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뮤지션의 서울 공연 보러 가며 든 생각
공연장 등 문화시설 부족 인천 북부권 소외론
지난 14일 오후 8시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내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해외 뮤지션인데요. 한국에선 9년 만의 단독 공연이라서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날 공연장에 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흔히 ‘인천 북부권’이라 불리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인천 북부권은 부평구, 계양구, 서구를 일컫습니다.
저희 집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이 개최된 예스24 라이브홀까지 도보와 지하철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더군요. 공연 러닝타임과 비슷했습니다. 이동 시간만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을 썼습니다. 자정 가까이 되는 시간에 귀가했습니다. 조금 힘들다고 느껴지더군요.
공연이 열린 예스24 라이브홀은 3천여명(스탠딩 2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음악 전문 공연시설입니다. 기업 이름인 ‘예스24’라는 명칭 탓에 순수 민간 공연장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시설은 서울시 광진구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광진구가 민간 기업에 운영권을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공공 사업으로 공연장 조성한 것이죠.
부러웠습니다. 집에서 조금만 더 가까운 곳에 데미안 라이스처럼 꽤 규모가 있는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이 있다면, 1시간 30분 걸려서 서울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인천 북부권에 공연장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구에는 청라블루노바홀(480석), 서구문화회관(740석 리모델링 중), 검단복지회관(200석) 등 공공 공연시설이 있습니다. 계양구에는 계양문화회관(795석), 부평구에는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868석)과 달누리극장(323석) 등 공공 공연시설이 있습니다. 모두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중·소규모 공연장입니다.
그러나 인천 남동구에 있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1천332석), 연수구에 있는 아트센터인천(1천727석) 같은 대규모 공연장은 북부권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 대규모 공연장은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각각 운영하고 있습니다. 송도컨벤시아에서도 나훈아, 조용필 같은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열리곤 합니다.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도 생겼습니다.
공연장 규모에 따라 개최되는 공연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뮤지컬이나 유명 대중음악 가수 콘서트 같은 인기가 높은 공연은 최소 1천700석 이상 규모의 공연장에서 개최됩니다.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 그 정도 규모라는 것입니다. 인천 북부권에 사는 제가 이러한 대형 공연을 보고 싶다면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이나 송도국제도시, 아니면 서울로 가야 합니다.
북부권 문화예술회관 조성 사업은 어디로
신도시 조성으로 인구는 점점 늘고 있는 인천 북부권의 ‘문화 소외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인천시가 추진하려던 북부권 문화예술회관 조성 계획이 ‘광역 대규모 공연장’에서 지난해 8월 ‘군·구 단위 중·소규모 공연장’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북부권 소외론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게다가 계양구와 서구 간 공연장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지역 갈등만 촉발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김창수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는 지난해 11월20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된 인천민예총 주최 ‘이슈포럼 1: 인천시 문화정책을 돌아보다’에서 이렇게 지적(관련 기사 링크)했습니다.
“인천 지역 대형 공연장과 전시장은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 서구·계양구 쪽에 문화 접근성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형 거점 문화시설이 있어야 한다. 누가 봐도 계양구와 서구 지역 간 시설 유치 갈등은 예상할 수 있었는데, 인천시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갖고 북부권 문화예술회관 건립 사업을 추진했어야 한다.
인천의 큰 문제 중 하나가 역외 소비 유출이고, 서구·계양구·부평구 같은 서울 인접 지역에선 유출이 더 심하다. 이 지역 시민들이 공연과 전시 관람 등 문화적 소비도, 일상적 소비도 서울에서 하는 상황에서 서북부권 대형 문화시설 건립은 재추진해야 한다.”
인천 북부권의 한 기초자치단체 관계자에 북부권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 관계자의 답변입니다.
“인천시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천 북부 지역은 신도시 확대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나, 시립 문화예술회관이 남부지역에 편중돼 있어 문화 향유 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시는 북부지역 문화예술회관 건립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북부권 문화예술회관 조성 계획의 취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아주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광역 대규모 공연장’ 건립은 추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문화 소외 지역에 대한 혜택이 사업 취지라면, 지역 주민이 원하는 대규모 공연장을 남부권처럼 시립 문화시설로 짓고 운영해야 합니다. 인천시가 발표한 중·소규모 공연장은 이미 지역에 갖춰져 있어 오히려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인천시 문화 사업은 다 한남정맥 밖인가”
최근 부평구에서 열린 문화 정책 포럼에 참석한 부평 지역 문화계 인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천시가 최근 발표한 2025년 문화·체육·관광 분야 주요 정책 방향을 보고 놀랐습니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사업은 다 저기 있는 ‘산’ 밖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인사가 가리킨 ‘산’은 원적산 등 한남정맥입니다. 한남정맥을 기준으로 부평구와 계양구 등 인천의 행정구역이 나뉘고 생활권도 나뉩니다. 올해 인천시 주요 문화 정책 방향에서 부평구와 계양구 등 북부권이 소외됐다는 얘기를 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인천시가 지난 13일 미추홀구 틈 문화창작지대에서 개최한 2025년 문화·체육·관광 분야 시정 공유회에서 발표한 ‘6대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시정 공유회 주제는 ‘문화강시(文化强市) 인천’이었습니다.
인천시가 보도자료와 참고자료에서 발표한 6대 정책은 ▲문화정책포럼과 축제기획위원회 도입·운영 ▲제물포 르네상스(중구·동구 일대) 문화 거점 확대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20주년(연수구), 요기조기음악회 등 ‘i-아트 인천’ ▲인천뮤지엄파크(미추홀구)와 우정통신박물관(중구) 등 문화예술 복합 플랫폼 조성 ▲공항 환승 종합안내센터(영종), 인천 i-바다패스(옹진군)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K리그1 승격입니다.
부평 지역 문화계 인사의 지적이니, 부평 지역 입장에서 판단해 보겠습니다. 제 판단에는 인천 전역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요기조기음악회’ 정도를 부평에서도 누릴 수 있는 사업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