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일커피의 10년, 그리고 새로운 도전

 

2015년 창업, 군포 대표 브랜드로 거듭다

업무 폭증에 지난해 말 카페 영업 종료

고심 끝 새로운 도전 위해 리뉴얼 오픈 결정

‘드립에센스’ 이용한 커피, 식어도 맛 변화 적어

점심, 저녁 식사도 업무의 연장선상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아주 가끔은 평일에도 ‘혼밥’을 한다. 업무에 치여 식사 시간을 놓쳤을 때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물론, 마음 속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도 무리하게 식사 약속을 잡지 않은 채 홀로 길을 나선다. 보통은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허기도, 허전한 마음도 채울 수 있는 카페로 향한다. 그럼에도 아무 곳이나 가서 소중한 식사 시간을 허비할 순 없는 일. 커피가 맛있고, 샌드위치 같은 식사용 빵도 맛있어야 한다. 간단해보여도 요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다. 제법 만족스러운 곳을 발견하면 몰래 마음 속으로 별표를 그린다.

조상일커피는 그런 곳이었다. 군포시 발령 초기, 한세대학교 인근 식당에 왔다가 우연히 카페 앞을 지나게 됐는데 이름 석자를 앞에 내건 모습에 자연스레 눈길이 향했다.

군포 조상일커피 카페 본점에서 만난 조상일 대표. 202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군포 조상일커피 카페 본점에서 만난 조상일 대표. 202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잠봉 베이글 반쪽과 아메리카노로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고는 대번에 마음 속 별표를 그린 후, 종종 카페 2층 창가 쪽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냈다. 커피 드립백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어 의미는 담뿍 담으면서 다소 무겁지 않게 선물하고 싶을 때 구매하기에도 좋았다.

급하게 선물이 필요해 드립백 패키지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카페 본점의 영업 시간은 끝났던 어느 날, 금정역 인근 조상일커피 원두상점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이곳 역시 영업 시간은 끝난 상태였지만 늦은 시간까지 업무 중이던 조상일 대표와 운 좋게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저희 카페 본점은 곧 정리할거에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 그리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본점엔 ‘12월 28일까지만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그러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재공지가 이뤄졌다. ‘많은 고민과 준비 끝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재오픈 시점은 2월 1일. 더 빨라질 수도 있단다. 잠시 불이 꺼진 1월의 카페에서 조상일 대표를 만났다. 매우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첫눈에 반한 아내 덕에 알게 된 커피 ‘10년의 도전’

8살 때 군포로 이사 온 조 대표는 줄곧 군포에서 살았다.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첫 눈에 반한 아내 덕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를 위해 커피를 한 잔씩 내리다 커피가 점점 알고 싶어졌고, 2015년 창업에까지 이르렀다. 더치커피가 막 유행을 타던 무렵이어서 더치커피로 시작했지만, 따뜻하게 하거나 라떼로 마시면 향이나 맛이 약해지는 점이 고민이었다. 그러다 더치커피 붐이 사그라들며 사업이 위축되자, 원두 납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스페셜티 원두를 사용해 커피 맛이 매우 좋았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1년 가까이 납품을 거의 하지 못 했다. 차가 없어 자전거로 군포지역 카페를 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제시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커피 맛은 포기할 수 없으니 좀 더 저렴한 원두로도 어느 정도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연구를 거듭해 맛과 가격을 모두 잡을 만한 블렌딩 제품을 만들어도 납품이 확연히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은 커피 맛 잘 몰라”라며 저렴한 원두만 찾는 카페들이 적지 않았다.

리뉴얼 오픈을 준비 중인 한세대학교 앞 조상일커피 카페 본점. 202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리뉴얼 오픈을 준비 중인 한세대학교 앞 조상일커피 카페 본점. 202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발상을 역전하기로 했다. 군포시민들의 커피 수준을 끌어올려서 카페 사장님들이 좋은 커피를 찾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겠다. 2016년 재능기부 형태로 커피 바리스타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배출한 지역 내 바리스타만 250명 가까이다. 수업을 하려다보니 조 대표 스스로도 커피를 더 잘 알아야 했다. 그가 만드는 커피 맛 역시 나날이 좋아졌다. 2023년 엘살바도르 커피 브루잉대회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였다.

어느새 ‘조상일커피’ 브랜드가 지역 안팎에 알려지며 활동 범위도 한층 넓어졌다. 지역 내 다양한 분야의 사장님들과 ‘히어로마켓’이라는 연합 플리마켓을 여는가 하면 지역 대표 축제인 철쭉축제에도 지난해까지 3년 간 참가했다. 드립백 제품이 고향사랑기부 군포시 답례품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원두 상점에 이어 2023년 한세대 앞에 카페를 열며 군포 대표 커피 브랜드로서의 명성이 한층 단단해졌다.

뭐 하나 대충 할 수가 없었다. 조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도, 사업도, 강연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었다.” 커피는 당연히 맛있어야 했고, 카페에서 파는 잠봉 베이글에조차 수비드한 버크셔K 잠봉을 고집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하루에 14시간씩 주 7일을 일했어요. 집에서도 일하고, 카페에서도 일하고, 금정 쪽 원두상점에서도 일하고. 그러다 지난 11월에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육아를 해야하는 시간엔 일을 못 하니까, 그 못한 일을 새벽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한계가 왔어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 시기가 왔다고 봐서 카페를 접으려고 한 거죠.”

그를 붙잡은 건 소비자들의 마음이었다. 카페 영업을 종료한다는 알림문이 붙자 “진짜 닫아요?”라는 문의가 쏟아졌다. “고된 수험 생활을 버티게 해줬는데 아쉬워요” “영업 시간이 단축됐어도 구매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카페에 얽힌 추억,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말하는 소비자들을 보며 조 대표는 커피를 만드는 이유를 되새겼다고 한다. “커피가 맛있는 음료라는 걸 알리고 싶고, 커피를 마시는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핵심 가치거든요. 고민이 깊어졌죠.”

재오픈 결심 ‘드립 에센스’ 새로운 도전

조상일 대표가 개발한 ‘드립에센스’ 샘플. 커피를 뜨거운 물로 오래 추출해, 원액에 뜨거운 물만 부어 마시면 맛있는 커피가 완성된다. 10년 경험과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게 조 대표 설명.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202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조상일 대표가 개발한 ‘드립에센스’ 샘플. 커피를 뜨거운 물로 오래 추출해, 원액에 뜨거운 물만 부어 마시면 맛있는 커피가 완성된다. 10년 경험과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게 조 대표 설명.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202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조 대표가 다시 카페 문을 열기로 결심한 것은 새로운 도전 때문이기도 하다. 더치커피에서 출발한 그는 이후 고품질의 생두를 로스팅하고 블렌딩해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왔다. 더치커피를 만들 때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도 맛있는 라떼를 만들기 어렵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거나 하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있었다. 문제를 보완하고 불편함을 개선하고 싶어 연구하고, 시도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게 ‘드립에센스’다.

더치커피와 핸드드립을 융합한 것인데, 더치커피처럼 찬 물이 아닌 뜨거운 물을 이용해 핸드드립보다 길게는 4배 가량 오랜 시간을 들여 추출한다. 이렇게 추출된 원액에 물만 부으면 맛있는 커피가 된다. 여느 카페처럼 고가의 기계가 없어도 되고 제조 시간도 확연히 줄일 수 있다.

조 대표는 “더치커피와 핸드드립 커피가 가진 약점을 모두 잡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다. 특허를 내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제가 연구해온 이론, 10년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총집약된 결과물이다. 오랜 기간 준비해왔고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아직 정식 출시된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실제로 시장에 내놓고 유의미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카페가 필요하다는 게 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커알못이 느낀 드립에센스 ‘식어도 맛 변화 없어’

드립에센스는 기존 드립백 제품으로 만날 수 있는 모닝 제스트, 미드데이 하모니, 애프터눈 볼드, 트와일라잇 엠버 4가지에 더해 커피와 티를 블렌딩한 버전2도 준비돼있다. 이날 마신 커피는 버전2 에센스로 만든 것이었는데, 무겁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밸런스가 좋았다. 블렌딩된 티의 영향으로 딸기 맛도 살짝 느껴지는 듯 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커알못이다. 느낌 그대로를 적었을 뿐이다) 특히 커피가 식어도 맛의 변화가 크지 않아, 마시기 좋았던 점이 인상 깊었다.

조상일커피에서 판매 중인 원두. 아침, 낮, 오후, 저녁시간대에 각각 즐기기 좋은 맛으로 구분하고 있다. /조상일커피 홈페이지 캡처
조상일커피에서 판매 중인 원두. 아침, 낮, 오후, 저녁시간대에 각각 즐기기 좋은 맛으로 구분하고 있다. /조상일커피 홈페이지 캡처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그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핵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조 대표는 리뉴얼한 카페에선 ‘생각 테마’ 카드를 더할 예정이다. 그는 “고민하고 연구하고 대회도 계속 나가면서 변화하는 커피 트렌드를 가장 먼저 접한 후 ‘이번 주 커피’ 등을 도입해 소비자들에 매주 다른 커피 맛을 보여드렸다.

커피와 어울리는 디저트나 음악을 페어링해 이 시간엔 이런 커피, 이런 디저트, 음악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제안하면서 보다 행복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왔다”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꽤 괜찮은 삶인데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을 바꿔주고 싶어서 리뉴얼된 카페에선 커피와 함께 ‘생각 테마’ 카드를 제공하려고 한다. 사실 커피라는 게 맛을 즐기기 위해 마시기도 하지만, 대체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마신다. 생각 테마 카드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함께 온 사람과 대화하며 우리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보다 의미가 있게끔 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이는 ‘커피 한 잔의 힘’

조상일커피 카페 본점에서 구매한 베이글 용기 내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마음을 푸근하게 해줬다.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조상일커피 카페 본점에서 구매한 베이글 용기 내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마음을 푸근하게 해줬다.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제품에도 ‘시간’이라는 철학을 더했다. 모닝 제스트, 미드데이 하모니, 애프터눈 볼드, 트와일라잇 엠버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아침과 낮, 오후, 저녁에 각각 즐길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조 대표는 “이를테면 모닝 제스트는 산미가 있지만 단맛과 고소한 맛이 받쳐줘서 비교적 아침에 마시기에 부드럽다. 평소에 산미를 싫어하는 분들이라도 아침에는 비교적 맛있게 여길 수 있다. 하루에도 시간대별로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스스로의 커피 취향에 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고 부연했다.

‘72시간 내에 분명 좋은 일이 생길거에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던 어느 날, 조상일커피 카페에 앉아 베이글 포장을 뜯었을 때 붙어있던 포스트잇의 문구가 뜻밖의 선물처럼 다가왔었다.

새해가 됐지만 한파와 불안, 혼란이 뒤섞여 몸과 마음이 한껏 얼어붙은 지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의외로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곧 다시 불이 켜질 조상일커피에서 그런 가능성을 느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