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험난하고 시간 필요해도… 예술가로서의 자립 돕고 싶다”

 

무카·밀알복지재단 컨소시엄으로 창단, 장애·비장애 막론 실력자 구성

감정 표현 어려운 탓 ‘항상 도전’… 청중 즐거울 때 가장 기쁘고 보람

권은경 대표, 개개인 브랜드 갖춘 음악인 성장 지원·자생 방안 개발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 로데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미라클 앙상블’ 바이올리니스트 박준형(왼쪽)과 비올리스트 김윤세(오른쪽) 단원이 권은경 무카(MUCA) 대표와 연주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 로데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미라클 앙상블’ 바이올리니스트 박준형(왼쪽)과 비올리스트 김윤세(오른쪽) 단원이 권은경 무카(MUCA) 대표와 연주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2023년 3월 장애예술인지원법 시행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창작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할 책무를 가진다. 장애예술인들의 활동 폭이 이전보다 더 넓어졌다는 의미다. 다양한 형태의 장애예술인단체가 싹트고 있기도 하다.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기업 ‘무카’(MUCA)가 2023년 12월 창단한 발달장애인 예술단 ‘미라클 앙상블’은 ‘장애예술인의 활발한 활동’을 넘어 ‘장애예술인으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지향한다.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목표로 둔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권은경(43) 무카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발달장애인 연주자의 경우, 아무리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40살을 기준으로 악보를 거꾸로 연주한다거나 협주가 어려워지는 등 퇴화가 시작됩니다. 발달장애인 연주자들이 그 이후에도 예술인으로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미라클 앙상블을 창단했습니다. 이들에게 조금 험난하고 시간이 필요한 도전이더라도 예술인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미라클 앙상블은 2023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예술단 창단 지원 사업에 선정돼 피아노 5중주단으로 창단했다. 지난해 1월27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에서 개최한 신년 음악회로 첫선을 보였다. 미라클 앙상블은 지난해 9월 무카와 밀알복지재단 컨소시엄으로 2024년 장애인 예술단 창단·운영 지원 사업에 선정돼 단원 4명이 추가로 입단하는 등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단원은 무카와 밀알복지재단에 공식 채용된 전문 음악인이다.

그리고 이들은 장애와 비장애를 막론하고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자다. 바이올린 2명,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플루트·피콜로, 클라리넷 2명으로 구성됐다. 미라클 앙상블에 합류하기 이전부터 쟁쟁한 연주 활동과 수상 경력을 이어왔다. 단원 개개인의 개성도 강하다. 마치 마블 영화의 영웅팀 ‘어벤져스’처럼 앙상블을 이룬 이들은 콘서트홀은 물론 서울의 대형 백화점부터 인천 옹진군 장봉도까지 곳곳을 누비며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라클 앙상블 단원들의 목표는 매한가지이다. 계속 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는 것, 그리고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어울려 연주하는 것. 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이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었다.

김윤세 단원.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김윤세 단원.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 로데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비올리스트 김윤세(24) 단원과 바이올리니스트 박준형(24) 단원을 권은경 대표와 함께 만났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캐주얼한 셔츠로 의상을 맞춰 입기로 했다는 김윤세, 박준형 단원은 미라클 앙상블 창단부터 함께했다. 전날 본 만화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장난을 치는 모습이 화기애애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니 동료 연주자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인 김윤세 단원은 음악가 집안이다. 그의 외삼촌은 정명훈 지휘자가 이끌었던 서울시립교향악단 비올라 수석이었던 대만 출신의 유명 비올리스트 홍웨이황이다. 외삼촌은 비올라를 연주하는 김윤세 단원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학교가 있는 예술의전당 일대에서 달리기를 즐긴다고 한다. 그에겐 일종의 ‘루틴’이다. 김윤세 단원의 이야기부터 천천히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바이올린을 선물 받아서 그때부터 레슨을 받으며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 성격이 비올라 연주에 더 적합하다는 음악 선생님 말씀을 듣고 중학교 2학년 때 비올라로 악기를 바꿨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끔 학교와 성당 행사 때 독주를 하거나 동생과 2중주 연주,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을 했었는데, 선생님들과 친구들로부터 박수와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연주가 재미있고 자신감이 생겨서 성인이 되면 전문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외삼촌이 연주하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소나타와 슈만의 피아노 4중주를 좋아합니다. 이 곡들은 매우 아름다워서 잘 연주하고 싶지만, 감정 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저에겐 항상 도전의 대상입니다. 모든 연주자들이 그렇듯 저도 열심히 준비한 만큼 연주가 만족스럽고 청중들이 공연을 보고 즐거워할 때가 가장 기쁘고 보람됩니다. 연주가 마음에 안 들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

박준형 단원.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박준형 단원.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역시 한예종 4학년인 박준형 단원은 한예종 석사 과정(전문사)에 일반 전형으로 합격했다. 장애예술인 사이에선 매우 이례적인 성과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오케스트라인 ‘뷰티플 마인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으며, 현재 이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실력과 포용력을 갖췄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다. 권은경 대표는 박준형 단원이 비장애인 콩쿠르 출전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준형 단원의 이야기도 천천히 들어봤다.

“어렸을 때 문화센터에서 단체 레슨으로 가볍게 바이올린을 배우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님 권유로 13살부터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현악기 소리가 두뇌 발달에 좋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연주 소리가 좋았고요. 제 연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인기도 많아질 것 같아서 전문 음악인을 꿈꾸게 됐습니다. 악기로 감정 표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슬픈 것, 행복한 것, 즐거운 것, 고요함 등 종류가 많아요. 다같이 모여서 연주할 때나 협주할 때, 해외에서 공연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 일본, 싱가포르, 필리핀, 독일, 태국에서 연주해봤습니다. 뷰티플 마인드 오케스트라에서요. 어려운 곡을 연습할 때가 제일 힘듭니다. 많이 연습할 땐 하루에 5~6시간도 연습합니다.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을 가장 좋아하고요. 장원영(아이돌그룹 ‘아이브’ 멤버)도 좋아합니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도 좋아해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선생님이 제 롤모델입니다. 정말 연주를 잘하고 테크닉도 좋아요. 미라클 앙상블 단원 동료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이날 만나지 못한 단원들과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이들 모두 음악인으로 사는 삶을 꿈꾸고 있으며, 그 꿈을 이뤄 가고 있다. 플루티스트 하유빈(25) 단원은 “학교 진학과 오디션과 콩쿠르에 도전하면서 저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꿈을 갖게 됐다”고 했고, 클라리네티스트 김경주(31) 단원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나도 대학에 가고 싶었다. 취미로 배우던 클라리넷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라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지원(23) 단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육청 영재원에 합격해 교육받고, 중학교 3학년 때 한예종 영재원에 합격하면서 더 꿈이 커졌다”며 “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공부하고 싶고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독주회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범순(28) 단원은 “저의 연주를 보고 듣고 기뻐해주시는 청중을 봤을 때, 저의 음악을 듣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해주실 때, 또 심한 장애를 갖고 계신 분들이 원초적으로 격하게 반응해주실 때 가장 보람되고 좋다”고 했다.

첼리스트 차지우(28) 단원은 “제 꿈은 저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첼리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했으며, 더블베이시스트 이준영(27) 단원은 “크리스마스 이브 때 보육원에서 연주했을 때 진심으로 좋아하며 춤추고 질문하던 아이들 모습이 선물 같았다”고 했다. 음악으로 꿈을 꾸는 이들의 순수한 대답이다.

권은경 대표.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권은경 대표. 2025.1.8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창단 1주년이 막 지난 미라클 앙상블은 새해에도 내달린다. 가까이는 오는 3월 8일과 9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신춘 음악회’에서 이들의 앙상블을 만끽할 수 있다. 미라클 앙상블은 올해 카미유 생상스 탄생 190주년을 맞아 ‘동물의 사육제’를 미디어아트와 함께 연주하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미라클 앙상블 ‘시즌 2’의 시작이라고 한다. 권은경 대표는 이같이 설명했다.

“단원들 개개인이 브랜드를 갖춘 음악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겠습니다. 이들이 다른 장애예술인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로도 성장하길 바랍니다. 장애인 예술단은 보통 기금이나 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되는데, 그게 끊기면 지속하기 어려워요. 음악인으로 자립하고 자생할 수 있는 특별한 방안을 개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지난달 29일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송년음악회를 개최한 미라클 앙상블 단원들. 왼쪽 두 번째 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준영, 하유빈, 김경주, 차지우, 김범순 단원, 권은경 대표, 강지원, 박준형, 김윤세 단원, 벤킴 예술감독. 2024.12.29 /무카 제공
지난달 29일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송년음악회를 개최한 미라클 앙상블 단원들. 왼쪽 두 번째 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준영, 하유빈, 김경주, 차지우, 김범순 단원, 권은경 대표, 강지원, 박준형, 김윤세 단원, 벤킴 예술감독. 2024.12.29 /무카 제공

■미라클 앙상블은?

▲2023년 12월 창단 (피아노 5중주)

▲2024년 9월 무카·밀알복지재단 컨소시엄, 장애인 예술단 창단·운영 지원 사업 선정 (단원 4명 추가)

▲2024년 1월 인천 엘림아트센터 창단 연주회 시작으로 현재까지 다수 연주회 개최

▲단원 - 박준형(바이올린), 강지원(바이올린), 김윤세(비올라), 차지우(첼로), 이준영(더블베이스), 하유빈(플루트·피콜로), 김경주(클라리넷), 김범순(클라리넷·베이스클라리넷)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