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진행중인 계엄’ 피해 한국서 지내는 이들

 

재한 미얀마인 쿠데타 이전보다 2배… 부평에 NUG 한국대표부 사무실

‘12·3 비상 시국 대처’ 자국이 꿈꾸는 미래·탄핵 집회도 참가 평화 연대

대사관서 군부세력 충성 각서 요구에 여권 효력 강제 취소 등 압박 가해

여권업무 수행 위해 임시정부 공식 인정 요청… 韓 법무부 “출국 유예”

늦은 밤 갑작스러운 계엄령 선포, 국회로 진입하는 중무장한 군인들과 혼란에 빠진 시민들…. 지난해 12월3일 대한민국과 지난 2021년 2월1일 미얀마의 밤은 많이 닮았다. 하지만 우리는 국회가 계엄령 선포 150분 만에 이를 해제했지만, 미얀마의 계엄령은 4년째 그대로 진행 중이다. 미얀마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12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교통광장에서 재한 미얀마인들이 미얀마 군부세력의 독재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2025.1.12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지난 12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교통광장에서 재한 미얀마인들이 미얀마 군부세력의 독재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2025.1.12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 군부 쿠데타 피해 한국으로 온 사람들

2021년 2월1일 새벽 미얀마 군부 세력은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총선 결과에 불복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2020년 실시한 총선이 부정하게 치러졌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대통령과 국가 고문,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시민들이 평화로운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저항하자, 군부 세력은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다. 이에 민주화 세력이 설립한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 민족 무장 세력이 협력해 미얀마 군부와 맞서 싸우고 있다.

지난 12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교통광장에서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가 미얀마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25.1.12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지난 12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교통광장에서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가 미얀마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25.1.12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군부 세력의 탄압을 피해 많은 미얀마인이 한국으로 향했다. 쿠데타 이전인 2021년 1월 2만5천여명이었던 재한 미얀마인의 수는 약 4년 사이 2배 이상 늘어 지난해 12월 기준 5만3천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자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미얀마 난민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인천 부평구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사원, 가게, 식당 등이 모여 있는 부평구를 재한 미얀마인들은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에 부평역 인근 교통광장에서 미얀마 군부 독재를 알리고 민주화운동을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NUG 한국대표부 사무실도 부평에 있다. NUG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응원을 보낸 한국에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대표부를 설립하고 특사를 임명했다.

인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얀나이툰 특사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표현인 세 손가락을 펼쳐 들고 있다. /경인일보DB
인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얀나이툰 특사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표현인 세 손가락을 펼쳐 들고 있다. /경인일보DB

■ 미얀마가 꿈꾸는 미래, ‘민주주의 선진국’ 한국

재한 미얀마인들은 12·3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4년 전 자국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얀나이툰(55) NUG 한국대표부 특사는 “미얀마가 꿈꾸는 미래는 한국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가 신속하게 국회로 향해 계엄령 해제를 이끌어낸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며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경험이 있어서 민주주의가 위협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재한 미얀마인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며 우리 국민들과 연대하고 있다. 매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아웅저헤이(27·인천 부평구)씨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미얀마와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인들이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보내준 응원과 관심에 보답하고 싶다”며 “혼란이 마무리되고 한국이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려 한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얀마인 단체 32개는 성명을 내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미얀마인으로서 한국 시민과 함께 미얀마와 아시아 전체의 민주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들의 힘을 모으면 한국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인천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관계자가 아웅산 수지 전 국가자문역의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경인일보DB
인천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관계자가 아웅산 수지 전 국가자문역의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경인일보DB

■ 미얀마로 쫓겨날 위기, “한국 정부의 도움 필요”

재한 미얀마인 6천여명은 현재 비자가 만료됐지만 정부의 인도적 조치 덕분에 한국에 살고 있다. 법무부는 2021년 미얀마인들에게 인도적 거주 비자(G-1-99)를 발급해 자국의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이들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게 했다. 소모뚜(50) NUG 한국대표부 사무처장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비자가 만료된 미얀마인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재한 미얀마인들의 여권 효력을 상실시켜 이들이 자국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여권 효력이 사라진 이들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로 송환돼 군부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주한 미얀마대사관은 유효 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갱신하려면 군부 세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일부 민주화 운동가의 여권 효력을 강제로 취소시키기도 했다.

띤테이암(32·인천 부평구)씨는 최근 주한 미얀마대사관을 찾아 여권을 갱신해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는 “미얀마에 살고 있는 부모님께서 군부가 찾아와 아들이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협박했다”며 “미얀마로 강제로 돌아가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임시정부인 NUG를 공식적인 정부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NUG의 지위를 인정하면, NUG가 주한 미얀마대사관을 대신해 재한 미얀마인들의 여권 발급, 갱신 등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법무부 관계자는 경인일보에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의 목적을 고려해 미얀마 현지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미얀마인들의 출국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미얀마 현지 언론 ‘이라와디’(irrawaddy)는 최근 미얀마 군부 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 세력은 선거를 앞두고 인구 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군부는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330개 타운십(Township·미얀마 행정구역) 중 145개 타운십에서만 인구조사를 제대로 실시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