로 시행됐다. 민원·재난 대응 등 기피 업무에 신규·저연차 공무원을 주로 배치하는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장기 재직자를 우선 배치하고, 민원담당 공무원이 민원인의 폭언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겪어 안정이 필요한 경우 공무상 요양 승인 이전일지라도 필수보직기간 내 전보를 허용하도록 했다.

민원 전체 자동 녹음·장시간 통화땐 종결 가능

부당·과도한 청구 처리 없앤 개정안 국회 제출

기피 업무에 신규·저연차 직원 배치 관행 방지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들도 자구책 마련 확산

김포 공무원 사건에서 비롯된 가장 큰 변화는 전국에 들불처럼 번진 자구책이다. 정부 부처는 물론 광역·기초 지자체 곳곳에서 홈페이지의 공무원 신상정보를 비공개 조치하고 모의훈련, 장비설치·보급, 교육, 치료 등 자체적인 대책을 추진했다. 사건 이후 현재까지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시·군·구) 가운데 신상정보를 비공개한 사례는 213곳, 자구책 시행 사례는 179곳에 달한다. → 그래픽 참조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공무원들이 고통을 호소할 창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정부가 사상 첫 악성민원TF를 가동하고 국민권익위가 실태조사에 나선 게 그중 하나다. 악성민원을 방치함으로 인한 인력공백과 행정서비스 질 저하가 정부에 대한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김세진 한국행정연구원 박사는 “민원처리법 개정안은 이를 시행할 매뉴얼 보급과 교육을 지속해야 한다. 악성민원 사례를 구체적으로 모아서 배포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정보공개법은 시민단체의 우려가 있지만 대한민국 공무원들에게 자정기능이 있기 때문에 순기능으로 잘 작동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도는 많이 정비됐고 이제부터는 실행 과정이 중요하다. 특히 홍보가 중요한데 정부와 지자체가 새로운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중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뒤늦게 공직에 입문한 청년의 나이는 서른일곱이었다. 김포시청 공무원이었다. 자랑스럽고 소중한 아들이자 성실하고 믿음직한 동료였다. 그날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고, 공직사회에 이해와 소통의 길이 열리고 있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취재팀

※취재팀=김우성(지역사회부)·황성규·조수현(이상 사회부)·변민철기자(인천본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